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영문학자인 오민석 시인의 세 번째 에세이 <나는 터지기를 기다리는 꽃이다-먹실골 일기>(뒤란)가 15일 출간됐다.
복잡한 도시를 떠난 오민석 시인이 2020년 한 해 동안 강원도 홍천 산골인 먹실골에 살면서 일기처럼 기록한 글들 속에는 우리의 삶에 존재하는 이별의 아픔을 직시하고, 순간의 소중함을 기록하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문학적인 사유와 시적인 표현이 가득한 글들은 담백하고 잔잔한 감동을 준다.
오 시인이 본 먹실골에는 환대를 배우는 학교가 있다. 거대한 나무가 감싸는 오두막에서 저자는 자연과 사람을 보고, 작고 위대한 세상을 본다. "쓸쓸한 시"를 쓰던 그에게 위로의 장소로 자리한 먹실골은 어떤 곳일까.
다듬어지지 않았던 산방을 몸소 가꾸어 정원으로 만든, 여전히 만들고 있는 할아버지가 있다. 능숙한 솜씨로 오두막을 짓고, 작은 손잡이 하나까지 나무로 깎아내는 '자연주의자' 목수가 있다. 만나고 헤어짐에 따라 다르게 울 줄 아는 흰둥이 한 마리가 있고, 저자가 글을 쓸 때 조용히 곁을 지키는 시츄 한 마리가 있다.
6월에도 난로를 떼야 할 만큼 춥다. 가끔 멧돼지를 쫓기 위해 틀어두는 호랑이 소리가 울려 퍼진다. 모르는 사이, 모르는 장소에 새들이 둥지를 짓는다. 어떤 자연이 죽고, 다시 살아난다. 세상 속에서 모두의 '밖'으로 쫓겨났다고 느껴질 때, 자연은 기꺼이 나의 '바깥'이 되어준다. 오 시인의 <나는 터지기를 기다리는 꽃이다>는 외지지만 그 너른 품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은 <개기는 인생도 괜찮다>, <경계에서의 글쓰기>에 이은 오민석 시인의 세 번째 에세이다.
"태양이 안개의 껍질을 벗기고 온 세상이 투명해지면 '항구적인 슬픔'이 이슬처럼 사라지기를. 나는 또 여느 날처럼 경전을 읽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슬픔의 빙판 위를 미끄럼 치듯 지나갈 것이다." (45-46쪽)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안'에서 '밖'으로 쫓겨나는 것이다. 아내마저 잃은 나는 이제 완전히 혼자 '바깥'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인피니튜드를 꼬옥 안고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처럼 '바깥'의 인생을 사랑할 것이다." (47쪽)
"희망은 늘 시련이나 고통을 지나서 온다. 지혜가 초상집에 있다는 경전의 말은 옳다. 통점에서 올라온 기쁨은 뻔뻔스럽지 않다. 그걸 받아들이고 사랑해도 죄가 아니다. 그러니 기쁨 중에도 늘 아프기를." (267쪽)
오민석 시인은 충남 공주 출생으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며 현재 단국대학교 영미인문학과 교수로 문학 이론, 현대사상, 대중문화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1990년 월간 〈한길문학〉 창간기념 신인상에 시가 당선돼 시인으로 등단했고,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며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굿모닝, 에브리원>, <그리운 명륜여인숙>, <기차는 오늘 밤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가 있고, 문학평론집으로는 <몸-주체와 상처받음의 윤리>, 문학이론 연구서로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 <정치적 비평의 미래를 위하여> 등을 썼다.
최근 작고한 故 송해 선생의 삶을 대중문화 연구 차원에서 기록한 송해 평전 <나는 딴따라다>를 냈고, 그 외에도 <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 등 대중문화 연구를 꾸준히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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