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고용노동부에 전달했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 방안을 담은 연구 용역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보고서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 대신 과징금을 기업에 부과", "CSO(안전보건최고책임자)를 경영책임자로서의 지위로 인정하는 방식" 등 경영책임자 처벌을 완화하고자 하는 경영계의 요구를 담고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우원식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노동법제 체계와 그 실효성 제고 방안' 보고서는 중대재해법의 문제점과 개정방안을 제시했다.
앞서 지난 25일 기재부는 중대재해법과 관련한 연구용역을 진행했고, 이를 토대로 고용노동부에 시행령 개정 방향에 대한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책임자 책임 완화 등 경영계의 요구 사항이 담긴데다, 주무부처가 아닌 기재부가 나서서 고용노동부 소관 법률에 의견을 내자 '월권 행위'라는 비판이 정치권 안팎으로 나왔다. 그러자 기재부는 보도 설명자료를 통해 "월권 의도가 아니"라며 "시행령 개정 관련 제안을 공유해 정책 결정에 참고하도록 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중대재해처벌법
2018년 12월 10일,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외함 점검을 하던 24살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작업 중 목숨을 잃었다. 사고 이후 故 김용균 씨 유족은 사업장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의 청원을 국회에 올렸다. 이에 대해 10만 명이 넘게 동의했고, 본격적인 입법 논의가 시작됐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유해·위험 방지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하면 강력히 형사처벌하고, 재해사고의 입증 책임을 사업주나 법인 등이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노동자의 사망 원인이 안전 관리 소홀로 판명 나면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중대재해법은 올해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안전보건책임자(CSO)를 경영책임자(CEO)로서 인정하도록 개선해야"
보고서는 '경영책임자 등의 개념'이란 항목에서 "경영책임자의 개념을 둘러싸고, 현장에서 상당한 혼란이 있다"며 "형사벌칙의 부과를 위해서는 대상을 특정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만약 경영책임자의 범위에 혼동이 발생한다면 이는 혼란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완방안으로 "안전보건최고담당자(CSO)에 대해서는 경영책임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개선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인 경영책임자 판단지표를 세부적으로 시행령 또는 시행규칙 혹은 지침 등을 통해 제공해 이를 부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형사처벌의 대상으로서 '경영책임자'의 개념 혼란이 야기 되기 때문에 처벌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인데, 보고서는 CEO가 아닌, 안전보건최고담당자(CSO)를 경영책임자로 규정 하자는 것이다. 기업 총수를 책임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는 지난 5월 경총의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 건의서와 지난 6월 전경련의 9대 건의안에 공통적으로 제시된 내용과 닮아 있다. 전경련은 경영책임자 등 처벌 대상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을 중대재해처벌법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으며 "안전보건최고담당자(CSO)가 있을 경우 대표가 책임을 면할 수 있는지 묻는 기업이 많다"며 "하지만 전문가 의견은 제각각"이라며 개념을 명확히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경총 역시 "경영책임자 대상 및 범위가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표이사에 '준하는' 경영책임자가 선임된다면 대표이사의 중대재해법 의무이행 책임을 면제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형사처벌 대신 과징금 부과해라"?
또한 보고서는 중대재해법의 핵심인 경영책임자 '형사처벌' 자체를 보완해야 할 지점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엄중한 형벌 일변도의 제재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형벌이 아닌 경제벌을 부과하도록 하는 것이 향후 입법 보완차원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개선 방안으로 "과징금 등 경제벌을 부과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그에 대한 이유로 "개인으로서 경영책임자가 아니라 기업에 대한 본질적인 제재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나아가 안전경영은 "개인으로서 경영책임자 형사처벌로는 해소되지 않는다"며 법의 취지 자체를 무색하게 했다.
그러면서 "경영책임자로 하여금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산업안전보건영역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해야 한다"며 형벌에 의한 안전 경영이 아닌 '자율적인 안전 경영'을 강조했다. 이 또한 처벌 수위가 과도하다는 경영계의 주장과 닮아있다.
이와 관련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재부의 개정 압박 등을 두고 "노사는 물론 부처 간에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수 있어도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며 "(기재부 의견대로 흘러가는 등) 우려하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법 취지에 맞게 법안과 시행령을 개정해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 장관은 "누구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시행령은 모법의 입법 취지를 벗어날 수 없다"며 "입법 취지에 맞게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원칙"이라고 했다. 이어 "중대재해법 시행령도 그런 입장으로 간다"고 강조했다.
이에 관해 국회 환노위 소속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의 최고 책임자에게 안전관리 의무를 명확하게 규정하여 재해 발생시 무거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핵심인데 기재부의 연구용역 및 노동부에 전달한 시행방안은 결국 책임완화를 통해 재계에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로 보인다"면서 "기재부는 시행령 연구가 아니라 법률연구라는 궤변으로 회피하지말고 연구용역 외 노동부에 전달한 시행방안을 국민들에게 즉시 공개해야한다"라고 비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