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정방폭포에서
- 정방폭포 해원상생굿에 부쳐
정방폭포 아래 바다 속에는
죽창으로 찔리고 총 맞아 절벽 아래로 떨어진
4․3에 죽어간 시신들 여럿 있었다네
물고기와 게들이 뜯어먹다 남은 유골에는
시뻘건 해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네
학살터 땅에서 자란 고구마가 목침만큼 커졌다 하듯이
바다 속 뭇 생명들도 난데없이 살이 붙었다네
국가라는 이름의 살인집단이
국민들을 표적삼아 살인연습을 했다네
언제나 그렇듯이 토벌대라는 이름의 학살기계들은
적군을 추격하기는 버거워하면서도
제 나라 국민 도륙하는 데는 신바람 낸다네
이들 중 누구 하나 책임지거나 처벌받는 일 없이
4․3의 역사엔 가해자는 늘 산쪽에 있었다네
그 산쪽에 숨었다가 잡혀온 사람들이
여기 죽어 바다에 수장되었다네
정방폭포 아래 바다 속에는
아직도 비명인 듯 호곡소리가 들린다네
해삼 먹은 관광객들의 뱃속에도
절규인 듯 파도가 몰아친다네
피의 역사를 살아가는 우리들 가슴에도
폭포수 같이 우렁우렁 분노가 굽이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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