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발밑 소리
우이동 등산로,
노랫소리까지 파묻진 못한 걸까?
그날을 뿌리째 빨아들인 산나무
국방색 잎이 검붉게 변해 갔다
구덩이 주위에 모인 이들이 웅성거린다
지층으로 짓눌렸던 신음이 흘러내리고
고무신, 은비녀, 아이의 치아
숭인학교 음악 교사 일가족의 것이었다
제자는 그날을 기억했다
바람이 아이의 생울음을 삼켰던
총소리를 문 새들이 노을에 박혔던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탄흔이 선명한 머리뼈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피에 젖은 땅을 파헤쳤을 손가락뼈
흙이 덮이고 꽃이 놓이고
토박이들은 구덩이가 더 있다고 입을 모았다
천둥 치고 계곡물이 불어나는 밤이면
죽은 이들의 떼창이 들린다고 했다
가두고 숨기려는 자들의 손아귀를 벗어나
땅속 소리는 골령골로, 노근리로 이어졌다
한 발 한 발 산을 오른다
백운대 곁을 떠도는 메아리
어둠이 도시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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