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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왔고 우리는 나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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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왔고 우리는 나갔고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함양 마천면 군자마을 민간인 학살사건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은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그들은 왔고 우리는 나갔고

-함양 군자마을 민간인 학살에 부쳐

1…

그들은 왔다

한청 단원들이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지에무씨 여러 대에 태우고 왔다

대다수 포승줄에 묶인 청년이었지만

노인과 어린애, 머리 땋은 처녀도 왔다

52명인지 72명인지 또는 120명인지

군자마을 솔봉인지도 모르고 그들은 왔다

누우면 딱 맞을 구덩이를 등지고

한 명씩 착검한 총 든 토벌대 앞에 서서

“난 아무 죄도 없소.” 호소하고

처녀애 하나, “더러운 놈들아. 빨리 죽여라.

아버지 심부름 갔다 온 것도 죄가 되느냐.”

악을 써도 비정한 총검은 가슴팍을 파고들고

구덩이에 쓰러진 그들에게 총알이 날아들고

죽지 않아 흘리는 신음 위로 흙이 쏟아지고

그들을 떨며 지켜본 군자 사람들은

진주나 산청 사람들인갑더라 하다가

전라도 남원 구례 쪽에서 왔다던데 하다가

충청도 쪽 사람도 있는 거 같더라고도 하다가

여우가 송장 냄새 맡고 파헤친 자국

썩은 팔 다리가 드러나도 어쩌지 못하는 무력감

키우던 개가 뼈를 물고 다니는 꼴을 보곤

애꿎은 개를 두들겨패기만 했는데

이내 잡초가 우거지고 온갖 소문과 억측도 우거지고

몇 년 지나 평생 땅뙈기 가져보지 못한 김서방이

감자 심고 고추 심고 참깨도 심었는데

무얼 심어도 참 실하고 잘 되었다는데

2…

딱 사흘 뒤에 인민군이 들어오고

그때부터 동네 사람들이 끌려가기 시작했는데

악질 경찰 ‘정방망이’와 사이가 나빠 얻어맞고

눈 마주쳤다고 철창에 갇혔다가 어디론가 보내지고

마당에 모캣불 피웠다가 인민군에 연락했다는 혐의에

아니라고 아니라고 두 손 싹싹 빌며 끌려가고

인민군에게 소를 뺏기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따라가고

군인들 탄약짐 식량 지게에 지고 산에 올라가고

이유 없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끌려갔는데

다들 한국전쟁이 3년간이라고들 하지만

여긴 최소 십 년, 길게는 십오 년이었다는데

마을을 나간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0…

묻지 마라 그 세월

온몸 터럭이 다시 서고 기막히고 코가 막힌다

암매장이 머이라, 암매장 아니라

넘들 모리게 묻는 기 암매장 아이라?

우덜이 동지섣달 불개 떨 듯 바들바들 떰시로도

핏발선 눈 빤히 뜨고 보고 있었는단께로 그 더위에

지금꺼정 살아 있는 기 야속해 죽것어

여가 오랜 옛날 절집 터라, 군자사라꼬

이백 년도 더 전에 없어졌는데 엄청나게 컸다캐

절터 우에 맨들어진 마을이 군자마을이라

절집이 아직 있었시모 오고 가는 이치 어짜고 했을기라

살아남은 우덜이 죽은 사람들 진혼해야 된다

싶으기도 하고, 마을이 없어질 때꺼지 그래야

그 서러움 쪼매라도 풀리지 않을랑가 싶은기라.

▲ 솔봉 학살터 주변. 수풀이 우거져 흔적을 찾기 어렵다. ⓒ하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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