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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동업(同業) 농사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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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동업(同業) 농사의 위기  

[기고]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 오리기의 혁명>

나는 정말 운이 좋은 농사꾼인가?

사람들은 태어난 곳에서 농사지으며 노후를 맞고 있는 내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60년 남짓 개발의 가능성이 무제한적으로 열려있는 수도권의 한 지역에서 농(農)의 삶을 살아냈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적지 않은 유혹과 풍파를 겪었다는 뜻이다. 대대로 물려받은 작은 문전옥답과 선영을 터전 삼아 살아온 것이 무슨 자랑이 될까마는, 그동안 웬만한 뚝심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시절이었고, 여전히 힘에 겨운 개발의 바람은 기세등등하게 불어 닥치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너무 많은 소중한 것들이 사라졌다. 친구들이 고목처럼 쓰러지거나 뿔뿔이 흩어졌고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도농복합시'라는 명칭으로 지역 색이 어느새 확 바뀌어버린 오늘 나는 정말 운이 좋은 농사꾼인가?

신작로가 왕복 4차선으로 확장되면서 마을 앞으로 큰 길이 뚫렸고, 제풀에 쓰러진 빈집 자리와 산자락을 후벼 판 자리에 크고 작은 공장과 건물이 우후죽순처럼 밀려 들어왔다. 대부분의 지형은 옛적 그대로지만 여울져 흐르던 시냇물은 보를 막아 '수자원'이 되었고, 어쩌다 고향에 들른 사람들이 올해엔 쌀이 몇 가마나 나왔느냐고 묻던 구례울 여덟 마지기 상답은 이제 평당 얼마나 하느냐고 묻는 시절이 되었다. 뒷산에 올라 여기 저기 어림으로 옛 흔적을 더듬으면 불과 반세기 전 어린 아이들의 왁자했던 소리가 아득하다.

아침 6시면 나는 매일 들판으로 나간다. 이천 여 평 남짓 논농사 물꼬도 보고 그 옆에 100여 평 밭작물들의 안색을 살피러 간다. 올 봄은 유난히 가물고 냉해까지 겹쳐 일찍 모내기 끝낸 논의 어린모들이 시름시름 머리를 앓다가 간신히 깨어났다. 1년 농사의 시작이 삐걱거리더니, 역시나 이어서 긴 가뭄으로 밤샘 양수작업과 밭작물에 물대는 일로 봄 한철이 다 지나갔다. 그리고 바로 긴 장마와 국지성 호우와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각종 작물은 갈수록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기가 버겁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결실을 보기 위해 맹독성 농약과 화학비료는 물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농업의 현실이다. 관행적 농사법을 따르지 않으면 이제 모든 작물은 결실을 보기 어렵다. 이미 씨앗은 보존하지 못한 지 꽤 되었다. 집 주변에 군것질로 심은 과실나무들조차 이제는 살충제와 살균제 없이는 단 한 알의 성한 열매도 건질 수 없다. 이것이 농사의 새로운 지표가 된 지 오래다. 여느 시골길을 달리다 잘 여문 곡식이나 깨끗한 과실이 주렁주렁 매달린 것을 보면 대부분 그 배후에 일체의 생명을 거부하고 오로지 사람만을 위한 자본의 막강한 배후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초가을처럼 선선한 날씨를 보이는 가운데 8월 25일 강원 강릉시 포남동의 밭에서 네발나비가 부추꽃에 앉아 꿀을 빨고 있다. ⓒ연합뉴스

생물 다양성 시대 이미 끝나

현재 우리나라의 일반화된 농사법인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고 있는 들판의 생태계를 깊게 들여다보면 경악스럽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재래 농법으로 짓던 유년의 들판과 지금의 들판은 완전히 다른 들판이다.

우선 공기가 달라졌다. 맑고 풀 향기로 가득했던 들판의 공기는 수시로 농약 냄새가 진동한다. 농사꾼의 촉으로 감히 말하건대, 60년대 우리나라 들판의 풍요로웠던 생물다양성의 개체들은 거의 전멸했다. 기껏해야 20% 정도가 남아서 들판 너머 하천이나 마을 뒷산으로 몸을 피신했다가 다시 들판으로 나와 죽어가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곡식들이 자라는 논밭은 마치 지뢰밭처럼 삼업하다. 사람을 위한 농작물 이외의 어떤 출입도 막겠다는 농약군(軍)이 그 많은 생명의 보고였던 들판을 밤낮으로 사주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의 들판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생명들의 울력과 아버지들의 노동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관계하면서 곡식이 여무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오로지 농작물 이외의 모든 생명을 거부하는 마법 같은 농약과 화학비료의 독점 구조로 바뀌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실로 많은 양의 농약과 화학비료가 매년 살포되어 죽어버린 땅에서 알곡들이 쏟아져 나오는 풍경은 경외스럽다.

2020년 별나게 따뜻했던 겨울을 보내고 그해 여름 창궐했던 벌레들의 습격을 기억한다. 춥지 않은 겨울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따뜻했던 겨울은 바로 다음 계절에 재앙으로 다가온다. 그해 쌀 소출이 20-30% 정도 줄었지만,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심각하게 말하거나 보도하는 언론은 없었다. 쌀 말고도 먹을거리가 넘쳐나기 때문인데, 이 풍요로움이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식량 자급율 세계 하위권인 우리나라의 넘치는 먹을거리 현주소는 마치 한 가족이 차에 식량을 가득 싣고 목적지 없는 황량한 피난길을 떠나는 형국처럼 불안하다.

세계의 먹을거리 균형은 머지않아 완벽하게 깨질 것이다. 척박한 아프리카의 고혈을 짜먹던 서유럽과 그 밖의 패권주의 국가들의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전쟁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후위기는 곧바로 식량위기로 직결되고 식량위기는 바로 무력전쟁으로 직결되는 무서운 동물적 논리가 그 속에 숨어있다. 자연 재앙과 함께 닥쳐올 무서운 살육의 시나리오가 '기후위기' 라는 암실 속에서 조용히 씌어지고 있는 것이다.

농민운동 이대로 좋은가, 친환경 소농을 꿈꾸다

나는 한때 아주 감상적인 상상력으로 도시와 농촌의 뒤집힌 처지를 그려본 적이 있다. 어느 순간 자본의 종말에 다다른 시람들이 유령 도시를 버리고 먹을 것을 찾아 시골로 시골로 내려오는 상상이다. 뒤늦게 그들은 플라스틱이나 피씨(PC)나 휴대폰을 먹을 수 없고, 자동차를 먹을 수 없고, 샴푸를 먹을 수 없고, 수세식 양변기를 먹을 수 없고, 냉장고나 키친 세트를 먹을 수 없고, 그 많은 주식과 숫자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상상.

결국 그들은 서투른 농사법을 배우며 맨손으로 벌레를 잡고 나무껍질과 나무뿌리를 캐먹으며 누에를 먹이고 물레를 돌리고 삼베를 짜는 법을 배우며 아이들에게 구황식물에 대해 가르치는 엉뚱한 상상. 이 엉뚱한 상상 속에서 나는 현장의 농부로서 구휼의 목민관이 되어 대활약을 펼치는 상상. 역사 이래 제대로 된 대접 한 번 받아보지 못한 농부들이 새로운 나라의 기득권으로 우뚝 서는 상상. 우리들이 꿈꿔왔던 소농 구조의 공동체가 부활하는 상상. 농부들이 사회의 주구성원이 되고 그들에 의해 국가가 운영되는 아름다운 상상.

우리는 과거 산업의 구조를 마치 삶의 질을 구분하는 계단식 구조로 이해했다. 서비스가 주를 이루는 3차 산업은 1차 산업에 비해 세련되고 고급화된 삶의 질을 제공하며 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화이트칼라로 분류되었다. 따라서 1차 산업인 농업과 임업 수산업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전유물로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낙후된 산업의 상징처럼 인식되었다. 2차 산업인 공업의 육성책으로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가고 농촌은 더 피폐해졌다. 결국 텅 빈 1차 산업의 무대인 농촌은 고사 직전에 화석연료의 급진적 사용과 더불어 대농의 등장으로 농약 범벅의 농사법으로 전환되었다. 산업화 이후 일손이 부족한 농촌을 살려낸 화학 농법이 결국 강과 바다를 오염 시키고 이산화탄소 농도를 최고치에 다다르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앞으로 4차 첨단산업으로 번 돈을 몽땅 1차 산업인 농업과 임업을 친환경적으로 되돌리는데 쏟아 부어도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절체절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혹자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무엇으로 그 많은 노동력을 대체할 것인가, 라고 묻지만, 선험적 차원에서 우리 인류는 수천 년을 농약과 화학비료 없이 순수 노동력만으로 살아왔다. 노동력은 산업구조의 전략적 후퇴나 조정에 따라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불과 200여 년 만에 지구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 50여 년 전의 청정한 농사법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그 이후 최근까지 화학농사법으로 땅을 망가뜨린 당사자이다. 망가지며 떨어지는 다디단 열매를 편안하게 누워 받아먹은 마지막 착취자이다.

농민들이 그동안 생존권 투쟁에 많은 열정을 쏟아 부었지만, 정작 관행 농업이 기후위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아는 농부는 그리 많지 않다. 제도적 생존권 투쟁에 매달리는 동안 한쪽에서는 자연이 인간 삶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농민운동의 방향은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추락하는 쌀값에 대한 보장이 아니라, 땅을 죽이는 농법에서 생명을 기르고 상생하는 구조의 획기적인 친환경 농법에 대한 근원적인 설계와 투자만이 농민은 물론 모든 생명들이 살 길이다. 떠난 생명들을 다시 모셔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노력과 시간과 예산이 드는 일이다. 너무 멀리 가버렸기 때문에 혁명적인 농사법의 전환 없이 인류의 미래는 없다.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 오리기의 혁명>은 그런 의미에서 실천적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 좋은 예이다. 1가구 당 1단보(300평) 갖기 운동은 친환경 윤작 주말 농사만으로도 식량은 물론 과일과 채소를 자급자족할 수 있으며 전 국민의 소농화를 충분히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소박하지만 혁명적 발상이다.

▲ <짚 한오라기의 혁명>(후쿠오카 마사노부 지음, 녹색평론사 펴냄). ⓒ녹색평론사

큰바보(土愚)의 무서운 침묵

흙의 본질은 '큰바보'(土愚)에 있다고 한다. 어떤 아픔이나 고통, 슬픔, 기쁨조차도 표현하지 않는 크나큰 침묵의 긍정이 흙의 본질이라고 한다. 지속가능한 생물다양성의 조건은 흙과 사람이 직접 손을 맞잡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몸에 흙을 묻히고 흙과 소통한 사람만이 흙의 속 깊은 고민을 들을 수 있다.

인간은 흙 위에 살면서 흙의 본질을 외면했다. 흙을 정말 바보 취급하고 함부로 대하고 이용했다. 그동안 큰바보의 위대한 침묵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의 메시지를 읽어내지 못했다. 속으로 곪아가면서도 말하지 않은 어머니의 쓰라린 품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농사는 하늘 동업이다. 땅이 아프다는 것은 하늘 어딘가도 아프다는 말이다. 기후위기는 하늘과 땅의 동업이 파국에 이르렀다는 말이고, 그 파국은 곧장 모든 생명에 직결되는 중한 이야기이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내 집 앞 텃논의 생태계 변화를 60년 가까이 직접 체험한 대한민국 중부지방 농부로서 말하건대 대멸종은 이미 시작되었고 진행 중이다. 과장된 예측일지 모르겠지만, 그 연장선에서 기후 위기 이후 닥쳐올 식량 부족으로 훗날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이 생긴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인간은 유일하게 돌아보고 곱씹어보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성찰의 힘으로 산업화 이전인 단 50년을 되돌릴 수 없고 1.5도의 기온을 지키기 버겁다는 현실이 솔직히 믿어지지 않는다.

존폐의 갈림길에 임박해서도 자본의 브레이크는 좀체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의 뇌구조를 이해한다면 어쩌면 인류의 출현과 함께 지구 생명 6번째 대멸종의 시계는 이미 돌아가기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 인류에 의한 홀로세 대멸종의 시계가 제로에 임박했다는 사실을 환기하면 불과 50년 전 내 유년의 앞 냇갈과 뒷산의 청정했던 생태계와 들판에서 다양한 생명들이 함께 울력하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것은 셀 수 없이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지구라는 45억년의 역사 다큐 영화 속에서 지구와 내가 기억하는 아름다웠던 마지막 풍경일 것이다. 그 풍경 위로 지구 생명 대멸종의 엔딩 크레딧은 과연 올라갈 것인가? 모든 스텝과 감독 이외 출연진이 오직 인간이라는 종뿐인, the end.

* 이 글은 웹진 <나비>의 '기후@나비'에 동시 게재됩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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