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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 투입? 필요할땐 안 보이다 뒤늦게 기름붓는 윤석열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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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 투입? 필요할땐 안 보이다 뒤늦게 기름붓는 윤석열 정부

[기고] 재벌과 노동자,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원칙 없는 원칙…이 정부는 얼마나 공정한가?

노동자가 40일 동안 파업해도 아무것도 안 하던 정부가, 40일 넘게 파업하니 겨우 얼굴을 들이미는 정부가, 고작 교섭 4일을 참지 못하고 법과 원칙을 들먹이고 요란을 떤다. 공권력 투입을 위해 명분을 쌓으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고, 주말 사이 경총과 보수언론의 집중 사격에 화들짝 놀라 벌이는 소란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보건 간에 다름 아닌 윤석열 정권이, 과연 '법과 원칙'을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지 철저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리고 기억을 되짚어 보면 '법과 원칙'은 전두환 군사 독재정권과 그 뒤를 이은 노태우 정권이 노동운동을 포함한 민중운동을 '때려잡을' 때마다 내세우던 명분이다. 그 명분을 가장 충실하게 수행한 이로 지금도 기억되는 자가 유신헌법의 기초자이고 박근혜의 보호자였던 김기춘이다. 마지막 명백을 이은 자는 이명박이다. MB정권의 법과 원칙은 평택의 쌍용차에서 용산에서, 그리고 유성기업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만드는 비극으로 끝났다. 취임 두 달 갓 넘긴 대통령 윤석열은 박정희와 전두환, 이명박과 박근혜의 망령을 단 한 번에 되살렸다.

▲ 대우조선해양 거제 조선소 1도크에서 건조 중인 대형원유운반선 철 구조물에서유최안 부지회장이 스스로 들어가 쇠창살로 용접해 농성하고 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유신정권도 하나회 정권도 늘 '법대로'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그 시절이 법치의 시대라고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고문경찰과 공안검찰도 언제나 '원칙'을 외쳤다. 그 원칙이 박종철의 죽음을 덮고 강기훈을 유서 대필자로 조작했다. 이 땅에서 권력이 법과 원칙을 꺼낼 때마다 누군가는 삶을 송두리째 뽑혀야 했고, 사회의 갈등은 더 어두운 곳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자본이 법과 원칙을 연일 떠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법대로 하겠다고 한다. 이름이 근로기준법인데 노동자 5명 미만이면 근로기준이 적용 안 된다. 노조는 복수로 있어도 되는데 교섭은 복수로 못한다. 교섭창구가 강제로 단일화된다. 하청에서 일하면 원청과 교섭할 수 없다. 원하청 관계의 '관계'는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힘들게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는데 법이 시행되고도 죽은 노동자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처벌된 사용자가 없다. 제조업 파견은 불법인데 불법인 파견으로 처벌받은 사용자가 없다. 법의 권위가 땅속으로 사라졌다. 노조법 절차를 빈틈없이 지켜 파업해도 민사소송 들어오면 다 물어줘야 한다. 민법이 헌법을 잡아먹는다. 중범죄 저지르고도 집행유예로 나오고 감옥가도 다시 나오는 재벌 회장들은 그래서 법대로 뭘 치르긴 한 것인가? 사용자의 곁에 돈만 주면 올곧은 법도 휘게 만드는 대형로펌과 전관이 있고,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가 있고, 거짓도 진실로 포장하는 언론이 있다. 법이 보호하는 권리는 가진 자의 기득권뿐이다. 노동을 국가가 적극 보호해야 한다는 법정신은 이 정부에서는 하루빨리 걷어내야 할 불필요한 규제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칙대로 하겠다고 한다. 이 정권에 과연 원칙이 있는가? 취임 두 달이 넘어도 아직 내각을 완성하지 못했다. 게다가 장관 자리 채운 이 중에는 인사원칙을 거스른 자가 한둘이 아니다. 막말을 한 이, 위장전입을 한 이가 장관 자리를 차지했다. 아빠 찬스와 제자 성희롱은 그나마 중도탈락했다. 교육정책의 수장은 음주운전 전과자고, 문체부 장관은 손배가압류로 노동조합을 파괴하자고 선동했던 이다. 노동부 장관은 산하 기관장 시절 노동부로부터 해임 권고를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 지명한 장관 후보자 중 공직자를 제외한 14명 가운데 7명이 사외이사 출신이다. 한국사회 운동장만큼이나 기울어진 내각이다. 정권의 다른 축인 여당도 마찬가지다. 여당 원내대표는 공직 인사청탁을 무용담처럼 자랑해 청년의 반발을 사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비하하는 자와 극우 유튜버의 가족이 들락거린다. 인사가 사적 인연으로 채워진 결과다. 그 인연의 한 축을 검사 출신이 채우고 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 자신만만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결국 감옥으로 갔다. 윤석열 정권의 원칙은 임기 두 달 만에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선거라는 게임을 이기고 얻은 트로피가 아니다.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나들이 다니라고 뽑아준 자리도 아니다.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한민국 대통령은, 법과 원칙대로 처리했을 때 시민 모두가 승복할 도덕적 권위를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법과 원칙으로 풀 수 없는 복잡한 사회갈등을 조정할 정치적 능력을 임기 마지막 날까지 증명해야 하는 자리다. '대통령은 처음이라 봐달라'는 핑계 따위가 먹힐 수 없는 자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통령으로 정치 입문한 전 검찰총장 윤석열은 사회갈등의 불을 끄는 소방수 역할이 필요할 때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다가 갈등을 풀어보려는 노력에는 되레 기름을 붓고 있다. 대우조선의 파업이 남모르게 조용히 벌어진 일도 아닌데 한 달이 다되도록 정부의 역할은 없었다. 게다가 대우조선 문제에서 정부는 제3자가 아니다.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을 타고 올라가면 윤석열 대통령이 사실상 원청 사용자인 셈이다. 노사관계는 자율이 원칙이라고 반복하면서 정작 자신이 당사자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모양이다.

▲18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관계자가 정부의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 파업 관련한 담화문 발표를 텔레비전으로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인제 와서는 어렵게 만든 교섭을 뒷받침하고 빠른 해결을 위한 노력은 내팽개치고 노사의 대화에 악영향을 미칠 행동만 골라 하고 있다. 합의의 실마리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 어려운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외친 '법과 원칙'은 사측에게 버티라는, 아니면 뛰쳐나오라는 신호나 다름없다. 노동운동 입장에서는 노정관계·노사관계와 노동의 시계가 30년 뒤로 돌아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노동운동이 정당한 노동조건을 되찾으려 할 때마다 마주해야 했던 법과 원칙이라는 벽은 우리 사회의 공포다. 노조를 응징하는 데는 유능하지만 정작 현장의 교섭을 만들지 못하는 실정법의 한계가 명확하고, 재벌과 노동자, 기득권과 소수자, 대상에 따라 바뀌는 원칙 없는 원칙이 살아있는 한 법의 공정도 원칙의 정당함도 기대할 수 없다.

결국, 법이 기울어졌고 원칙이 굽은 사회에서 '법과 원칙'대로는 국가 권력이 시민에게 가하는 테러다. 살펴보면 테러가 바로 공포라는 뜻이다. 공포에 기댄 통치행위가 민주주의와 조금이라도 어울릴 거로 생각한다면 윤석열 정권은 위험한 길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 지금이 멈춰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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