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처음으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양측은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면서도 협력을 이어가겠다며 나름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정작 대통령실에서 한중 간 갈등의 골을 키우고 있는 모양새다.
11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사드 기지 운용 문제가 "8월말 정도면 거의 정상화 될 것으로 본다"며 "사드는 북한 핵미사일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자위권적 방어조치, 방어 수단이며 우리의 안보주권 사안이다. 결코 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또 '3불'에 대해서도 "전 정부의 입장"이라며 "계승할 합의나 조약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그는 이에 대해 문재인정부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은 사안은 없다"며 "윤석열 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입장이 있는 것"이라고 말해 '3불'의 내용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뉘앙스를 보였다.
이는 회담을 직접 실시하고 온 외교부와 다소 온도차를 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외교부 역시 '3불'을 한중 간 합의나 약속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대통령실처럼 중국의 우려 사항을 전혀 고려하지 않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외교부는 "사드에 대해 중국 측이 과거에도 우려를 표시한 바 있으며 그것에 따라 입장을 제기했고 우리도 주권사항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제기했지만, 양측은 공동의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이에 입각해 중국 측도 관련 사안을 다뤄 나가리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10일 한국 정부가 2017년에 밝힌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불참하며 △한미일 군사동맹에 불참한다는 등의 3불 사항 외에 별도로 "사드 운용을 제한한다"는 '1한'을 추가한 것에 대해서도 외교부는 이것이 새로운 입장 표명은 아니며 2017년에 발표된 내용 중 사드의 적용 범위가 중국 측에 미치고 있다는 중국의 주장에 대해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는데, 중국이 이 부분을 '1한'으로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며 의미를 확대하지 않았다.
또 외교부는 중국 정부가 브리핑 다음날인 11일 외교부 홈페이지에 게재한 브리핑 전문에서 한국이 3불에 대해 '선서'(宣誓)했다는 표현을 '선시'(宣示)로 변경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선서'는 대외적이고 공식적인 약속이라는 의미지만 '선시'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수준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이번 한중 외교장관회담 이후 3불에 대한 무게감을 낮췄다는 평가다.
이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선시'라는 뜻은 대외적으로 널리 알린다는 뜻이고 중국 스스로가 번역한 영문 표현도 '어나운스'(announce)였다"며 "과거의 약속이나 합의라고 주장했던 것과 달리 이번 외교장관회담 시 장관 간 공동인식 취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공동인식에는 서로 입장 차가 있지만 양국관계 발전 위해 사드를 걸림돌 되지 않게 관리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외교부는 이번 회담을 통해 사드 문제가 한국 정부의 안보주권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는 점에 대한 중국의 이해도가 이전보다 높아졌고 한중 양국이 향후 양자 관계 관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사드 문제를 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부분도 있다며 이 문제에 대한 최대한의 봉합을 시도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회담이 끝난 이후 대통령실은 별도 브리핑을 통해 사드에 대한 절대성을 강조하며 오히려 그 뇌관을 더 건드리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기껏 중국까지 가서 회담을 하고 왔는데 이후에 대통령실의 고위 관계자가 별도의 브리핑을 하면서 중국에 대해 타협의 여지가 없는 입장을 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사드 문제가 별도 브리핑을 할 정도로 긴박성이나 중요성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었을까?
이보다는 윤석열 대통령이 처한 국내 정치적인 상황이 대통령실의 이러한 입장 발표를 추동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20% 선까지 떨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보수 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안보 이슈를 의도적으로 꺼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또 대통령실이 중국과 관계를 고려해 윤석열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간 접촉을 전화통화로 정리한 것과 관련해 보수세력 중심으로 한 강한 비판에 직면하자, 이른바 '중국 때리기'를 통해 이를 덮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당장 집권세력이 정치적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교를 이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부작용은 정권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국민을 섬기겠다고 취임 초부터 강조했던 윤석열 정부가 이념이 아닌 국민들의 현실에 발을 딛는 신중한 외교를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흔히 외교 문제는 여야가 없다며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국익'만을 바라봐야 한다고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를 고려했을 때 외교문제만큼 이념적으로 극한 대립을 보이는 사안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념과 감정만을 가지고 험난한 국제정세 속 생존을 모색하기 어려운 것 역시 현실이다. 그래서 대통령실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대법원 배상 판결에 따른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를 어떻게든 늦추기 위해 민관협의회를 구성해서 피해자를 설득하고 일본 정부와 수시로 접촉하며 공을 들이고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여기에는 윤석열 정부의 주요 외교안보 인사들이 한미일을 동맹 수준까지 올리고 싶어한다는 이념적 성향도 강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나, 일본과 악화된 관계를 계속 가져가는 것 역시 한국의 국익에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측면에서는 현실적 필요성도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이념적으로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인사들이 중국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몰라도, 중국과 관계를 악화시켜서 한국의 국익에 도움될 것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이를 잘 관리해 나갈 생각을 하는 것이 순서에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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