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지방선거를 앞두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성별 할당제'의 확대 적용을 국회의장 및 각 정당 대표에게 권고했다. 다만 지방선거 후보등록이 이미 시작된 탓에 일각에선 '너무 늦은 권고'라는 지적도 나온다.
인권위 차별시정과는 12일 '정치 영역의 성별 불균형 개선 권고'에 관한 결정문을 배포하고 국회와 각 정당이 "공적 정치 영역에 명백히 존재하는 성별 불균형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와 실질적인 평등을 이룰 수 있도록" 제도 및 당헌·당규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구체적인 개선점으로 △총선 및 지선 공천할당제를 비례대표 의석뿐만 아니라 지역구 의석에 대해서도 의무화 △광역 및 기초 지방자치단체장 공천에도 할당제를 적용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를 정당의 책무로 천명하고 각 정당에 그 근거 규정 마련 등을 국회의장에게 권고했다. 할당제와 관련해선 "특정 성별이 전체의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않도록 할 것"이란 조건을 명확히 했다.
이어 인권위는 각 정당의 대표들에게도 △여성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고 그 이행 방안을 당헌·당규에 명시할 것 △주요 당직자의 직급별 성별 현황을 파악하여 관련 통계를 구축·공개할 것 △당직자·당원을 대상으로 성인지 의회에 관한 내용을 교육할 것 △여성 정치인 발굴 및 육성을 위한 방안을 마련할 것 등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21대 국회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로, 이는 국제의회연맹 기준 세계 190개국 중 121위이자 전 세계 평균 여성의원 비율 25.6%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권고 결정의 배경을 밝혔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국회 및 지방의회 선거 후보자 추천 시 비례대표 의석에 한해서만 여성 50% 이상 추천을 '의무'화하고 있다. 지역구 의석에 대해서도 여성 후보자를 30% 이상 공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지만, 이는 각 정당의 '노력' 사항으로만 규정돼 있어 실질적인 효력을 지니지 못한다. 이에 시민사회 연대체 정치개혁공동행동 등은 6.1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성후보 30% 이상 공천을 의무화할 것'을 국회에 주장해왔다.
인권위 또한 이날 결정문에서 "비례대표 의석수가 지역구의 15% 수준에 불과한 상황에서 비례대표에 대한 공천할당제만으로는 여성의원의 획기적인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제21대 국회의 경우 비례대표 의원은 전체 47명 중 여성의원이 24명으로 59.6%를 차지하고 있으나, 지역구 의원은 전체 253명 중 여성의원이 29명으로 11.5%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여성계에선 이날 인권위의 권고사항이 지난해 말과 지난 2월과 3월까지 세 차례 회의를 거쳐 이미 결정된 사항임에도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서야 공개·배포됐다"며 발표 시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12일 오후 발표한 성명에서 "인권위가 6.1 지방선거 후보등록 첫 날인 5월 12일에 결정문을 공개·배포함으로써 '성평등한 정치대표성 확보를 위한 정책 권고'는 이번 지방선거에서부터 영향력을 미칠 수 없게 됐다"며 "인권위의 권고는 더 일찍 나와 정당들이 성평등 공천을 실행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해야 했으나, 결정문이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을 스스로 차단해버렸다"고 지적했다.
성명에서 여세연은 이번 인권위 결정문 속에 실린 '반대의견'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인권위 측 결정문에는 "(성별 할당제는) 정당활동의 자유나 유권자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역차별 등 기본권 충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상철, 한석훈 위원의 반대의견이 게재돼 있다.
여세연은 해당 반대의견에 대해 "정치영역에 엄연히 존재하는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며, 남성중심의 권력구조를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용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히 성평등에 대한 백래시"라며 "반대라는 미명하에 위계적이고 성차별적인 권력관계를 용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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