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빌려온 책은 모두 돌려주라”라는 유지에 따라 500년 만에 주인에게 서책이 돌아갔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오는 2일 오후 2시 도산서원 전교당에서 국학자료 반환 및 인수인계 기념식을 진행한다.
이번 행사는 도산서원운영위원회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문헌통고(文獻通考)’ 133책과 ‘적선(積善)’ 목판 2점을 영천이씨 농암종가로 반환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마련됐다.
▲ 도산서원이 해당 서책과 유물을 농암종가로 돌려주는 배경
도산서원에 도서를 보관하는 광명실과 책판을 보관하는 장판각이 설립된 후 서원은 온도와 습도에 취약한 도서와 책판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정성과 노력을 쏟아왔다. 그리고 2003년 항온항습 수장고 시설을 완비한 한국국학진흥원에 만 여 점이 넘는 다량의 유물들을 기탁하면서 보존 관리의 어려움을 마침내 해결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도산서원이 기탁한 유물 가운데 ‘문헌통고’ 133책(348권 140책 중 7책 결락)이 명종(明宗)이 1558년에 당시 사헌부집의에 재직 중이던 하연(賀淵) 이중량(李仲樑, 1504~1582)에게 직접 하사한 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중량은 농암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넷째 아들이다. 더불어 책 속에서 “책 주인 영천 이 공간(公幹, 이중량의 字)이 진성(眞城) 이 경호(景浩, 이황의 字)에게 보라고 주다.[冊主永陽李公幹 供覽眞城李景浩]”라는 기록도 찾았다. 이에 따라 도산서원운영위원회와 퇴계종가는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빌려온 책은 모두 돌려주라”라는 유지를 되새기며 반환을 결정했다.
▲ 500년을 이어 온 인리(仁里)의 이웃, 퇴계종가와 농암종가
퇴계 이황과 하연 이중량은 서로 막역한 친구로 1534년(중종29)에 문과에 동방급제한 이후 관직 생활과 더불어 일생을 함께했다. 이후에도 두 가문은 예안에서 대대로 세거하며 오랜 세월 동안 가문 간의 정의를 돈독하게 다져왔다.
그 정의가 두텁지 않았다면 500년 전 빌려준 책을 500년 후에 돌려주는 일이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도산서원운영위원회는 이번 행사를 기회로 도산서원 장판각에 보관돼 있다가 본원에 기탁된 선조 어필 ‘적선’ 목판도 함께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이 목판은 농암 선생의 여섯째 아들 매암(梅巖) 이숙량(李叔樑, 1519-1592)이 선조에게 하사받은 것이다.
한국국학진흥원 정종섭 원장은 “책이 귀하던 시절 133책이라는 이렇게 큰 규모의 책을 빌려주며 돌려볼 수 있었던 것은 두 선생이 서로의 학문을 깊이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두 분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보기 드문 깊은 우정 그리고 그 뜻을 이어가는 후손들의 미담은 바쁘고 삭막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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