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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펠로시 패싱', 한국의 외교 정체성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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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펠로시 패싱', 한국의 외교 정체성을 묻다

[좋은나라이슈페이퍼] 펠로시 대만 방문과 미·중 관계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파장은 미국 국내정치적 영향, 군사 위기적 측면, 향후 전망, 그리고 그것이 한국에 주는 함의로 나뉘어 살펴볼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펠로시 하원의장이 대만을 떠난 뒤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정책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다. 은퇴를 앞둔 미국 정치인이 '민주주의 퍼포머'로 중국을 도발하고는 그 후과인 군사적 위협은 중국을 지척에 둔 대만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무모한 방문이었다는 냉소적 비판도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 대만 방문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불장난' 경고는 미국에서 반중 정서를 높이는 역효과를 낸 측면도 있다. 결과적으로 대다수 미국 유권자들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지지했다. 이는 11월에 있을 미국 중간 선거에 일정한 함의를 가진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그럴 실제적 가능성이 작을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에도 불구하고 우발적 무력 충돌 가능성 유무는 더욱 현실적 고려 사항이 되었다. 

펠로시 방문이 '제4차 대만해협 위기'의 전초전이란 군사 전문가의 진단도 나왔다. 이는 한국이 미중 갈등의 가장 첨예한 충돌 점이 된 대만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신임 정부가 전임 정부보다 대만 문제 등 미중 갈등에 더 잘 준비가 되었다는 증거는 임기 100일이 지난 현시점까지 아직 부재한 편이다.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민주적 가치에 기반한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한다는 '태도'는 표명했지만 이 자체가 전략일 수는 없다. 특히 한국 정부의 '펠로시 패싱 사건'은 그것이 보여주는 상징성과 대한민국 외교의 정체성 문제 자체를 다시 소환케 했다. 한국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일 수 있다. 그 파장은 점차 사그라지더라도 그 동심원이 그리는 여운은 더 넓게 퍼지고 오래 남을 수 있다. 한국 외교사에서 진중하게 되돌아봐야 할 사안이다. (필자)

펠로시 대만 방문과 미국 국내 정치

워싱턴 주재 모 아시아 국가의 대사관은 한 컨설팅 회사에 부탁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대만 방문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반응을 조사했다 (註: 한국대사관이 아님). 결과에 따르면 일부 정치권의 우려와 달리 대부분의 미국인은 펠로시 대만 방문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험 부담이 있었지만 미국이 응당 해야할 것을 했다"는 공감대를 보였다고 한다.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미국의 가치를 지켜냈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러한 반응은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일부 정치권과 <뉴욕타임스> 등 주류 언론이 펠로시 대만 방문에 우려를 표명한 것과는 결이 다르다.

많은 미국 시민들이 펠로시 의장 대만 방문에 대해 지지했다는 것은 미국 국내 정치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게 된다. 특히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더욱 그렇다. 미국이 대만과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가져가는 것을 대다수 미국 유권자들이 지지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펠로시 대만 방문은 정치권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보자면 곧 있을 미국 중간 선거에서 미국 집권 정부에 도움이 됐다는 의미도 된다. 특히 펠로시가 속한 민주당과 같은 당 소속인 바이든 대통령은 펠로시 대만 방문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민주당에 도움이 된 것은 아이러니한 측면이다. 오히려 이 와중에 경쟁 당인 공화당 정치인들이 펠로시 대만 방문을 대거 옹호하고 나서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종합적으로 볼 때 향후 바이든 정부는 대만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행보를 보이는 데 덜 주저할 것이다. 반대로 더 적극적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고, 반대당인 공화당도 이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도 대만은 우크라이나보다 더 중요성을 갖는다. 대만을 잃을 경우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은 좌초된다. 미국이 향후 대만에 더 정책적 힘을 실어주고, 더 많은 군사적 지원을 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아니나 다를까 8월 2일 펠로시 방문으로 중국이 전례 없는 대대적 군사훈련을 개시하여 역내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도 8월 14일 미 상·하의원 다섯 명이 다시 대만을 방문했다. 그 꼬리를 물고 일주일 후에는 또다시 미국 인디애나주(州) 에릭 홀콤 주지사(공화당)가 경제·무역·학술 대표단을 이끌고 대만을 찾았다. 이어 8월 25일에는 공화당 소속 마샤 블랙번(Marsha Blackburn) 연방상원의원(테네시주)이 또 대만을 방문했다. 펠로시 의장을 포함해 이달에만 미국 고위급 정치인들이 네 번 대만을 방문한 것이다. 더불어 미 정부는 올가을 대만과 본격적인 무역협정 협상에 들어갈 것을 공식화했다. 중국의 반발이 불 보듯 한데도 진행하는 것이다. 미국이 말로는 여전히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대만을 하나의 국가로 상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일련의 조치들을 취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대만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여전히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지만 적어도 최근 일련의 사건은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순도 높은'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미 국무부는 이미 작년 2021년 10월 26일 유엔 회원국들에 대만의 유엔 체제 참여를 지지해줄 것을 촉구하는 공식 '언론 성명'(Press Statement)을 발표했다. 이것이 크게 주목을 받은 것은 대변인 명의가 아닌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명의로 해서 권위를 더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렇게 대만의 유엔 가입 지지를 공식 '문서화'한 경우도 처음이다. 유엔 안보리이사국인 중국의 반대로 대만의 유엔 가입이 실현되기는 어렵겠지만, 그 정치적 상징성은 크다. 세계 1위 초강국인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대만의 유엔 가입을 지지하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4일 국회를 방문, 김진표 국회의장과 회담한 뒤 열린 공동언론발표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의 대만 무력 침공 가능성

현재 미국에서 대만 문제 관련 가장 큰 논쟁은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침공 가능성 여부다. 최근 퇴임한 필립 데이비슨(Philip Davidson) 전 미 인도태평양사령관은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중국이 '6년 이내'에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고 했다(CNBC. 2021.03.10). 그것은 2027년 시간표를 가리키는데 그 해는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이다. 대만 문제를 우크라이나 사태의 유사적 관점에서 보는 분석적 시각도 증가하고 있다. 이번에 중국이 대만을 포위하는 군사훈련을 실제 시나리오 측면에서 실시하였다는 점에서 중국의 대만 무력침공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시권'에 들어선 단계라 보는 관점이 미국에서 늘고 있다.

일례로 미국 의회 자문기구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UCESRC) 8월 청문회에서 중국의 군사력 현황에 대해 증언한 미국해군대학원 크리스토퍼 투메이 (Christopher Twomey) 교수는 펠로시 대만 방문으로 빚어진 역내 긴장 고조 수준을 '제4차 대만해협 위기'(the 4th Taiwan Strait Crisis)라 칭했다 (War On Rocks. 2022.08.22). 만약 그렇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다. 왜냐하면 지난 제3차 대만해협 위기(1995-96) 동안 중국의 무력 과시가 무려 8개월간이나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동 기간에 무려 47만 발에 달하는 포탄을 퍼부었다. 이는 펠로시 방문이 끝났다고 해서 대만해협 위기가 종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만해협 긴장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번 펠로시 방문을 구실로 중국이 시행한 군사훈련은 미국의 군 전문가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그들은 주로 훈련 내용, 의도, 성과적 관점에서 봤는데, 중국이 대만해협 중간선을 침범한 것, 훈련 디테일 방면에서 잘 진행된 점, 그리고 중국이 목표한 지점에 미사일과 포탄이 정확도 높게 도달한 점을 유심히 봤다. 일각에서는 중국인민해방군이 미군과 달리 실전 경험이 부족함을 지적하는데 적어도 이번의 경우에서 보자면 중국군을 과소평가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시진핑 시기 들어 군 기율 강화와 '강한 군대'(強軍) 지향, 특히 '싸우면 이기는'(能打勝仗) 군대를 표방한 중국인민해방군의 강도 높은 훈련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번에 대만해협 중간선을 무력화시키고, 대만 상공을 관통하여 미사일을 날리며, 대만을 둘러싼 주요 해상통로 길목을 막는 훈련을 미군의 저지 없이 성공적으로 실시한 점에 주목한다. 중국군이 앞으로도 관련 훈련을 '상시화'함으로써 대만 해협을 '내해화'하고 대만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는 해상봉쇄를 할 수 있는 실제 군사 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렇다면 이번 중국의 군사훈련은 일회성 훈련이 아니라 대만 문제에 있어 새롭고 더 위태로운 국면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35년 동안 근무하며 중국을 다뤘던 존 컬버(John Culver)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현 상황에 대해 "나는 이것이 뉴노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새로운 시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다"고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의 대만 침공의 현실적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는 주장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대외 공세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 지도자의 '성정'이 변수로 언급되고 있다. 이는 흥미롭고 주목받아야할 관점이다. 미국의 분석가들은 시진핑이 중국 주민들의 코로나 봉쇄 항의 시위와 공산당 원로들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위기의 자충수가 된 비현실적 '제로 코로나' 정책 고수, 빅테크와 부동산 기업에 대한 과도한 탄압 고수, 그리고 해외에도 알려진 상하이 등 대도시 봉쇄 정책을 고수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외골수 지도자는 대외관계에서도 무리수를 둘 수 있는 인물로 보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펠로시 의장 대만 방문에 우려를 표명한 이유에는 바로 이러한 시진핑 통치 하의 중국이 군사적 결정에서 미국보다 더 위험을 감수할 용이가 있다는 판단에 의거한 것이기도 하다. 시 주석은 미국의 불장난을 경고했지만, 미국은 오히려 중국 측의 군사적 불장난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이러한 시진핑 체제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시간표가 더 당겨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2027년이란 거론되었으나 최근 미국 정부 내부에서는 '향후 16개월'이란 훨씬 단축된 대만 침공 '시간표'가 제시되기도 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의 초기 우세가 꺾이는 것을 목도한 중국이 이에 교훈을 얻어 대만 침공에 있어서는 기다리기보다는 '일찍 그리고 강하게'(go early and go strong) 신속 작전을 펼쳐서 미국의 개입 여지를 초기에 차단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기다리면 '기회의 문'이 닫힌다는 것이다.

한국에 주는 함의

한국 대통령이 펠로시를 '패싱'하자 중국 관방 글로벌타임스(Global Times)는 사설을 통해 한국을 '존중'(respect)한다고 했다 . 그리고 얼마 후 한중 수교 30주년에 내보낸 기사에서 또다시 이 사건을 언급하며 '한중 우호'를 치켜세웠다. 중국이 이를 매우 큰 상징적인 사건으로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미국 역시 이 사건을 매우 중요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봤다.

외교 전문매체인 <디플로매트>는 8월 27일 "한국의 윤석열을 중국 강경론자로 착각하지 마라"(Don’t Mistake South Korea’s Yoon Suk-yeol for a China Hawk)라는 글을 내보내며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이 윤 정부가 비판했던 문재인 전임 정부와 사실상 비슷한 미중 사이에 '양다리 걸치기'(try to have it both ways)라고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사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 강화' 기조를 명확히 했으나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단계에서도 그럴 수 있는지 미국 측은 의구심을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최우방인 미국과 안보·경제 영역에서 포괄적인 (comprehensive) 교집합을 넓히겠다는 선언을 한 이후 과연 이러한 레토릭이 얼마나 신뢰성이 있는가가 미국 워싱턴 조야에서 계속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이 펠로시를 패싱한 점은 시기적으로 안타까운 점이다.

돌아켜보면 펠로시 논란은 윤석열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서가 아니라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겼다. 펠로시의 아시아 방문국 중 그를 만나지 않은 유일한 국가 정상으로 국제사회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외교 책사들 중에는 대만을 방문하고 온 펠로시를 대통령이 만날 경우 한국 대통령 역시 대만 관련 메시지를 던져야 하고 이것이 중국을 자극할까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분석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기우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바이든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에서 했던 "대만 해협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짚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대만 해협 평화와 안정"은 중국 정부 역시 자주 쓰는 표현이다. 결국, 만나도 자연스러운 만남을 하지 않았고, 역내 평화를 걱정하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을 하지 않아 생긴 실책이다.

종합적으로 한국은 이번에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일 수 있다. 한국 정부의 '펠로시 패싱 사건'은 그것이 보여주는 상징성과 대한민국 외교의 정체성 문제 자체를 다시 소환케 했다. 그 파장은 작아지더라도 그 동심원이 그리는 여운은 더 넓게 퍼질 수 있다. 진중하게 되돌아봐야 할 사안이다. 향후 유사 사건 발생 시 국제사회는 다시 기억을 환기해 이 문제를 재방문할 수 있다. 하나의 에피소드로 간주하고 지나칠 것이 아니라 단단히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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