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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인권변호사' 홍성우, 85세 일기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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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인권변호사' 홍성우, 85세 일기로 별세

[부고]

"우리 양심범들의 정의로운 싸움이 훗날 역사의 법정에서는 떳떳하게 무죄로 밝혀지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인권변호사는 고난의 길이었지만 우리는 서로 격려하면서 서울은 물론 부산 대구 광주 전국으로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외면하지 않고 달려가고자 했다."(<인권변론 한 시대> 홍성우 변호사의 서문 중에서)

'인권변호' 한 길을 걸어온 1세대 인권변호사 홍성우 변호사가 지난 16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1938년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 법과대학을 거쳐 1961년 사법 시험에 합격, 해군 법무관을 마친 뒤 1965년부터 6년간 판사를 역임했다. 그러나 1971년 사법 파동을 계기로 판사복을 벗었다.

이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고인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시작으로, '시인 김지하 사건'(1975), '윤보선·김대중 긴급조치위반 사건'(1976), 'YH노동조합'사건'(1979), '서울 미문화원 방화 사건'(1985),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 등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의 굵직한 시국 사건을 변호했다.

고인은 민주회복국민회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엠네스티, 가톨릭정의평화위원회 등에서 인권신장을 위한 활동을 했으며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대한변협 인권위원으로도 활약했다.

특히 고인은 인권변호사들의 첫 조직적 연대인 '정법회(正法會)'(1986)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1988) 결성에 큰 역할을 했다. 또 진보적 학자와 학생운동 출신이 주축이 된 참여연대(1994)의 초대 공동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고인은 정치계에도 몸 담았다. 1995년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지 않은 민주당 세력과 개혁신당이 합당해 창당한 '통합민주당(統合民主黨)'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다. 이듬해 15대 총선에 출마(서울 강남구갑)했으나 낙선했다. 2000년에는 한나라당 개혁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공천 개혁을 이끌었으나 2001년 탈당했다.

고인은 인권신장을 위해 힘쓴 공로로 2004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2013년에는 고문 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주축이 돼 만든 '진실의 힘 인권상'과 '영산법률문화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1970∼80년대 주요 시국사건을 토대로 인권변론의 발자취를 엮은 <인권변론 한 시대>(홍성우·한인섭 지음)와 <인권변론자료집>이 있다.

고인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조문은 17∼18일 이틀간 가능하다. 발인은 오는 21일로 예정되어 있다.

▲ '인권변론' 한 길을 걸어온 1세대 인권변호사 홍성우 변호사가 3월 16일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경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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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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