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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문학이 조명한 김덕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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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문학이 조명한 김덕기 화백

박광영 시인이 ‘순천미술사 산증인’ 김덕기 화백을 만나다

순천문학이 2022년 봄호(통권 144)에서 순천미술의 산 역사이자 증인이며 ‘장미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서양화가 김덕기(남.90) 화백을 만났다. 김 화백을 만난 이는 순천문학회 박광영 시인이다.

박 시인은 “김덕기 화백을 만나러 가는 길은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로 매곡동의 상징이 된 홍매화가 절정을 넘었다”고 글을 시작하면서 “지난 2007년 김덕기 화백이 매곡동 주민자치의원장을 하던 시절 홍매화를 심기 시작했다”는 순천 매곡동 홍매화의 시작을 일깨웠다.

순천문학 144호가 소개한 장미화가 김덕기 화백 편에 실린 박태준 김종필 전 총리 등과 인연. ⓒ순천문학 144호 발췌

박 시인은 ‘화가와 문학’ 이라는 테마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계절마다 보내주는 순천문학 잘 읽으면서 큰 욕심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일에 매진해 왔다”는 김 화백의 말씀에 매료되어 가면서 “화가이기도 하지만 문학이나 책도 좋아해서 책을 받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빼놓지 않고 읽고 있다”는 김덕기 화백의 고백에 또 한 번 놀란다.

김 화백이 문학과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젊은 시절 시골 중학교 미술교사로 간적이 있는데 국어교사가 없어서 국어까지 가르치게 되었다”며 “그 때는 중학교도 시험 봐서 들어가던 시기라 5, 6년 정도 국어과목을 가르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 계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국어과목도 함께 가르치며 더러는 음악까지 곁들여 수업을 하면서 그런 과정들이 결국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김덕기 화백. 무엇보다 김덕기 화백은 장미그림으로 유명하다.

김덕기 화백의 장미그림도 계기가 있다. 김 화백은 “포항제철을 만든 박태준 회장과의 인연이 장미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됐다”면서 “박태준 회장이 광양제철을 만들 때 광양제철을 상징하는 사화(社畵)가 장미였는데 빨간 장미를 그릴 작가를 공모했고 운이 좋았는지 내가 선정됐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 일을 계기로 “포스코와 기업의 대표들도 장미 그림을 갖고 싶어 주문이 넘치도록 들어와서 장미그림을 그려야 해서 자연스럽게 장미화가로 알려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 화백은 박 시인에게 JP(김종필 전 총리)와 인연에 대해 “1987년 경 순천 중앙동 금강호텔 대표가 호텔커피숍에서 초대전을 갖게 해 주었는데 그 때 전시한 10호짜리 그림을 여수에 업무차 가려던 김 전 총리가 폭설에 발이 묶이면서 금강호텔에 묵게 되었고 설경 그림을 보고 김 전 총리가 소유하게 된 것”이라며 “그림 값으로 100만원이라는 당시로는 큰 금액을 주었다”고 회상했다.

김덕기 화백이 김종필 전 총리와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과 깊은 친분을 맺고 있는 것은 순천지역 미술인들과 나이든 어르신이라면 어느 정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들과 인연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 이면에 대한 이야기가 책을 통해 소개되는 건 또 다른 맛과 느낌이다.

박광영 시인은 김덕기 화백의 스승인 故)오지호 화백과 맺어진 김 화백의 청년시절 이야기도 소개했다. 오지호 스승과 첫 만남에 대해 김 화백은 “몸집이 크지 않은 조그마한 체구이신데 대화를 하다가 담배가 떨어져 담배를 사다드린 게 계기가 된 후 청년 김덕기의 멘토가 되어주셨다”고 전한다.

김덕기 화백은 “스승님께서 평생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 삶이냐고 말씀하신 것이 화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김덕기 화백은 순천미협 50년 역사의 창립회원이기도 하다.

김 화백은 “순천미술협회를 만든 지 벌써 50년 되었는데 그때는 그림만 그리는 전업화가들이 없었다”면서 “학교교직자들이 주축이 되어 모여서 주말이면 스케치를 하고 작품 이야기 나누고 친목을 다지는 동아리로 시작했다”고 전했다.

김덕기 화백은 인생 황혼길에 접어들어 ‘회고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순천 미술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다”면서 “지역에 족적을 남긴 화가들이 많은 만큼 이를 기념하는 공간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시립미술관이 없는 지역 현실을 지적했다.

박 시인은 “선생과 환담을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동천의 둑방길에 서 있는 벚꽃나무들의 꽃망울이 영글었다”며 “화가라면 붓을 들고 싶어지는 계절이다”고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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