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6월 6일자 황선진의 '탈춤과 나' 3편에 이은 글입니다. (바로가기)
조선 중기 이후, 당대 민중들이 더 자유롭고, 더 풍요롭고, 더 신명나는 삶을 살려는 염원에서 탈춤은 이 땅에 자리잡았다. 그 탈꾼들은 그 이전 시대의 문화적 유산을 이어받았을 것이고, 그것을 당대에 재창조함으로써 뒷 세대로 전해주었을 것이다.
그 탈꾼들의 꿈을 이어받아 70년대 이후 탈춤은 부활했다. 지금 탈꾼들은 어떠한 삶을 원하고 있을까?
나는 대한민국 구성원의 한 사람이다. 대한민국은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을 온전하게 구현할 수 있을까?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온전한 자주성을 가지고 독립을 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떠한 것일까?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에서 권리와 의무를 될 수 있으면 충실히 수행하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아닌 또 하나의 ’나라‘를 꿈꾸고 있다. 국가 안의 나라, 이군일민(二君一民)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 선인(先人)들이 이군일민 시스템에서 살아왔다. 소도(蘇塗, 솟터)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흔적이다.
지금이야 나라와 국가를 마치 동일한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국가’는 창과 방패, 즉 무기로 영토를 확보하고, 분명한 멤버십을 가지는 국민들이 있으며, 통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헌법이 있다. ‘나라’는 본래 영토가 없다. 분명한 멤버십을 가지는 국민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강제적으로 관철되는 법률체계도 없다.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공동체로 출발한 것이 나라이다.
탈꾼이 되고 나서 약 27년이 지난 후, 나의 가슴에 들어온 삶의 목표는 “스스로 살리고, 서로 살리고, 세상을 살리세!”이다. 1999년이었다. 벌써 23년이 지났다. 날이 갈수록 더욱 뚜렷해진다. 최근에 한 선배님으로부터 “세상을 살리고, 너를 살리고, 나도 좀 살자!”라고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스스로 살리고, 서로 살리고, 세상을 살리세!”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렇게 살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것은 ‘하늘의 이치에 따라 순리(順理)대로 사는 삶의 시스템’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시스템은 저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이 누렸던 것이다. 환인(桓因)-환웅(桓雄)시대를 거쳐 분명한 역사적 근원을 가지고 있는 고조선-고구려-백제-신라 등의 일정 시대까지 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그 시스템은 삶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그 시스템을 한 마디로 하자면, ‘나라’이다.
선가(仙家)에 내려오는 오정도론(五正道論)이 있다. 그중에 정언(正言)이 있다. 물론 불가(佛家)와 유가(儒家)에도 유사한 개념이 존재한다. 정언이란 말의 개념을 분명히 하고,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나라’는 ‘나’와 ‘라’의 합성어이다. ‘나’는 ‘땅’이고, ‘라’는 ‘태양, 또는 '하늘(天)'이다. 좀 더 부연하면, '라'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중심이다. 나는 ’나라‘를 ’하늘의 이치에 따라 순리대로 사는 삶의 시스템‘으로 받아들인다. 기독교 성경 말씀에 나오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탈꾼들이 마당에서 민중들의 애환과, 풍자, 해학 등을 드러내 왔던 그 본 바탕에는 무등(無等)세상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 자리잡고 있다. 무등 세상을 시스템화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나라'이다.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나라를 구성하는 기초공동체가 필요하다. 전통사회에서는 그 기초공동체는 마을이었다. '나라'는 마을(또는 부족)의 연맹체이다.
지금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뜻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나라'에 대한 지향이 같은 사람들이면 나라를 구성하는 기초공동체의 필요충분조건에 값한다. 탈춤의 부흥, 아니 그 이름이 민족굿이든, 마당극, 또는 마당굿, 민족예술이든 하늘의 이치에 따라 살고자 하는 뜻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필수적이다. 그것이 토대, 즉 하부구조로서 상부구조인 문화예술의 터전이다.
현재 인류에게 몰아닥치고 있는 코비드19, 기후위기 등과 같은 숱한 재난들도 ’하늘의 이치‘에서 멀어진 땅 위의 시스템과 직결되어 있다.
명멸(明滅)해 간 수많은 탈꾼들을 생각해 본다. 장길산, 그리고 그와 뜻을 같이 했던 탈꾼들은 그냥 꿈만을 간직하고 살았을까? 아니면 나름대로 일정한 삶의 시스템을 구축하였을까? 최근에 저 세상으로 가신, 탈꾼들의 벗 김지하가 꿈꾼 것이 바로 ’나라‘였지 않을까 싶다. 동양에서는 그 '나라'에서의 삶을 '대동세상'이라 했다.
어쩌면 '나라'로 가는 길이 인류의 위기를 나름대로 포월(包越)해가는 외길이라는 생각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것이 50년을 맞이하는 한 탈꾼의 꿈이다.
나도 칸!
너도 칸!
우리 모두 칸! 칸! 칸!
스스로 살리고
서로 살리고
세상을 살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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