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한국 정부는 박노해 시인을 포함해 일부 인사들을 제재한 조치가 정당하다며, 국제사회가 제기하는 인권 탄압 문제에 분주하게 외교적 대응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15일 외교부가 공개한 40만 5000페이지 분량의 1991년 외교문서에 따르면 1991년 9월 당시 외무부 인권과장은 주한 독일대사와 면담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박노해 시인이 무기 징역을 받은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당시 독일 대사는 독일에서는 극소수 극렬 테러리스트에게만 무기징역이 선고되는데 그에 비해 박노해 시인에게 가해진 형벌이 과도한 것 아니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인권과장은 "북한의 남파간첩보다 죄질이 훨씬 더 중하다고 할 것인데, 남파간첩의 경우 주로 무기징역형이 선고되어 왔다"며 "합당한 형이 선고됐다고 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위 양심수, 정치범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하나 그런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고도의 전술 전략 중 일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인권과장은 "근래 한국의 인권상황은 매우 향상되었다고 생각한다. 인권보장을 위한 각종 제도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 도달해 있으므로, 제도상의 결함으로 인한 구조적인 인권유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5월 영국 외무성 한국 담당관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인권과장은 "공무원이 개인적으로 어느 조사대상자 또는 수형자에 관하여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고문이나 가혹한 행위를 가하는 경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며 고문에 문제가 없다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다만 그는 "이러한 잘못은 그 공무원의 인격과 자질에서 비롯된 문제이지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 담당관이 군사정권의 고문 피해자인 김양기 씨를 만나 고문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인권과장은 "재소자와 연관이 없는 제3자 접견은 허용될 수 없다"며 거부했다.
당시 정부는 인권 문제에 대한 해명과 함께 주요 인사들에 대해 직접적 탄압을 자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당시 유럽국(구주국)은 '황석영 서독입국 대책' 보고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서독의 비판적 시각이 상존한다. 본건이 한·독간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것은 불바람직하다"며 황석영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또 1987년 '김근태 고문사건'을 국제사회에 폭로하면서 남편인 김근태 의장과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공동 수상한 인재근 의원이 출국 금지 조치를 받으면서 시상식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인 의원에 대한 집시법 위반 혐의가 불기소 처분을 받자 출국을 허용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외교부가 공개한 이번 외교문서에는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문제 △노태우 대통령의 유엔, 미주, 일본 등 순방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1990년대 초 한국 인권상황 △1967년 발효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관련 문서 등이 포함돼 있다.
문서의 원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이용할 수 있으며, 외교문서철 목록 및 수록 내용은 주요 도서관과 정부 부처 자료실 등에 배포된 「외교문서 공개목록」, 「대한민국 외교문서 요약집」(구 외교사료해제집)과 외교사료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총 29차에 걸쳐 약 3만 2500여 권(약 463.5만 여 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했다"며 "앞으로도 국민의 알권리 신장과 외교행정의 투명성 제고를 위하여 지속적으로 외교문서 공개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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