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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와 네모와 동그라미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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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와 네모와 동그라미 들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노근리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은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세모와 네모와 동그라미 들*

-노근리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을 위하여

72년 전 한여름이었다

발가벗고 물놀이하는 순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공기놀이하는 고운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경계선 없이 섞이고 있었다. 장기 두다 다투는 노인들의 헛기침 소리와 물꼬 보는 장년들의 삽질 소리가 높낮이 없이 섞이고 있었다.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젊은 아내의 방망이 소리와 도회지를 향하는 남편의 한숨 소리가 평평하게 섞이고 있었다. 산간 마을에 바람이 불어왔고

쌍굴다리 한 편에 흐르는 개천 위

때 이른 고추잠자리 떼의 빨간 꼬리가 충혈처럼 유심히도 붉어졌다

굴다리 위쪽 철로 변에는 개망초꽃들이 하얗게 귀를 세웠다

그 위로, 저 멀리 끝자락에서, 하늘과 산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었다

무너진 경계선을 넘어 사흘 동안 미군의 폭격이 벼락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기총소사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임신한 아내의 배가 둥둥 떠다녔고 카랑카랑한 남편의 눈빛도 휩쓸려갔다. 물꼬가 터져 삽자루와 함께 장년들의 허리가 부러졌고 노인들은 뒤로 꺾였다. 그리고 아아, 순한 아이들과 고운 아이들은

저 멀리 하늘 끝자락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개망초꽃들은 귀를 접은 지 오래되었고

고추잠자리 떼는 사라지고 없다 그 자리에

물잠자리 떼의 날개가 돌무더기 위를 검은 리본처럼 날고 있다

쌍굴다리와 내가 우렁우렁 섞이고 있다

*노근리 쌍굴다리 벽면에 박힌 총탄의 흔적이 세모, 네모,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다.

▲ 쌍굴다리. ⓒ김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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