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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디지털 성 착취 범죄 시스템을 고발한 자의 펜을 꺾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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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디지털 성 착취 범죄 시스템을 고발한 자의 펜을 꺾게 하는가

[기고] 국민의힘이 논문을 '정치적 제물'로 삼고 있다

20대 대선에서 많은 관심이 집중된 쟁점 중 하나는 분명 안티 페미니즘(反 여성주의)이다. 이에 앞장 서고 있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측은 '남성 혐오'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한 논문을 든다. 2019년 철학연구회 학술지 <철학연구> 127집에 게재된 윤지선 세종대 교수의 <관음충의 발생학>이다. 지난해 윤석열 당시 전 검찰총장 또한 '페미니즘이 저출생의 원인'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하며 해당 논문을 언급한 바 있다.

논란이 거세지자 윤 교수는 해당 논문에 대해 "한국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일상화되는 구조를 '가해자가 발생하는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하며 이같은 과정에는 '일상화된 여성혐오 놀이'가 있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의 시작은 내용 중 유튜버 '보겸'의 유행어인 '보이루(보겸+하이루)'가 여성혐오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설명에서였다. 윤 교수는 이에 '보이루'에 관한 설명을 수정했으나 논란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이어 논문의 '한남 유충'이라는 표현도 문제로 지적됐다. '한남 유충'은 미성년의 남성 아동·청소년이 만연한 여성혐오를 그대로 내면화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지난 7일 한국연구재단은 해당 논문을 연구 부정에 해당하는 연구윤리 위반으로 판단했다고 전해졌다. 다만 철회 대상은 최종 버전이 아닌 수정 전 버전이다. 이같은 소식은 같은 날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전해졌다. 이에 윤 교수는 <프레시안>을 통해 입장을 전한다.편집자.

관련기사 : 윤지선 "저출생의 원인이 페미니즘? 디지털 성범죄 논문을 '남혐'으로 둔갑"(☞바로가기)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여성유권자 단체 '샤우트아웃'이 '여성혐오 대선 규탄시위'를 하고 있다(왼쪽). 남성단체인 '신남성연대'도 같은 시간 부근에서 '남성혐오 규탄'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디지털 성 착취 시스템에서 성 착취 가해자들의 사회적 발달진화과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논문이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의 페이스북에서 또다시 거론되었습니다. 디지털 성 착취 분석논문의 철회 통보 명령 소식을 다른 매체도 아닌,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대선 이틀 전에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알리고 있는 것을 보면, 국민의힘이 제 논문을 2030 남성들의 표심을 다시 한번 끌어올리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격전지이자 정치적 제물로 삼고 있음을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제 논문의 사안은 단독적으로 독립된 사안이라기보다는, 2021년을 시작으로 손가락 집게 손가락 찾기, 남성 혐오 용어 마녀사냥, 숏컷 논쟁이라는 일련의 반여성주의적 열풍과 면밀히 연결된 사안입니다. 남초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반여성주의적 열풍이 정치권, 학계에까지 불어 닥치며 페미니즘과 관련된 모든 표식과 언어, 외양적 표현을 비롯하여 디지털 성 착취 비판 학술논문에 이르기까지 마녀사냥의 표적으로 정조준되어 지난 1년간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극우적 반여성주의를 표방하고 국민의힘과 친연성을 갖는 '신남성연대'가 정확히 1년 전 거리에서 제 논문을 찢고 제가 재직하는 대학 정문에서 성희롱 모욕 발언을 하며 논문철회를 요구하던 것이 실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제 논문은 디지털 성 착취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일상화되고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지를 면밀히 추적하고 있으며, 교실 속 어린 세대의 여성들이 어떠한 여성혐오 문화에 노출되어 있고 디지털 성 착취 가해자들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묵인 아래 어떻게 진화하며 퍼져 나가는지를 학술적으로 깊이 있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성 착취라는 거대한 폭력의 고통스럽고 적나라한 실체에 대한 학술적 고발은 모든 이들에게 결코 쉽게 읽힐 수도, 달게 삼켜질 수도 없는, 우리 사회의 폐부를 건드리는 쓰디쓴 비수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디지털 성 착취 시스템 속 가해자들의 세대가 왜 이리 점점 어려지고 집단화되고 있는지의 메커니즘을 명확히 고찰하고 고발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수많은 세대의 여성들이 그 성 착취 시스템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저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 논문을 한자, 한자 기록해 나갔습니다.

국민의힘은 들으십시오. N번방 방지법을 남성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인권 탄압적 법안이라며 반발하던 정당에서 국민의힘 관련자가 불법촬영범죄자로 검거되었습니다. 그리고 디지털 성 착취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 최전선에 있는 학술논문을 출생률 감소 논문이라며 낙인찍는 발언을 대선후보 캠프가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대선 이틀 전 2030 남성들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제 논문의 철회 통보 명령을 증폭시키는 메신저로 기꺼이 자처하며 디지털 성 착취 범죄를 비판하고 저지하려는 각종 법안과 논문을 탄압하는 일관된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디지털 성폭력 시스템이라는 이 엄중한 사안을 2030 남성들의 반여성주의 열풍을 이용하여 그 본질을 흐리려 들지 마십시오.

일상 속 수많은 어린 세대의 여성들이 미디어나 교실, 게임 속 여성혐오 문화에서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수많은 이들에게 여성을 성적 착취나 유희의 대상으로 삼아도 된다는 무의식적 신호로 여겨질 수 있는지를 한 나라의 정치인이라면, 책임감 있는 정당이라면 진정으로 귀 기울이고 몸을 낮추어 들으십시오. 디지털 성 착취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우리 사회가 어떻게 여성에 대한 성 착취적 유희 문화를 방조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각종 미디어, 유튜브, 게임들에 의해 증폭되었으며 여성의 성과 신체를 자원이자 자본으로 이용하는지를 면밀하게 통찰하고 분석해내는 일이 반드시 요구됩니다. 저는 디지털 성 착취 시스템을 수년간 연구해왔으며 이 끔찍한 반인권적 범죄 시스템을 분쇄하고 비판하기 위해 제 연구를 멈추거나 후퇴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연구재단의 논문철회 명령과 징계 조치인 3년간의 연구논문 게재 금지는 연구자의 숨통을 끊는 일입니다. 디지털 성 착취 시스템 비판 논문이 남성 혐오라는 낙인으로 마녀사냥당하고 더 이상 해당 범죄 시스템의 가해자를 분석, 비판하는 것이 연구자에게 커다란 부담이자 두려움이 되는 선례를 남기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가 디지털 성 착취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낳을지를 생각해주십시오.

저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의 연대가 절실히 요청됩니다. 만약 한국에서 한국어로 논문을 쓰는 것이 금지당한다면, 저는 영어로, 프랑스어로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시스템을 고발할 것이며 이 광기 어린 반여성주의적 사회시스템 분석을 전 세계에 통렬히 기록해 나갈 것입니다. 그 누구도 수많은 이들이 착취당하는 폭력 시스템의 적나라한 진실을 알린 죄로 그의 펜을 부러뜨릴 수는 없습니다.

이제 대선이 하루 남았습니다. 또한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이기도 합니다. 저는 디지털 성 착취 시스템을 가장 효과적으로 분쇄할 수 있는 이에게 제 한 표를 행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대선이 끝난 후에도 디지털 성범죄 시스템을 연구하는 연구자를 탄압하는 이 폭압적 물결을 저지하는 데 함께 해주십시오, 여러분. 이것은 디지털 성 착취 범죄에 대항하는 우리의 미래와 관련된 엄중한 사안이며 많은 여성의 절실한 현재와 관련된 일임을 절대 잊지 말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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