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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난 한인 슈퍼마켓에만 가면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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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난 한인 슈퍼마켓에만 가면 눈물이 난다"

[프레시안 books] <H마트에서 울다>

아시아계 여성 팝 음악인은 최근 팝 음악계가 주목하는 중요한 세력이다. 케이팝 뮤지션인 블랙핑크가 물론 거론되어 마땅하겠으나, 예전부터 해외 비평지들은 예 예 예스의 프론트맨 캐런 오(Karen O)를 필두로 리나 사와야마(Rina Sawayama), 미츠키(Mitski), 예지(Yaeji), 유나(Yuna) 등의 이름을 거론했다. 솔로 프로젝트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라는 이름을 쓰는 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 역시 이 대열에 들어간다. 두 장의 앨범 모두 해외 주요 매체들이 꼽은 '올해의 앨범' 류의 리스트에 올린 그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를 둔, 서울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본래 필라델피아의 밴드 리틀 빅 리그를 이끌던 그는 2014년 어머니가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다. 희귀한 편평상피암 4기 진단이 내려졌다. 자우너는 밴드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어머니의 간호를 위해 부모가 있는 오리건주 유진으로 돌아간다. 이 기간 그가 써내려간 곡이 2주 만에 완성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데뷔앨범 <저승사자(Psychopomp)>에 실렸다. 앨범 커버에 젊은 시절 어머니의 사진을 쓰기도 했다.

어머니는 딸과의 재회 6개월 만인 2014년 10월에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자우너는 이 때 매체에 자신과 어머니에 관한 에세이를 썼는데, 이 글이 지난해 책 <H마트에서 울다(Crying in H Mart)>로 정리됐다. 그리고 자우너의 고향인 한국에 올해 번역돼 출간됐다.

자우너와 '엄마'(이후 그의 표기 그대로 '엄마'로 기재)를 잇는 아주 중요한 매개로 음식이 거론된다. 음식은 아주 세밀하게 표현된다. 서울 할머니 댁에서 먹은 "뜨끈뜨끈한 보라색 콩밥"과 "달콤하게 조린 검정콩, 파와 참기름을 넣고 아삭하게 무친 콩나물, 한입 베어 물면 시큼한 즙이 입안 가득 퍼지는 오이김치"를 엄마와 함께 먹은 기억이 소환된다. 자신의 항암 치료를 위해 집으로 돌아오는 딸을 한국인 엄마는 "내가 도착하기 이틀 전에 갈비를 재워놓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냉장고를 채우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총각김치를 몇 주 전에 사놓고서 하루 전에 꺼내놓았다."

독한 치료제로 인해 음식을 넘기지 못하는 엄마에게 엄마의 친한 '언니' 계씨 아주머니가 해주는 음식은 한국 음식에 나름대로 익숙하다 자부했던 자우너가 맛보지 못한 콩국수였다. 자우너는 엄마가 생전 좋아하던 것을 떠올리며 엄마의 장례 후 동생과 이별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모에게 된장찌개를 끓여 대접한다. 한국음식은 자우너로하여금 엄마를 떠올리게 만드는 장치이고, 자우너와 한국을 잇는 고리이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데뷔앨범 [Psychopomp] 표지. 사진 왼쪽이 미셸 자우너의 엄마다. ⓒYellow K Records

책이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까닭이다. 한국 식재료를 비롯해 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슈퍼마켓 체인인 이곳에서 상실의 슬픔은 갑작스레 들이닥친다.

"식당가에서 어느 할머니가 해물 짬뽕을 먹다가 새우 머리와 홍합 껍데기를 자기 딸 밥뚜껑에 건져내는 모습을 보면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왜 나의 엄마는 저 할머니만큼 오래 살지 못했는가. 이건 불공평하다. 왜 젊은 시절부터 마약을 하고, 9살 때부터 하루 한 갑씩 담배를 펴왔고, 제초제에 몸이 절었던 아빠 대신 엄마가 먼저 죽었어야 했나. 책에 묘사되는 자우너의 엄마는 전형적인 한국의 엄마와 아주 닮았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높은 코를 가져야 한다며 딸의 코를 문지르던, 다 좋은데 음식이 늦게 나와 문제인 한식당에 갈 때는 전화로 미리 음식을 주문하던, 미용을 위해 성기 털을 깎아버리고 문신을 해대는 딸에게 끊임없는 잔소리를 해대던, 딸이 '헤퍼 보이는' 옷을 입으면 등짝을 때리며 난리치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과 생전에 싸우던 기억, 사춘기의 극단적 방황으로 갈등하던 기억이 재가 되어버린 엄마와의 기억 사이로 스며들며 돌이킬 수 없음의 슬픔을 낳는 과정이 책에 잔잔히 묘사되어 있다.

책을 이루는 또 다른 기둥은 이방인으로서의 삶이다. 서울에서는 미국인으로, 미국에서는 '중국인? 혹은 일본인?'으로 치부되며 방황하던 자우너의 삶이 일상적 언어로, 절제되어, 뛰어나게 책에 묘사됐다. 쉽게 어느 한 곳에 소속되지 못한 혼혈인으로서 자우너의 삶은 특히 한국인 엄마와 음식이라는 장치로 더 선명히 부각된다. "엄마가 이제 내 곁에 없는데 내가 한국인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그래서 더 깊이 새겨진다. 자우너가 어린 시절 처음 뱉은 말은 '마미(Mommy)'가 아닌 '엄마'였기 때문이다. 엄마를 상실한 후 자우너는 남편(엄마의 사망 전 남자친구 피터와 급하게 결혼식을 올렸다)과 함께 서울 이모 댁을 찾는다. 뒤늦은 신혼여행이다. 그곳에서 이모가 끓여준 미역국은 그에게 핏줄의 힘을 전해준다. 이것이 곧 자신의 뿌리라는 양. 엄마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일상으로부터 과거를 캐내는 자우너의 글 솜씨는 정밀하고, 잔잔하다. 우리에게는 특별한 상황인 그의 삶이 절제된 이야기를 통해 보편성을 획득한다. 자우너의 삶은 오늘날 한국에 사는 이민 가정의 삶이기도 하며, 음식과 그에 얽힌 그의 추억은 비단 한국인뿐만이 아닌, 세계 어느 누구에게나 중요한 기억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앨범은 여러 뮤지션의 이름을 떠오르게끔 한다. 니르바나(Nirvana), 페이브먼트(Pavement) 등 80~90년대 펑크팝이나 로파이 음악을 좋아하는 이 누구나 홀릴 법한 매력적인 음악을 그는 내놓았다. 지난날 재패니즈 브렉퍼스트가 2집을 낸 후 가진 월드투어의 마지막 공연 무대는 한국이었다. 당시 그의 내한공연을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앨범 사운드보다 조금 더 로키(rocky)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당시 그의 감정이 조금 예상되기도 한다. 자신의 인생에 제법 깊숙이 자리한 곳에 돌아왔다는 감각, 생전 엄마에게 자신의 성공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 등이 복잡하게 교차했을 것이다. 책에는 당시의 일화가 소개돼 있다. 한국과 그를 잇는 끈이 책 <H마트에서 울다>로 인해 더 두꺼워진 듯하다. 

"무대에 올랐을 때 나는 잠깐 서서 홀을 둘러보았다. 내 야심이 정점에 달했을 때조차 엄마의 모국, 내가 태어난 도시에서 콘서트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엄마가 이런 내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숨을 훅 들이쉬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마이크에 대고 소리치며 준비한 공연을 시작했다."

▲<H마트에서 울다>(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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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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