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편의 친일문장도 쓰지 않은 영광된 작가'로 알려진 한흑구 선생의 삶과 문학에 대한 총체적 재조명 연구서가 첫 출간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연구서는 방민호(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이경재(숭실대 교수, 문학평론가), 한명수(문학평론가, 시인), 박현수(경북대 교수, 시인), 안미영(건국대 교수, 문학평론가), 안서현(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등 여섯 명의 연구자가 참여해 한흑구 선생의 삶과 문학을 다각도로 탐구했다.
1929년 2월부터 1934년 3월까지 5년 동안의 미국 유학과 방랑, 그 기간에 창작한 문학작품과 행동 자취, 그때의 공부와 체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평양에서 발표한 문학작품과 문학적 활약이 한국현대문학사에서 귀중한 의미를 생성한 시기다.
해방 후 월남하여 1948년부터 포항에 정착한 뒤로는 무엇보다 1955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보리」를 통해 보여준 것과 같은 수필문학의 독특한 양식을 창발하고 그 안에 깊은 사유를 시적 문장으로 담아냈다는 사실이 한흑구를 기억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돋보이는 문학적 성취로 남아 있다.
"한흑구는 무엇보다 일제 강점기의 한국문학을 새롭고도 풍요롭게 만들어준 감춰진 문학인으로 이해된다. 그의 존재와 그의 문학작품들을 따라서 우리는 한국현대문학사를 더 면밀하고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
- 방민호(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방민호는 논문 「한흑구 문학의 특질과 한국현대문학사에서의 의미」에서 문인 한흑구의 총체적인 면모를 한국문학사의 맥락에서 충실하게 조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흑구가 한국현대문학사의 빈 공간을 채웠던 소중한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평론가였음을, 그리고 수필가였음을 설득력 있게 조명하고 있다.
이경재의 「불멸의 민족혼 한흑구와 그의 소설에 나타난 미국」은 미국을 다룬 한흑구의 모든 소설을 대상으로 하여, 당대의 미국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을 참조하여 그의 소설에 드러난 미국 표상의 양상과 의미를 살펴본 논문이다.
해방 이전 한흑구 소설의 미국 표상이 지닌 의미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명수의 「흑구 한세광은 민족시인이었다」는 한흑구가 일제의 압박과 박해를 견디며, 꿋꿋하게 민족의 자존심과 자리를 지킨 민족시인이었다는 사실을 밝힌 기념비적인 글이다.
치밀한 논증과 엄격한 해석을 통하여, 민족의식과 당당한 지조가 한흑구의 시뿐만 아니라 수많은 산문에도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글은 한흑구와 관련된 실증적 자료들이 가득해서, 앞으로 쓰여질 수많은 한흑구론의 중요한 기본자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현수의 「한흑구 초기시의 모더니즘 경향과 칼 샌드버그의 도시 민중시학」은 우리에게 낯선 시인 한흑구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글이다.
한흑구는 문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던 처음부터 시를 발표하였으며, 이후에도 시를 지속적으로 써온 시인이다. 박현수는 한흑구 시 중에 재미 기간과 그 이전의 시를 초기시라 규정하고 이들 시에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도시성과 민중 지향성을 분석하고 있다.
안미영의 「한흑구의 영미문학 수용과 문학관 정립」은 한흑구의 문학과 그가 수용한 영미문학의 관련성을 치밀하게 파헤친 문제적 논문이다.
일제강점기에 한흑구처럼 오랜 기간 미국에 머무르며 적극적으로 영미문학을 한국에 소개한 문인은 드물다. 안미영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여러 분야에 걸쳐 한흑구가 영미문학을 수용한 양상에 대하여 치밀하게 정리하였다. 한흑구가 영미 소설 번역을 통해 흑인의 인권뿐 아니라 노동자의 인권 문제에 주목했음을 밝혀내고 있다.
안서현의 「해방 이후 한흑구 수필과 민족적 장소애」는 그동안 미발굴되었던 한흑구의 수필 수십 편을 새롭게 발견하여 학계에 공개하고 있다. 이 논문은 수필가로 널리 알려진 한흑구의 수필관은 물론이고, 그의 수필세계의 전반적인 경향을 해명하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마지막 글인 한명수의 「인터넷 게시 사전류에 나타난 한흑구의 이력에 관하여」는 제목 그대로 인터넷에서 널리 유통되는 사전류에 등재된 한흑구의 이력에 관한 오류들을 치밀하게 밝히고 있는 글이다.
모든 연구가 정확한 자료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작업은 한흑구 연구의 토대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시아 출판사는 "일련의 연구들은 한흑구의 삶과 문학을 해명하는 데 그 길목을 참으로 집요하고 성실하게 살펴보았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는 논문들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한흑구라는 거목이 차지하는 기존 한국현대문학사에서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그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이제 시작이라고 해도 결코 겸사만은 아닐 것이다. 이 정성된 논문들이 작은 출발이 되어, 한흑구의 문학세계를 한국의 정신사에 우뚝 새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빌어본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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