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음력 정월 여성의 사찰 출입을 금지한 종교단체에 대해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인한 불리한 대우로 종교적 교리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시정을 권했다.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29일 대한불교천태종 총무원장에게 성별을 이유로 사찰 출입을 제한하는 관행을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천태종 신도인 A씨는 음력 2월 초하룻날 천태종 총본산 사찰인 충북 단양 구인사에 방문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하자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이에 천태종은 인권위에 '전통'이라며 항변했다. 천태종은 "70여년 전 종단을 중창한 제1대 종정의 유지에 따른 것"이라며 1년 중 이틀간, 음력 정월과 2월 초하루 자정부터 정오까지 여성의 사찰 출입을 막는다. "현재와 달리 당시는 가부장적 관습이 많이 남아 있었던 시절로, 새해를 시작하는 정월과 2월 초하루는 정(淨)한 날이므로 특별히 남성만 기도 정진을" 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경상도 지역에는 오늘날에도 초하루에 여성들이 아침 일찍 돌아다니면 혼이 나는 전통이 남아있다"며 "종교마다 지향하는 바와 신앙의 내용·형식 등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그러나 "천태종은 여성에 대한 사찰 출입제한이 가부장적 관습이 많이 남아있던 시절 만들어진 관례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1대 종정의 '명'이기 때문에 전통으로 지킬 뿐이라는 주장 외에 제한 행위에 대한 합리적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을 부정한 존재로 인식하는 편견,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인한 불리한 대우"라고 비판했다.
천태종은 인권위에 '남녀 모두' 정월과 음력 2월 초하루 사찰 출입을 제한하겠다며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인권위는 차별 해소를 위한 개선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또 남녀 모두 이틀간 출입을 제한하겠다는 천태종 조처에 대해서도 "70년 동안 전통적으로 여성의 출입을 제한해 온 행위, 즉 여성의 평등권 침해에 대한 피해 회복 조치로 볼 수 없다. 그동안 출입에 제한을 받지 않았던 남성의 출입까지 금지하는 것은 차별 해소를 위한 개선조치로 보기 어렵다"며 새 개선안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천태종의 종교의 자유 침해 주장 또한 "여성의 출입을 제한하는 행위는 천태종의 본질적인 가르침, 즉 종교적 교리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구인사를 창건한 제1대 종정의 유지에 따른 것이므로 '종파적 전통'으로 판단된다. 여기에 근거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의 한계를 넘는다"고 꼬집었다.
한편, 구인사는 김건희 여사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시절이었던 지난 5월 방문한 곳이다. 윤 대통령 역시 대선 기간인 지난해 12월 구인사에서 열린 상월원각대조사 탄신 110주년 봉축 법회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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