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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밤, 독일은 원전 스위치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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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밤, 독일은 원전 스위치를 내렸다

[후쿠시마 핵사고 11주년] ④ 국민 안전 위한 독일의 선택은?

2021년 12월 31일 저녁.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거리는 한산했다. 평소 같았으면 모든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불꽃놀이를 즐길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또 다른 이별을 준비하는 곳이 있었다. 

니더작센에 위치한 그론데(Grohnde) 원전, 슐레스비히 홀슈타인에 위치한 브록도르프(Brokdorf) 원전, 바이에른의 군트레밍엔(Gundremmingen) 원전은 자정을 기해 발전소의 스위치를 내려야만 했다. 브록도르프 원전 주변에 사는 주민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멜트다운이 이곳에서 벌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원전이 폐쇄된다니 기쁘고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 "원자력 없는 유럽을 위하여" 2021년 12월 30일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유럽의 더 적극적인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며 가동을 끝낸 그론데(Grohnde) 핵발전소 냉각탑에 레이저 빔을 쏘는 액션을 펼쳤다. ⓒ그린피스

독일 탈원전의 여정

독일의 탈원전 정책을 살피기 위해서는 1960년대로 거슬러갈 필요가 있다. 동서로 나뉜 독일은 말 그대로 냉전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 유명한 표현인 '철의 장막(Eiserner Vorhang)'이 말해주듯, 서독은 소련 사회주의의 서유럽으로의 확장을 막아주는 배수진이었던 셈이다. 당시 서독 시민들은 이미 서독에 핵무기가 배치되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했고, 전쟁 반대, 핵무기 반대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당시 서독 정부의 원전 확대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핵무기나 원전이나 방사성 물질을 이용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기는 마찬가지로 인식한 것이다. 서독에서만 1970년대 15기의 원전 건설이 진행되었는데, 모든 곳에서 시민들의 반대가 격렬히 나타났다. 특히, 1970년대 중반 프라이부르크 인근의 빌(Wyhl) 원전 건설 계획은 이 지역의 포도 농가뿐만 아니라 프라이부르크 학생들의 집단 반발로 이어졌다. 이들은 시민조직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대항했는데, 훗날 독일의 일부 사회학자들은 이 빌(Wyhl) 원전 반대 운동을 '독일에서의 신사회운동의 시작'으로 평가했다.

핵무기와 원전을 거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정치로 이어졌다. 1970년대 중반부터 지방선거에 '환경보호 녹색후보', '무지개 후보' 등의 이름이 등장하고, 마침내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당시 서독 및 현재 독일의 정당법은 지역 정당을 허용한다). 이런 여세를 모아, 마침내 1980년 1월 '생태, 사회, 기초민주주의, 비폭력'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전국 단위의 녹색당이 창당을 하고, 그 다음 총선인 1983년 연방하원 선거에서 5.6%의 지지로 27명의 의원이 국회에 입성하였다.

탈원전 쐐기 박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이러한 정치 사회적 움직임에 더해 1986년 발생한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독일 국민들에게 탈핵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바람이 부는 탓에, 구소련이 체르노빌 사고를 공개하지 않는 동안 동유럽 국가들과 독일,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는 체르노빌 사고로 대기 중에 퍼진 방사선 동위원소의 영향을 무방비로 받았다. 1987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사산율이 두 배 증가했고, 베를린을 비롯한 서독 전역에서 다운증후군으로 알려진 유전자 손상을 입은 아이의 출산이 증가했으며, 방사성 요오드로 인한 갑상선암 발병 또한 급증했다. 이전까지는 환경에 관심 있는 시민들 위주로 반핵, 탈원전 여론이 높았다면, 사고 이후에는 80% 이상의 독일 국민이 원전을 반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체르노빌 사고에 위기를 느낀 시민들은 '원자력 없는 미래를 위한 학부모 모임' 등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원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이용해야 함을 깨닫고 주변에 알려 나갔다.

탈핵을 기치로 내건 녹색당은 큰 폭은 아니지만 꾸준한 지지를 얻었다. 그러다 1998년 총선에서 6.7%의 지지를 얻어, 40.9%의 지지를 얻은 사회민주당과 연합정부 구성에 성공한다. 의원 내각제 국가인 독일에서는 총선 결과에 따라 정부를 구성한다. 한 당이 의회 과반을 차지하면 독자 정부 구성이 가능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다른 당과 연합해 의회 과반을 차지하면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 이질적인 두 당 또는 세 당이 공동으로 연합정부를 구성해 최소 4년을 통치해야 하므로, 집권 동안의 정책 추진 목표를 문서로 공식화하는 '연합정부 합의서'를 작성하고 공표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로 자리 잡았다. 총 52쪽에 달하는 당시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합정부 합의서 제4장 '생태적근대화'의 세부 항목인 '근대적 에너지 정책' 아래에는 '원전 폐쇄'가 명시되어 있다. 이 합의서에 근거해, 독일 정부는 2000년부터 4개 원전 사업자와 원전 운영 및 폐쇄에 관한 협상을 1년여 진행하여, 신규원전 건설 중단 및 기존 원전의 운영기간(32년) 제한에 합의(Atomkonsens)하고,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2002년 원자력법을 개정한다.

후쿠시마 사고 6개월 전, 당시 메르켈 총리는 기존 원전의 수명을 평균 12년 연장하는 법안 처리를 강행했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여 1980년 이전 건설된 9기 원전은 즉각 폐쇄, 1980년 이후 건설된 8기 원전은 발전소의 수명을 고려하여 2022년까지 순차적으로 폐쇄하기로 결정하며 사회적 논란을 마무리 지었다.

▲ 2011년 4월 후쿠시마 사고 소식을 접한 독일 시민들이 브록도르프 원전 등 자국 내 핵발전소 폐쇄를 요구하며 거리 행진을 벌였다. ⓒGruene Stade

유럽원전협회 "녹색분류체계 기준 충족 어려워"

한국의 상황과는 달리, 독일 국민들은 원전 폐쇄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극우주의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을 제외한 어느 정당도 원전 신규 건설은 고사하고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을 얘기하지 않는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고를 겪으면서, 원전 안전성을 더는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재생에너지와 같이 원전 이외의 방식으로 전력 생산이 가능한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원전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합리적인 상식'이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

2~3년 전부터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더해가면서, 일부 언론인 등이 더 빠른 석탄발전소 폐쇄를 위해 운영 중인 원전의 수명을 연장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 새 정부의 연합정부 합의문에는 원자력과 관련한 항목 또한 있다. 그러나 원전 운영 및 건설에 관한 사항은 전혀 없고,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을 투명하고 과학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포함해 핵폐기물 발생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유럽연합 국가 간의 대립 양상을 보였던 EU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의 초안이 최근 공개되었다. 원전업계의 기대와는 달리, 자국에서의 핵폐기물 처리 및 '사고 저항성 연료(Accident-Tolerant Fuel)'를 의무화하는 조건이 포함되었다. 당장 유럽연합 원전협회인 <FORATOM>의 사무총장은 점잖지만 매우 실망한 어조의 성명에서 "이 기준을 총족시키기는 매우 어려울 것(These criteria will prove very challenging)"이라고 말한다. 프랑스가 최근 핵발전소 확대 계획을 발표했는데, 과연 유럽연합이 제시한 녹색분류체계의 기준에 충족하는 원전을 건설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국민 안전 위한 선택

독일이 한국에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에너지 자원 빈국,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 등 한국과 비슷한 조건을 갖고 있는 독일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지도 모를 원전 대신 재생에너지를 택했다. 독일 새 정부 연정합의문에 여러 차례 강조된 것처럼, 재생에너지는 기후보호뿐만 아니라 지역의 발전과 공공의 안정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 독일의 탈핵선언에 단초를 마련한 쇠나우마을 지붕에는 태양광발전기가 모두 설치되어 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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