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영화 <브로커>와 베이비박스, 너 자신을 세탁하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영화 <브로커>와 베이비박스, 너 자신을 세탁하라!

[기고] 베이비박스 설치 조례 도입 움직임에 부쳐

# "이제, 우리랑 행복해지자"

지난 6월 영화 <브로커>가 개봉되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이 한국의 베이비박스 문제를 다룬 영화를 만들었다 해서 개봉 전부터도 화제가 되었다. 게다가 국내 유명배우들의 출연에, 송강호 배우의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소식까지 전해지며 작품에 대한 기대도 높았다. 

마침 미혼모인권단체 '인트리'가 주최한 영화시사회에서 참여하여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는데, 당시 한 관객의 소감은 수개월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기를 키우고 있는 미혼모 당사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영화를 만들어 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고 했다. 순간 사회로부터 소외된 삶을 살며 서로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란 말을 하며 위로했던 상현 (송강호), 동수 (강동원), 소영 (아이유), 그리고 보육원 꼬마 해진의 연대는 스크린 밖의 그 미혼 엄마에게로까지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홀로 어렵고도 외로운 길을 걸어왔을 그분은 소영과 소영의 아기, 우성의 손을 잡아준 상현, 동수, 해진, 그리고 수진 (배두나)의 따듯한 손길에 위로받았던 것이리라.

이처럼 '베이비박스' 문제를 다룬 이 영화는 바로 그 문제의 가장 중심에 있는 아이의 엄마 입장을 놓치지 않으며 또한 감히 재단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우리랑 행복해지자"라는 영화 카피를 통해 아기를 위한 것이 진정 베이비박스가 유일한 해답인지 우리에게 질문한다. 즉, 아기가 종소리 나는 베이비박스 안에 넣어져, 생명이 구해진 뒤, 무 자르듯 자신의 태생과 관련된 모든 것들과 단절된 채 보육원에 보내지거나 양부모 가정에 배치되는 것이 진정 아이의 미래를 위한 최선은 아니란 것을 영화는 말한다.

소영 : "나 가끔 꿈 꿔. 비가 오고 그 비에 어제까지의 나는 깨끗이 씻겨 내려가. 근데 눈을 뜨면 여전히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고 나는 달라진 게 없어."

동수 : "우산 있으면 되지 않을까?. 큰 우산. 둘이 쓸 수 있는 거."

동수의 말처럼 동수, 상현, 그리고 해진까지 이들은 소영과 아기 우성을 위한 우산이 되어 주었다. 우성이 열이 나고 아플 때 함께 병원에 달려갔으며 함께 아파해주었다.

▲ 영화 <브로커> 중 세차 장면 ⓒ <브로커>

# 너 자신을 '세탁'하라!

이런 맥락에서 상현이 '오케이세탁소'를 운영하고, 그의 승합차에 '드라이클리닝'이 쓰여 있고, 승합차를 세차하는 장면 등은 매우 상징적이다. 아기 신분을 세탁하여 그럴듯해 보이는 결혼한 부부에게 '축복의 선물'이라며 아기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 우리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깨끗이 '세탁'되어 새롭게 태어나라는 뼈아픈 상징인 것이다. 

이 상징적 메시지는 영화 속 세차 장면에서 해진이 세차 중 창문을 내리며 정점에 이른다.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온 세제와 물로 상현과 동우는 깨끗이 세탁되었다. 이제 더이상 이들은 아기를 파는 브로커가 아니다. 소영이 아기를 키울 수 있도록, 아기 우성이가 엄마와 헤어지지 않도록 돕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리고 소영과 우성에게 큰 우산이 되어 준 또 한 명의 사람이 있다. 바로 소영이 수감 생활을 하는 3년간 우성을 돌봐준 형사 수진 (배두나)과 그 남편. 이들이 만든 커다란 우산은 베이비박스에 넣어졌던 우성이가 생명이 구해진 뒤, 보육원이나 입양 가족에게 보내져, 훗날 자신은 어디서 왔는지, 왜 버려졌는지 평생 고통의 질문을 하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아이로 자라게 한다.

# '부산가족교회'와 '뉴코리아모텔'

2022년 6월 18일 <국민일보>의 '빛과 소금' 코너에는 "베이비박스와 베들레헴 마구간"이란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필자는 "예수님도 인류를 구원하고자 이 세상에 오실 때 베들레헴의 허름한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요즘으로 치면 베이비박스에 놓인 아기와 같았다"라고 하며 "하나님은 베이비박스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에게 사랑의 불을 놓으시는 게 아닐까. 그 사랑으로 보듬을 때 베이비박스의 아기는 '버려진' 생명이 아닌 '지켜진' 생명이 될 것이다"라고 결론을 맺었다. 

우선 베이비박스를 예수님이 태어난 마구간과 비유한 것은 놀랍다. 마리아는 예수를 버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왜 버려졌는지도 모르고 잘사는 중산층 소위 '정상가정'에 입양 보내져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죽을 때까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고통받았을지언정,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정체성 혼란으로 고통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브로커'를 보고 '베이비박스'를 이렇게 호도한다면 시쳇말로 영화를 엉덩이로 본 것임에 틀림없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 속 곳곳에 의미심장한 상징들을 숨겨두었다.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교회 이름인 '부산가족교회', 그리고 상현, 동우, 해진, 소영이 아기 우성을 돌보기 위해 서로 당번을 짜고, 서로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며 따듯한 위로를 나누며 머물던 숙소의 이름은 '뉴코리아모텔'이다. 이 이름들이 심상치 않다. 감독은 상현, 동우, 소영처럼 새롭게 구성되는 가족을 위해 교회는 봉사하고, 유기를 조장하거나 아이를 입양시키는 것보다 돌봄 공동체로 한국 사회가 나아가길 바라는 희망을 '부산가족교회'와 '뉴코리아 모텔'이란 이름 속에 담은 것이 아니었을까.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영화 속 '부산가족교회'(왼쪽), 소영, 우성, 해진, 동우, 상현이 머물렀던 영화 속 '뉴코리아모텔'(오른쪽) ⓒ<브로커>

군데군데 낙태를 아동 유기보다 더 큰 죄악으로 몰고 가는 문제적 대사나, 아기 얼굴에 대한 평가가 넘쳐나는 등 그냥 넘기기에 매우 불편했던 장면이 있었음도 사실이다. 이 부분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통해 전달되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과 돌봄 공동체를 위해 너 자신을 세탁하라'는 감독의 메시지는 그 울림이 너무도 크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베이비박스가 만들어진 곳은 일본인데,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기는 한국이 일본보다 10배가 넘고,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입양보내지는 아기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생명"은 꼭 베이비박스가 아니어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바로 베이비박스보다 더 많은 우산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그리고 사회가 노력한다면 말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