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은 이곳에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악랄하고 혐오스러운 연설을 했다. 진실을 알려주자면 그가 미국의 적이다."(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3일 펜실베이니아주 월크스-배리 공화당 집회)
"트럼프와 마가(MAGA) 공화당은 미국의 근단을 위협하는 극단주의를 대변하고 있다. 그는 미국과 미국 민주주의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조 바이든, 1일 펜실베이니아주 독립기념관 앞 연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전직 대통령인 트럼프와 현직 대통령인 바이든이 서로를 "미국의 적", "극단주의자" 등 강도 높은 발언으로 비난했다. 이번 중간선거는 2020년 대선 뒤 2년만에 치러지는 선거인데도 '바이든 대 트럼프'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퇴임 후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던 앞선 전직 대통령과 달리 트럼프는 "선거 사기론"을 주장하면서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다시 정치 일선에 나서서 2024년 대선 출마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FBI는 악질적 괴물…민주주의는 좌파가 위협"
미 연방수사국(FBI)은 지난달 8일에는 '1급 기밀' 등 국가 기밀문서를 불법으로 반출하는 등 '간첩법 위반' 혐의로 트럼프의 개인 별장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를 압수수색했다. 이를 통해 FBI는 총 11개의 기밀문건을 확보했다. 또 '기밀' 표시가 된 48개의 빈 폴더를 압수하기도 했다. 이 폴더에 있던 국가 기밀문서를 트럼프 측이 빼돌렸거나 분실했다는 의미다. FBI가 전직 대통령 거주지를 압수수색한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지만, 전직 대통령이 기밀문서를 빼돌리는 등 '간첩법 위반' 혐의를 받는 것도 처음이다.
트럼프는 3일 공화당 집회 연설에서 FBI를 맹비난했다. 그는 FBI가 급진 좌파 악당들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면서 "악질적인 괴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과 극렬 지지자들인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트럼프 대선 구호의 줄임말)가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바이든 주장에 맞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악화하지 않고 구하려 한다"며 "민주주의의 위협은 우파가 아닌 급진좌파에게서 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을 되찾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훌륭한 백악관을 되찾는다는 것"이라며 2024년 대선 출마 가능성일 시사했다.
바이든 "트럼프와 마가는 미국을 후진시켜"
앞서 바이든은 1일 독립기념관 앞 연설에서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에 의해 "평등과 민주주의가 공격을 받고 있다"며 "마가세력은 이 나라를 선택의 권리가 없는, 피임의 권리가 없는, 사랑하는 이와 결혼할 권리가 없는 곳으로 후진시키는데 골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극우 기독교(복음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임신중지(낙태) 반대, 성소수자 반대 등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또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해 미국 의회를 난입한 '1.6 무장 폭동'을 거론하면서 "미국에서 정치적 폭력은 발붙일 곳이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참패' 예상되던 11월 중간선거, 기류 변하나?
미국에서 집권 후 첫 중간선거는 대체적으로 '집권 여당의 무덤'이었다. 미국 역사상 여당이 중간선거를 통해 의석을 늘린 경우는 대공황으로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고 난 뒤(1934년), 빌 클린턴 탄핵 시도 직후 공화당이 역풍을 맞았던 때(1998년), 9.11 테러 공격 후(2002년) 등 세 차례 밖에 없었다.
대선 패배마저 수용을 거부하는 트럼프와 그 지지세력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바이든은 취임 이후에도 '약한 대통령'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장기화,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등 대내외적 상황도 좋지 않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2008년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버락 오바마)에 대한 역작용으로 극우 세력인 '티파티(Tea Party)' 광풍이 불었던 2010년 중간선거 때와 유사한 상황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왔다. 당시 민주당은 하원에서 63석을 잃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민심이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치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에 주목한다.
첫째, 임신중단권 이슈. 50년 만에 여성의 임신중지와 관련한 선택을 헌법적 권한으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에 연방대법원에서 뒤집히면서 공화당의 세력이 강한 '레드 스테이트'에서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법이 속속 만들어지면서 여성 유권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둘째, 바이든의 입법 성과. 학자금 부채 탕감, 기후변화 대응법, 인플레이션 감축법, 반도체와 과학법 등 입법 성과와 유가 하락 등으로 경제적 여건이 일부 개선되고 있다.
셋째, 막무가내식 트럼프 리더십. 하원의 '1.6 폭동 특벌조사위원회'에서 열린 청문회, 기밀문서 유출로 인한 FBI 압수수색 등을 통해 트럼프가 법조차 무시하는 정치인이라는 사실이 재확인되고 있다.
첫번째 변수는 여성 등 기존 민주당 지지자들의 결집을 촉진시킬 수 있고, 두번째와 세번째 변수는 중도와 무당파층이 트럼프(공화당)에서 바이든(민주당)을 선택하도록 돕는다.
이런 기류는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올해 상반기 30%대 초반까지 곤두박질 쳤던 바이든의 지지율은 8월말 40%대로 상승했다. 미 퀴니피액대 여론조사에서는 40%, 로이터 조사에서는 41%, CBS 방송에서는 45% 등을 기록했다.
1일 발표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바이든 대 트럼프 가상 대결에서도 바이든이 트럼프를 이기는 것으로 나오기도 했다. '2024년 대선이 오늘 치러질 경우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구를 찍겠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0%가 바이든, 44%가 트럼프라고 답했다. 지난 3월 같은 조사에서는 바이든과 트럼프가 45%로 동률을 기록했다.
지난 1일 있었던 알래스카주 보궐선거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2008년)를 지냈던 강성 트럼프 지지자인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패배한 것도 트럼프 진영에겐 충격이다. 이번 선거에서 페일린은 메리 펠톨라 민주당 후보에게 3% 포인트 차로 져서 지난 50년간 공화당이 독식하고 있던 알래스카주 하원의원 자리를 민주당에 내줬다. 펠톨라는 미국 역사상 첫 알래스카 원주민 출신 하원의원이 됐다.
그러나 아직 결과를 예단하기엔 이르다. 유가 하락 등 인플레이션의 급한 불은 껐지만 경제 상황이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으로 부채가 있는 경우 이자 부담은 더 커졌다. 또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의 결집이 여전히 공고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바이든의 상승세로 트럼프 지지자들이 위기감을 느껴 투표장으로 나올 가능성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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