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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이라는 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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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이라는 기척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제주 4.3 북촌리 학살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북촌이라는 기척

목구멍에 걸린 바람을 거머쥔 허공

고개가 휘어 반신불수가 된 팽나무를 읽는다는 건

숨을 참고 북촌 앞바다로 뛰어드는 일

음력 동짓달 보름,

아침부터 저녁노을 어스름이 불쑥 들이닥쳐

이승과 저승으로 갈려버린 운동장

한쪽만 신고 나온 고무신, 입은 얼어붙고

먼저 소리 지른 풀이 풀썩 주저앉자

동쪽으로 나 있던 풀들이 한꺼번에 스러졌다

초록을 빨강이라 짖어대며 절망을 떠넘긴 검은 개들

북촌 바다도 어쩌지 못한 핏덩이를 안고

저승 문턱을 넘었다

팽나무는 몇 날 며칠 그늘만 쌓아두고

바람은 등이 휘도록 울어 재꼈다

서쪽으로 등 돌려 우는 마른 풀들

억새가 쓴 회고록에서 피 묻은 얼굴을 보았다

모르는 사람인데 아는 얼굴처럼 슬펐다

슬픈 꿈은 며칠이 지나면 잊히지만

눈앞의 기억은 눈 뜨면 나타나 손을 흔든다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 태어나 웃지 못한 아이들

원망과 안녕을 번복하며 밑으로 물 밑으로

사라지는 등을 껴안고 화석이 된 눈빛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붉은 섬광으로

한때가 영원으로 떠도는 곳

너는 여전히 여기 살고 있다

▲ 북촌국민(초등)학교 입구의 팽나무ⓒ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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