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단일화는 예외 없이 선거의 최대 이슈였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 치러진 13대 대선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열은 신군부 출신의 노태우 당선을 결과했고 유사 민주주의는 실질적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지연시켰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이인제의 한나라당 탈당은 보수의 분열을 가져왔고 DJP 연대를 성사시킨 김대중이 승리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 역시 지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대선의 최대 이슈였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의 이명박이 당시 여당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을 압도하면서 단일화 이슈는 승패의 관건이 아니었다. 2012년 18대에서는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지만 안철수는 대선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출국했다. 사실상 단일화는 실패했고 박근혜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박근혜 탄핵으로 치러진 지난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의 승리는 정해진 것이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오세훈·안철수의 단일화는 위력을 발휘했다.
현대정치에서 가치와 지향,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세력의 통합과 분화는 그 자체로 정치의 동력이다. 권력의 쟁취를 목표로 하는 권력정치에서 연합정치의 긍정적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다당제를 통한 시민사회의 균열을 반영한다는 것은 기득권 정치를 깨고 과다대표 되는 계층과 과소대표 되는 시민의 이해를 조정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당위적으로 옳다.
그러나 연합정치라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정치공간에서의 단일화와 연정 등의 정치과정이 권력구조와의 연관성에 대한 고려 없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적실성의 문제를 살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7일 휴일에 의원총회를 열어 국무총리 국회 추천, 여·야·정 정책협의체 구성, 연동형 및 권역별 비례대표제, 지방선거에서의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개헌 사항으로 4년 임기의 대통령 중임제, 결선투표제 등 추진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이번 대선에서 정치개혁 관련 제도개선과 거대담론이 실종되었다는 비판에 비추어볼 때 긍정적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불과 선거 열흘을 앞두고 쫓기듯 쏟아내는 정치담론의 진정성이 얼마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안철수 후보와의 연대를 모색하는 차원의 정치공학적 접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정치에서 거대정당에 의한 독점적 기득권 카르텔의 정치의 폐해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승자독식의 권력구조가 거대 양당제에 기인한다는 분석도 보편적 타당성을 얻고 있다. 다당제는 양당제의 대척에 있는 제도로서 이의 대안으로 거론됐고 이를 위해 선거제도의 개편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권력분산의 차원에서 국회 추천 총리제는 '책임총리제'와 함께 단골메뉴로 떠올랐다. 통합정부나 공동정부의 설계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제도적 디자인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대통령제에서 다당제를 통한 연정과 여·야·정 협의체 구성이 과연 제도적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현행 권력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대통령제의 얼개를 그대고 유지하는 대통령 중임제가 한국정치의 폐단으로 지적되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혁파할 수 있는가의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내각제 구조가 아닌 권력구조에서 다당제가 연정의 일상화로 이어질 확률은 희박하다. 다당제 구조에서 선거 때 단일화 논의는 예외 없이 부상할 수밖에 없다. 내각제에서의 연정과 단일화 논의를 통한 공동정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재의 한국 정당체제는 다당제다. 물론 제도개혁의 차원에서의 다당제로의 개혁은 지금보다 강화된 다당제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이완된 양당제와 왜곡된 다당제의 정당구도를 타파하고 내각제하에서의 대연정과 소연정 등이 가능한 구조로의 변화는 대통령제 하에서는 매우 제한적이다.
더구나 선거제 개혁은 국회에서 일반 의결 정족수를 충족시키는 것만으로는 될 수 없다. 반드시 여야 합의로 통과되어야 한다. 지난 국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패스트 트랙으로 강행 처리된 이후 형해화된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한국 대선에서 단일화가 많은 문제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면 여전히 단일화의 늪을 상정할 수 있는 대통령제에서의 다당제가 얼마나 모순적인가를 알아야 한다.
사전투표가 오늘 내일 양일에 걸쳐 치러진다. 대선의 승자가 누가 되도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정상적인 여야 관계가 순항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이러한 극단의 대결 구도의 제거는 현행의 권력구조를 존속시킨 채 다당제와 중대선거구로의 변화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정치개혁 의제는 선거기간 동안 충분히 쟁점화되고 공약으로 제시되어야 했던 사안들이다. 20대 대선은 정치교체를 위한 거대담론이 실종된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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