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하산
"이 동지, 전쟁이 어찌 되고 있답니까?"
"동쪽은 38선보다 조금 북쪽, 서쪽은 38선보다 조금 남쪽에서 전선이 교착상태인 채 지루한 휴전협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서 전선에서 애꿎은 젊은이들이 매일 죽어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뒤 2년 반이 지난 1953년 초, 한산과 이현상은 아지트에서 병삼이와 하수복이 잠든 사이 전황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경을 칠 놈들!"
"그러게요."
"그래서 말인데 빨리 이현상 동지가 산에서 내려가 북으로 올라가서 우리 남한의 빨치산들도 인민군 포로에 포함시켜 북으로 보내도록 하는 내용을 휴전협정에 포함시키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아니면 이 산의 빨치산들이 전멸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들을 살리려면 이 동지가 움직여야 합니다."
"참 스님은 순진하십니다. 그동안 그리 보고도 북한의 생각을 모르십니까? 잘 아시지만, 북한이 우리들에 대한 무기 등 보급품 공급을 중단한 지 오래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인민군 포로에 포함시켜 북송하도록 협상하는 것은 결코 기대할 수 없습니다. 김일성은 사실상 우리를 적으로 생각하고 이승만과 그 주구들이 빨리 소탕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올라간다면, 얼씨구나 하고 잡아서 처형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개죽음을 하느니, 저는 여기에서 최후까지 싸우다가 동지들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겠습니다."
이현상은 자신의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바람에 병삼은 잠이 깼지만 그대로 누운 채 한산스님과 이현상 아저씨의 대화를 엿들었다.
"스님, 그래서 이야기인데요…."
이현상은 이야기를 시작해 놓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병삼이 이야기입니다."
"병삼이가 왜요?"
"우리야 이 지리산에서 옥쇄를 하더라도 병삼이는 무슨 죄가 있습니까? 병삼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야 합니다. 이 아이는 이 아이의 세상이 따로 있으니 스님이 그 때까지 애를 맡아야 합니다. 조금 있으면 토벌대의 봉쇄작전이 한층 강화될 것이니 그 이전에 스님이 병삼이를 데리고 산을 내려가셔야 합니다."
스님은 답이 없이 긴 한숨만 쉬었다.
한참 뒤 스님이 입을 열었다.
"이 동지 말대로 해야 할 것 같네요. 헌데 우리만 내려가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저요? 저는 안 내려갑니다."
"이 동지가 아니라…."
"그럼 누구요?"
"하수복 동지도 같이 내려 보내야지요. 이 동지도 알겠지만, 하 동지가 이 동지의 애를 가진 것 같아요. 조금 있으면 토벌대의 대대적인 공세가 시작될 텐데, 산에서 애를 밴 몸으로 어떻게 지내요? 산에서 내려가, 이 동지의 아이를 낳고 키워야지요."
한산은 곤히 잠들어 있는 하수복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이현상이 답이 없이 긴 한숨을 쉬었다.
며칠 뒤 한산스님과 병삼이는 토벌대의 눈을 피해 산을 내려왔다. 피아골과 노루목을 거쳐 왕시루봉을 거쳐 내려왔다. 토벌대를 피해 내려오느라고 며칠을 굶는 등 죽을 고생을 했다.
"이제 한시름 놓았다."
지리산을 무사히 빠져나오자 한산은 긴장이 풀렸다. 한산은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산과 병삼은 며칠을 걸어서 갈미봉과 용강리를 거쳐 광양으로 들어갔다.
얼마 뒤 하수복도 산 아래로 내려오다 토벌대에 붙잡혔다. 그는 수용소에 있다가 풀려나 아들을 낳았다.(이현상 사살 소식을 듣고 한산스님은 병삼을 데리고 하수복을 찾아 나섰지만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현상의 유복자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포기하고 교사로 살았다고 한다.)
25. 이현상 구출작전
"병삼아, 백운산에 우리가 같이 갔던 상백운암 알지?"
"당연히 알지요. 백운산 꼭대기 다 가서 있는 암자잖아요"
"그래. 이 배낭을 메고 거기로 가거라. 거기에 가면 이현상 아저씨나 그 부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혹시 없으면 아저씨나 부하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예, 헌데 배낭에 뭐가 들어있는데요?"
"머리 깎는 바리깡 하고 승복이란다. 이 배낭을 전달하면, 이현상 아저씨가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중으로 가장해 산에서 내려 올 수 있을 것이다. 잘 가서, 꼭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이현상 아저씨가 탈출할 수 있단다."
"예."
"그리고 혹 경찰이나 누가 물어보면, 큰 스님이 상백운암에 올라가셨는데 산사람들이 절을 다 불지르겠다고 해서 급하게 큰 스님 찾으러 가는 것이라고 대답해야 한다."
"스님. 알았습니다."
병삼은 자기가 이것을 잘 전달해야 이현상 아저씨가 무사할 수 있다는 한산스님의 말에 반드시 이를 전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병삼은 지리산에서 내려온 뒤 한산스님과 머물고 있던 광양 향교를 떠나 백운산으로 향했다. 백운산은 광양에서 북쪽으로 1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병삼은 거의 뛰다시피 걸음을 재촉했다.
"누구냐? 손들어!"
동곡 학사대를 지나 백운산의 초입인 용소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경찰들이 총을 겨누고 나타났다.
"아, 어린 중이네."
대부분의 경찰들은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어린 병삼을 보고 경계를 풀었다. 하지만 한 경찰은 그렇지 않았다.
"무엇하러 가는데?"
"큰 스님이 상백운암에 올라가셨는데 산사람들이 절을 다 불 지른다고 해서 급하게 큰 스님 찾으러 가는 거예요."
"그래? 등에 지고 있는 건 뭐야? 배낭 벗어봐!"
배낭에는 바리깡과 승복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시국에 산으로 간다는 것이 의심스럽다고 생각한 경찰은 병삼을 광양경찰서로 끌고 갔다.
"너 정말 중이냐?"
"그런데요."
"어느 절에 있는데?"
"구례 화엄사요. 거기 서동월 큰스님에게 물어보세요."
서동월 스님이 3년 전 머리를 깎아준 것이 생각나 자신 있게 말했다.
"이현상 아저씨, 어떻게 해요!"
병삼은 경찰서에 있는 자신보다도 이현상 아저씨가 걱정되어 눈물을 흘렸다.
병삼을 보내 이현상를 구출하려던 한산스님의 작전은 병삼이 잡히면서 실패로 끝났다. 1953년 6월 휴전 직후 북에서 박헌영이 체포되고 남로당계열이 처형을 당하면서 이현상도 남부군회의에서 모든 직책을 박탈당하고 평사병으로 강등당했다.
그는 허탈한 마음에 산에서 내려오다가 토벌군(차일혁 부대)에게 사살당했다.(이현상을 북한의 자객이 암살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안재성의 <이현상평전>은 여러 정황을 볼 때 그가 토벌대에 사살당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현상은 죽었다. 무모한 저항을 고만하고 자수하라.'
이승만 정부는 지리산에 이현상 시신 사진이 든 삐라를 비행기로 살포했다. 빨치산을 소탕했다는 선전으로 그의 시신도 경복궁에 전시했다. 전시가 끝난 그의 시신은 그를 사살했지만 존경했던 차일혁 총경이 화장해 스님에게 독경을 시켜 섬진강에 뿌렸다.
'탕탕탕.'
차일혁은 하늘로 세발의 권총을 쏴 남부군 사령관의 넋을 위로했다.(이 일로 그는 색깔론에 시달려야 했고 진급 등에 문제가 생겼다. 1958년 수영 중 익사했는데 그가 자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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