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1만 명이 일을 하다 다치고 질병에 걸려 치료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이 11만 명은 산재보험의 높은 문턱을 통과하여 보험급여를 받는 노동자만을 나타냅니다. 11만 명 뒤 드러나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전체 취업자 중 30%에 달하는 793만 명(2020년 기준)은 위 11만 명에 포함될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 주변 793만 노동자(2020년 기준 전체 취업자의 30%)는 ‘가입자격’이 없어서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보험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산재보험의 목적은 일터의 위험을 사회 전체가 분담하는 것이다" (대법원 2017.8.29. 선고 2015두3867) 라는 산재보험의 정신에 비추어보면, 지금 산재보험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인색합니다. 1964년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이라는 말이 무색합니다.
아름다운재단과 노동건강연대는 2019년부터 <산재보상사각지대 해소 지원사업>을 통해 산재보험에 포함되지 못하는 793만 명의 이야기를 듣고, 개선방안을 모색해왔습니다. 이 중 산재보험으로 알려지지 않은 산업재해를 더 많이 겪고 있는 '배달노동자', '돌봄노동자'(요양보호사, 간병노동자) '어선원 노동자'의 산재보상 사각지대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산재보상사각지대 해소 지원사업의 연구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 클릭)
전체 산업보다 산업 재해율 10배, 산재보험 바깥의 어선원 노동자
2021년 11월 24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산업안전보건공단 및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수협)의 재해 통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배에서 일을 하는 어선원 노동자의 산재사망비율이 육상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산재사망비율보다 18배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노동자에 대비하여 사망자수가 높다는 것은 어선원 노동자의 근무환경이 그리 좋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어선원 노동자들은 어떤 환경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걸까?
먼저 노동환경이 매우 가혹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단 배가 출항하면 다시 항구로 돌아올 때까지 바다위에서 노동자는 떠날 수가 없다. 노동을 그만두기 위하여 바다에 뛰어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바다위에 있기 때문에 육상노동자처럼 중간에 사업장을 떠날 수도 없다. 선장 또한 어선원들이 중간에 일을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어선원들에게 폭력적이거나 가혹하게 대우한다.
그리고 어선원 노동자들은 근무시간의 제한도 없고, 달력의 빨간 날 쉴 수도 없다. 최근 육상노동자들은 1주 52시간제라고 하여 장시간 노동이 금지되고 있으며, 달력의 빨간 날이 유급휴일로 근무하지 않아도 임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어선원 노동자들은 1주 52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하는 것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주휴수당도 받을 수 없고, 빨간 날 쉴 수도 없다. 사실상 무제한 노동이 가능한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수산업을 수행하는 어선이 많지만, 3톤 미만의 어선은 더욱 열악하다. 어선원은 일하다 다친 경우에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산재처리’, 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어선원 노동자들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대신 수협에서 운영하는 어선원 및 어선재해보상보험(’이하 어선원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된다. 그런데 이 어선원재해보상보험법은 3톤 미만의 어선원 노동자에게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3톤 미만의 어선원들은 '산재처리'가 아니라 오롯이 사업주가 보상해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열악한 상황이다.
어선원 노동자에게 선주이익단체의 재해보상이 아닌 '공적 산재보상' 이 필요하다
어선원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중 일하다가 다쳤음에도 제대로 보상받을 수 없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했다. 그래서 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이 함께 한 <산재보상사각지대 해소 지원 사업> 연구의 한 꼭지를 '3톤 미만의 어선원 노동자'로 결정하였으며, 3톤 미만의 어선원 노동자들에게 발생하는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살펴보았다.
해당 연구를 바탕으로 도출된 어선원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어선원 재해보상보험의 문제점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① 어선원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되지 않는 어선은 일반적으로 산재보험도 적용되지 않으며, ② 임의가입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점, ③ 정부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수협에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선원재해보상보험법은 3톤 미만의 어선은 가입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이렇게 어선원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되지 않는 사업은 원칙적으로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되도록 법에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어업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사업장과 많이 다르다. 어업은 ① 법인의 어선이거나, ② 법인이 아닌 자의 사업으로서 상시 근로자 수가 5명 이상이어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가입할 수 있다. 3톤 미만의 어선은 일반적으로 5명 미만의 어선원이 고용된다. 즉, 3톤 미만이기 때문에 어선원재해보상보험법에도 가입할 수 없고, 규모가 작은 상시근로자수 5인 미만인 사업장이기 때문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이 모두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수협중앙회에서는 어선원재해보상보험의 임의가입제도를 두고 있다. 그러나 해당 제도는 실제로는 유명무실하다. 사업주에게 보험 가입에 대한 강제를 두고 있지 않다보니 2020년 어선원재해보상보험 가입현황을 살펴보면 3톤 미만 어선 중 임의가입율을 7.5%에 불과하다. 3톤 미만의 어선이 전체 어선의 60% 이상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임의가입제도는 어선원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어선원재해보상보험은 수협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수협은 배를 소유한 선주들의 조합비로 운영되는 선주들의 이익단체이다. 선주들의 조합비와 보험료로 운영되는 어선원재해보상보험의 특성상 재해자인 공적 보험인 여타의 사회보험과 다르게 노동자가 아닌 선주나 고용주의 입장에서 재해를 분석하고 처리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재해보상은 보험료 증대와 같은 선주들의 이익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선원재해보상보험법의 3톤 미만 임의가입제도를 다른 사회보험들처럼 당연가입대상으로 변경하여야 한다. 해양수산부 통계에 따르면 3톤 미만 어선은 전체 어선의 65.8%를 차지하며, 어선의 숫자도 전체 어선원의 43%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현재 1인 이상 사업장에 당연 적용되도록 개정된 것처럼, 3톤 미만의 어선원 노동자들을 사회보험으로 편입시켜야 한다.
더 나아가 어선원재해보상보험을 수협이라는 연대성을 추구하기 어려운 단체가 관리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선원재해보상보험을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포섭하여 일원화된 구조로 운영을 하거나, 어선원보험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 수협이 아닌 산재보험을 관장하는 근로복지공단과 같은 공적관리체계 내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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