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시대, 한국은 왜 고배기량 자동차에 탄소배출 부담금을 매기지 못하나?
기후 위기를 낳은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탄소 중립을 말하는 시대입니다. 제가 사는 송파에서도 시민들이 지난 12일, <송파기후행동>이라는 시민조직을 결성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교통과 수송 부문은 온실가스의 주된 배출원입니다. 그리고 고배기량의 중 · 대형차가 배출하는 탄소는 미세먼지 대기 오염의 큰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이 2009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발표하면서, 고배기량 자동차에는 탄소배출 부담금(저탄소차협력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저탄소차 협력금’을 시행하겠다고 예고한 것은 당연한 요구였습니다. 바로 시행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탄소배출부담금을 규정한 대기환경보전법 조항(제76조의8)은 2020년 12월 29일 폐지되었습니다. 이 조항은 2013년 4월 5일 국회를 통과한 후, 단 하루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두꺼운 법전의 어둠에 깔려 있다가 2020년에 그대로 죽었습니다. 시행일이 2013년 7월에서 2015년 1월로 연기되더니, 다시 2020년 말로 연기하였고 급기야 2020년이 되자, 한 해가 저무는 날에 아예 조항이 폐지되어 버렸습니다.
한국은 그리하여 전기차 등 이른바 친환경자동차를 새로 사는 데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당장 탄소를 과다 배출하는 고배기량차를 규제하는, 어떠한 환경관련 자동차세금제도를 갖지 못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현행의 이른바 ‘자동차 환경개선부담금’이라는 이름의 부담금은 노후 경유차량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쌩쌩 달리는 고배기량 희발유 차량에 대해 어떠한 탄소배출부담금도 없습니다. 하지만 독일이 2009년 7월 1일부터, 일정한 탄소배출기준(95g/km) 이하의 승용차에게는 면제하고 그 이상의 고배기량 차량에 자동차세를 부과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탄소배출을 많이 하는 승용차에 세금을 더 매기고 있습니다.
왜 모두가 미세먼지와 기후위기를 염려하는 이 때,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고배기량 자동차에 탄소 부담금을 매기겠다는, 무려 2009년부터 준비한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을까요? 어떻게 대한민국 입법부가 통과한 법률이 햇빛조차 보지 못하고 죽었을까요?
그 이유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국내 독점 자동차 산업에 있습니다. 일찍이 2007년에 한미FTA 협정문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부터 지적하였듯이, 협정문(2.12조 3항)에는, 대한민국은 차량 배기량에 기초한 새로운 조세를 채택하거나 기존의 조세를 수정할 수 없다(‘may not’)고 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이 조항의 취지를 주장하면서 한국의 탄소부담금 신설을 반대하였습니다. 2017년에, 김양희 당시 대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한미 FTA 계기 국내 자동차세 개정에 대한 연구>에서 쓰여 있듯이, 미국은 배기량이 큰 미국산 자동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반대하였습니다. 국내 자동차 독점 회사들도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저는 오로지 한미FTA 때문에 자동차 탄소부담금이 좌초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배기량 기초 자동차세 개정 금지를 담고 있는 한미FTA조항은 기후위기 대응을 바라는 시민을 가로막는 큰 제도적 장애물입니다.
지금 이 시간 한국의 통상관료들은 한미FTA 10주년 기념식을 위해 미국에 가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의 대부분의 언론들은 한미FTA로 대미무역이 66% 늘었다고 칭찬하였습니다. 전경련은 조사 대상 기업의 94%가 한미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됐다고 응답하였다는 자료를 내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전경련이 조사 대상으로 삼은 기업은 미국에 수출하거나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하는 150개 회사입니다. 이들에게 물건값 중 관세를 깍아 주는 한미FTA가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공동체는 외국과 상품 무역을 하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한미 FTA는 미국과 무역을 하는 회사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하루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 모두에게, 그리고 숨 쉴 공기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므로 한국 통상은 시민의 삶과 공공성을 보듬고 그에 봉사해야 합니다.
기후 위기 시대, 한미FTA의 자동차 배기량 기반 조세 변경 금지 조항 삭제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지난 2007년부터 지금까지 드린 말씀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10년 아니 그 이상 계속 드릴 말씀입니다. 저는 외롭지 않으며, 시민의 눈으로 통상을 보는 데에 지치지 않았습니다. 지금 한국 통상은 수출기업들의 품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더 늦지 않게 한국 통상도 기후 위기 대응에 복무해야 함을 자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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