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경의 매달통신-격동세계'에서는 상기 미패권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중국과 아세안의 행보(行步)와 지략(智略)에 관한 몇 가지 문건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특히 대한민국과 동병상련의 입장에 처한 아세안 국가들의 실리적 행보와 지략이 한국 정치인들에게 귀감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세 번째 칼럼은 지난 1일과 2일 <Global Times>에 연이어 실린 칼럼으로 '중미 쟁패(爭霸)에 대한 아세안의 입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은밀히 추진하던 아세안 국가들과 정상회담을 돌연 취소한 가운데, 싱가포르 리셴룽(Lee Hsien Loong) 수상이 급히 워싱턴을 방문하여 국제 정세에 대한 아세안의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3월 말 4월 초 태국·인도네시아·미얀마·베트남의 외무장관들은 차례로 중국을 방문하여 왕이 외교부장과 회담을 갖고 현안을 논의하였습니다. 이들 아세안 국가들이 펼친 중립적 그리고 실용적 외교는 가히 대한민국이 본받을 모범이라고 평가할 만합니다. 편집자.
미국은 싱가포르 리셴룽 수상의 조언에 귀를 기울어야
리셴룽(Lee Hsien Loong) 싱가포르 총리가 지난 3월에 8일 동안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리 수상은 국제사회의 연대와 협력을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려면 "비용이 매우 높다"고 워싱턴에 상기시켰습니다. 그는 또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가 "윈-윈 기반"으로 구축되어야 하며 "전략적 또는 안보적으로 잠재적 적대 기반이 아니라 가능한 지역의 모든 국가들이 참여하는 방법으로" 구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리 수상이 워싱턴에 위의 내용을 상기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는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초강대국을 '쌍둥이'로 묘사하고 두 강대국의 충돌은 세계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비슷한 견해를 여러 차례 표명해 왔습니다.
싱가포르는 미국과 공식적인 조약 동맹국은 아니지만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파트너 중 하나입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싱가포르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주둔을 위한 닻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동시에 싱가포르는 아세안(ASEAN)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리 수상의 발언은 워싱턴에 대한 진정성 있고 아세안을 대표하는 상징적 내용입니다.
"코끼리들이 싸울 때 상처를 받는 것은 들판의 풀이다"라는 표현이 오늘날 점점 더 자주 거론되고 있는데, 이는 현실적 불안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과 미국 중 한편에 서는 것을 꺼려하고, 강대국 게임이 레슬링의 링이 되는 것을 걱정합니다. 싱가포르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 비교적 좋은 균형을 이룬 국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봉쇄가 추진되면서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리 수상이 중미 관계에 대해 객관적인 발언을 했을 때 미국측이 '베이징의 속삭임'이라는 닉네임을 붙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미국이 귀를 막고 눈가리개를 하고 맹렬한 공격을 가한다 해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역내에서 인기가 없다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을 것입니다. 레트노 마르수디(Retno Marsudi) 인도네시아 외무장관은 최근 미국이 안보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는 달리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보다 강력한 경제 의제에 집중할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는 "아세안 국민이 원하는 것은 안보만이 아니라 번영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이 국민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면 역내 국민은 이러한 전략개념을 개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물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아세안 국가들은 대체로 미국이 이 지역을 중국에 대한 "교두보"로 만들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 잠시 일부 국가들이 충분한 양보를 하면 미국이 충분히 지원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약속은 창호지와 같다는 것이 거듭 증명되었습니다. 워싱턴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의제는 다른 나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자국에만 관심을 두면서, 해당 국가들은 고통을 겪는 것을 지켜보며 주변의 국가들을 더욱 경계하게 만들었습니다. 싱가포르는 미국이 후원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적극 수용했지만 결국 미국이 탈퇴하면서 무산되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나토(NATO, 북대서양 조약 기구)를 홍보하고 나토의 유사한 기구를 지역으로 확대하려고 하고 있으나, 이는 지역에 더 많은 분쟁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세계화에 깊이 의존하는 국가인 싱가포르는 강대국 간의 지정학적 대결을 용인할 수 없으며 주변 환경의 안보와 안정을 특히 중요시합니다. 따라서 지정학적 위험에 매우 민감하고 상황에 대한 미래지향적 판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싱가포르의 정치인들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 매우 위험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해 왔으며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받아들일 것을 거듭 촉구"하면서, "억지의 선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근본적인 이익이기도 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성적 목소리 대부분을 워싱턴 당국은 무시해 왔습니다.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기 위해 촘촘한 그물을 짜고 싶어도 감시망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파이즈 아이즈(Five Eyes, 영국·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5개국의 상호 첩보 동맹) 동맹이든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 4개국을 통합한 국제 기구)든 오커스(AUKUS, 호주·영국·미국의 삼각동맹)이든 이들 회원국은 아세안 국가가 아닙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리셴룽 수상과 만난 뒤 기자회견에서 인도-태평양을 6번이나 언급했지만 리 수상은 강력한 블록-정치를 하는 미국 개념인 상기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아시아'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의 입장과 분명한 격차를 보인 셈입니다.
당당한 대의에는 많은 조력자의 참여가 따르지만, 부당한 대의는 소수의 추종자들만 쫓습니다. 강대한 어떤 세력도 흐름의 추세와 주변국들의 생각에 반하여 역행할 수는 없습니다. 워싱턴이 여론을 조작하여 속일 수는 있지만 인도-태평양 전략의 빈 공간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워싱턴이 가까운 동맹국인 싱가포르의 조언을 듣지도 못한다면, 현실이 따가운 교훈을 제공할 것입니다.
아세안 외무장관들의 연이은 방중, 오랜 인연과 전통 이어받아 주요 현안을 논의하다
사전에 기획하였던 미국-아세안 정상회의가 중단된 가운데 아세안 국가 외무장관들의 이번 방중에 대한 중국과 아세안 관계를 비방하려는 미국 언론 보도를 일축하고,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중립입장 등 현 현안에 대한 협상과 조정을 거치는 것은 지역의 전통이자 오랜 중국-ASEAN 관계의 연장선이라고 외교 전문가들은 확인하였습니다. 중국 외무부가 발표한 뉴스에 따르면 왕이(Wang Yi) 부장은 지난 토요일에 돈 프라무드위나이(Don Pramudwinai) 태국 부총리와 외교부 장관을, 금요일에는 우 운나 마웅 린(U Wunna Maung Lwin) 미얀마 외무장관, 목요일에는 레트노 마르수디(Retno Marsudi) 인도네시아 외무장관을 중국 동부 안후이성 툰시에서 만났습니다. 조만간 필리핀 외무장관도 방문하여 왕 부장을 만날 예정입니다.
왕 부장은 돈 프라무드위나이와 회담에서 중국은 태국과 전면적인 협력을 추진하고 "일대일로(一带一路)" 협력 개요에 대한 협의를 강화하고 중국-태국 철도 건설을 가속화하고 중국-라오스와 연결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북쪽의 철도와 남쪽의 태국-말레이시아-신철도를 통해 아시아 횡단 철도의 중간선이 완전히 연결되도록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왕 부장과 돈 프라무드위나이 장관의 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중국과 태국은 평화 협정에 합의하고 대규모 인도주의적 위기를 피하고 세계에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억제할 때까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평화회담을 계속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양인은 경제 회복뿐만 아니라 힘들게 얻은 아시아 지역의 평화로운 발전을 중시한다고 확인했습니다.
미얀마의 우 운나 마웅 린(U Wunna Maung Lwin) 장관의 회의에서 왕 부장은 중국은 항상 미얀마를 이웃외교에서 중요한 위치에 두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미얀마 경제회랑(CMEC) 건설 가속화를 포함한 공동의 미래와 함께 주요 랜드마크 프로젝트를 더욱 잘 수행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왕 부장은 미얀마는 아세안 가족의 일원이며 아세안 국가들이 아세안 접근 방식을 고수하고, 단결을 유지하고, 통일된 목소리를 내며, 미얀마와 협력하여 내정간섭 배제의 원칙에 기반한 아세안 "5가지 합의원칙"을 건설적으로 이행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우 운나 마웅 린 장관은 국제적 변화가 자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Wang은 중국은 미얀마가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협력하고 도울 의향이 있으며 우크라이나 위기의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처리하고 일방적인 제재와 부당한 개입의 관할권에 반대하기 위해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왕 부장은 레트노 마르수디 장관에게 중국과 인도네시아는 양국 모두 주요 개발도상국이자 신흥경제국들의 대표이며 양측은 광범위한 공통 이익을 공유하고 호혜적인 협력을 심화하고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왕 부장과 레트노 장관 간 회담에서 두 사람은 중국-아세안 전면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심화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일대일로 구상과 태평양 지역과 아세안의 주요 분야 전망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행동계획을 수립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왕 부장은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전망 및 목적과 지역에서 진영 대결과 긴장을 유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상당히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당사자는 이를 경계해야 하며 역내에서 냉전 논리가 부활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번 아세안 외무장관의 방문은 중국과 주변국의 친밀한 관계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중국-아세안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양측의 높은 기대를 반영한다고 중국 외무부는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이들 아세안 외무장관들의 중국 방문을 3월 28~29일로 예정된 미-아세안 정상회의 연기와 연계해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불특정 일정 문제로 지난주 정상회담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목요일 <폴리티코(Politico)> 보고서는 미국-아세안 정상회담의 중단을 "중국이 예상치 못한 외교 승리를 거두게 됐다"고 주장하면서, 동남아는 기본적으로 중국의 이웃마당이기 때문에 미-아세안 관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아세안은 사실상 중국에 의해 분단됐다"고 말했습니다.
상하이 사회과학원 국제관계연구소 부소장이자 연구원인 리 카이셩(Li Kaisheng)은 <글로벌 타임즈>에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며 미국 언론의 신맛 나는 사고방식을 반영한다"고 말했습니다. 리는 중국과 아세안 국가 간의 우호협력이 발전하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일부 미국 언론이 중국과 아세안 국가 간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비방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의 관계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습니다. 아세안 4개국 외무장관의 중국 방문은 중국과 아세안의 오랜 우호적 변화와 지역 안팎의 현안 문제에 대한 협상과 조정 전통의 연장입니다. 중국과 아세안 국가는 지역경제 협력심화 및 기타 많은 글로벌 문제에 대해 유사한 입장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리 부소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에 대해 아세안 국가 대부분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전체 상황을 악화시키는 한편 들기보다는 외교적 대화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서방국가들은 러시아를 G20에서 제외하라고 촉구하는 가운데, 올해 G20 의장국인 인도네시아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우크라이나 문제로 G20 경제 대국이 열리는 연례회의에서 러시아를 제외하라는 서방의 요구에 맞서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도네시아와 중국은 G20에서 조정과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왕 부장은 레트노 장관과 회의에서 중국이 인도네시아가 G20 발리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모든 회원국은 평등한 입장에 있으며 누구도 G20를 분리시킬 권리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항상 자신을 보스로 여기고 남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는 경향이 있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인도네시아와 다른 아세안 국가의 독립을 존중한다고 리 부소장은 주장합니다. 그는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해 중국과 대다수 아세안 국가의 중립은 중국과 아세안 국가가 세계 질서의 평화세력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중국국제문제연구소(China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의 장 텡쥔(Zhang Tengjun) 아시아태평양 연구부 부국장은 글로벌 타임즈에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누가 진정으로 그들과 협력하고 관계를 심화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집권한 이후 아세안 국가들과의 외교적 관계를 확대했지만 협력에 대한 제안은 매우 적고 일방적인 요구만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장 부국장은 "이 지역의 아세안 국가들이 워싱턴이 진정으로 그들과 관계를 발전시키길 원하는지 아니면 그들을 중국과의 경쟁에서 체스판으로 볼 것인지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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