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피의 무덤 스무날
탕,타탕!! 타탕!!
신이 허락하지 않은 죽음을
전시하러 온 침입자들
나른한 햇볕을 깨뜨린 파열음
유리창 밖 난입한
초록의 파편인가 하였다.
.
흰 병동을 깨우고 온 인민군들
서울대부속병원의
6월 28일 아침을 깨웠다.
피에 젖은 공포의 비명들
“원쑤 놈의 앞잡이들이 여기
누워 있다!”
중환자, 국군부상자들에게
총알을 쏘았다.
숨은 자들 찾아 석탄더미에 생매장하고
살려 달란 외침도 떨림도
석탄더미에 묻혔다.
만개한 꽃들 초여름의 일
흰 병동을 붉은 피로 물들인
‘학살’이었다.
“죽을 목숨 살려고 온 병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 아들, 어떻게 널 보내-
아들아, 가지 마라. 엄마 두고 가지 마-”
죽어야할 이유도 모른 망자는
아들이고 남편이고 아내였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목숨은 없다.
시신들 널린 이곳
목숨 스러진 피의 무덤에서
스무날을 울었다.
역사 앞에서 묘비명을 쓴다.
누가 원쑤놈의 앞잡이인가!
반동분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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