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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특집] 서산의 숨은 독립유공자 발굴 노력과 무너져 가는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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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특집] 서산의 숨은 독립유공자 발굴 노력과 무너져 가는 생가

서산시,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요청에도 중고제의 마지막 계승자 심화영 선생의 생가 방치하다 소실

▲한월당 김상정 독립운동가와 무너져 가는 생가      ⓒ국가보훈처

'한민족의 항일독립운동은 일제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고 식민 상태를 벗어나고자 하는 일련의 구국항쟁으로 민족의 생존권 회복운동이며 민족의 자유 운동이다' 서산지역 3.1운동을 조사한 충남대 김상기 교수의 논문 머리말이다.

<프레시안>은 103주년을 맞이하는 3.1절을 맞아 잊혀가는 서산 출신 독립유공자 신규 발굴을 이끌었던 서산시 시정연구동아리 만세서산 이재휘 주무관과 최근 미 서훈 독립유공자 542명을 발굴해 214명의 서훈 대상을 선별한 도혜영 사회복지과 팀장, 그리고 서산지역 대표적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인 한월당 김상정 독립유공자의 증손자 김준환 평생학습과 팀장을 만났다.

이재휘 주무관은 "만세서산은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서산지역에 어떤 분들이 어떤 일을 했을까란 궁금증에서 뜻이 맞는 8명의 회원들이 서산지역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기 위해 모이게 됐다"면서 "처음 취지는 독립운동 재조명이었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13명의 독립유공자를 찾아내는 성과를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이어 "3.1운동 100주년 때에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행사도 개최하고 했는데 이후에는 독립유공자들 위한 이렇다 할 의미 있는 행사가 개최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1년에 한 번이라도 실질적이고 지속적으로 서산의 독립운동 역사를 알릴 수 있는 행사가 개최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김상정 독립운동가와 유흥수 독립운동가의 생가가 관과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라며 "하루빨리 현충 시설로 지정됐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재휘 주무관은 "서산의 독립운동가 재조명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혈서를 써 왜왕과 조선총독부에 보낸 김상정 독립운동가였다"며 "해방 이후 김구 선생님이 외국에서 귀국하셨을 때 김상정 선생의 활동 내용을 듣고 훌륭하다고 친필로 찬양문을 써서 김상정 선생님에게 보낸 준 기록도 독립기념관에 있다"고 밝혔다.

앞서 충남 서산시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요청에도 중고제의 마지막 계승자 심화영 선생의 생가를 방치하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잃은 전례가 있다.

도혜영 팀장은 "서산시 시정연구동아리 만세서산의 의미 있는 시작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추진해 서산 출신 숨은 미 서훈 독립운동가 542명 발굴했다"면서 "그중 심사 기준에 적합한 214명을 최종 서훈 등록 대상으로 선별했다"고 밝혔다.

이어 "충남역사문화연구원 관계자 말로는 이번 발굴은 충남에서 최고 많은 발굴 실적이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서산에 숨은 독립운동가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번 발굴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여자 독립운동가를 발굴했는데 조사를 하다 보니 북한으로 귀화해 대상에서 빠진 것과, 해미읍성 600주년 행사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기획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행사가 취소됐다"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서산지역은 충남 최초로 기호흥학회 지회가 설립된 곳이다.

기호흥학회는 학교를 건설을 통해 인재를 양성해 전국적으로 청년을 교육하기 위해 1908년 1월 서울에서 창립된 애국 계몽단체다.

현재 서산시에서 서훈을 받은 서산 출신 독립운동가는 현재 50명이다.

▲서산시청 만세서산의 독립유공자 정리 자료집과 서산시 사회복지과 서산출신 독립 운동가 발굴 연구용역 최종보고서  ⓒ프레시안(백승일)

한월당 김상정 선생은 1875년 9월12일 충남 서산시 부석면 칠전리 105번지에서 태어났다.

김상정 선생은 1919년 1월21일 덕수궁에 유거하던 광무황제가 훙거한 소식을 듣고 발상문을 작성해 면사무소 게시판에 게시하고 홀로 발상했다.

이어 1919년 3월23일 해미면에서 3.1독립만세 시위가 일어나 왜경이 민심을 회유하기 위해 면민 대회를 개최하자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환기시키고 불납세는 무론 왜왕의 명령을 맹세코 복종할 수 없다면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작성해 조선 총독에게 발송했다.

9월12일에는 면서기가 왜경을 대동하여 호세고지서를 배부하자 ’왜왕 대정은 한국과는 대대로 원수라 죽어서라도 원수를 갚겠다’ 중지 2절을 칼로 끊어 혈서를 써서 조선 총독에게 발생하는 결기를 보였다.

1921년 9월12일에는 전매령에 항거해 담배를 재배케하고 ‘대한 유민 김상정 종불굴초’라는 표시를 세웠는데 왜경이 벌채를 명하자 ‘더러운 소리를 듣지 않겠다’며, 자신의 좌측 귀를 자르고 혈서로 자신의 의지를 표명했다.

1933년에는 행정에 협조를 하지 않는다고 납치해 강제로 삭발하려 하자 왼손을 물어뜯어 피를 입에 물고 왜경의 얼굴에 뿜었다.

1937년 2월에는 삭발을 하지 않고 상복을 벗지 않음에 사상이 불온하다고 청양 주재소에서 무참히 구타를 당해 척추 절상으로 종신까지 허리를 쓰지 못했다.

1946년 1월1일 광복으로 환국 한 김구 주석은 혈서철을 보고 김구 주석 명의의 특행 찬양문을 보냈다.

김상정 선생은 1954년 8월19일 만 79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저서로는 한월당집이 있다.

정부는 1982년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국내 항일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애족장 포상을 받았다.

김준환 팀장은 "증조할아버지는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가려고 하셨는데 때마침 몸도 아프시고 애들도 있어서 마음을 접으셨다"면서 "손을 보면 단지를 하고 혈서를 많이 써서 손이 문둥병 걸린 것처럼 변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자른 손가락은 사후에 같이 묻어 드리기 위해 소금에 절인 후 말려서 보관했다"면서 "후손으로서 생가가 훼손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조례 등을 재정해서라도 다음 세대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현충 시설로 지정해 국가에서 관리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역사와 후손들을 위해 서산시 독립유공자들을 위한 회관을 건설해 선양사업을 했으면 좋겠다"며 "청소년들에게 수학여행 등을 통해 상해임시정부나 이등 방문 저격 장소 등을 견학하게 해 애국심을 고취하고 위대한 독립운동가들 기억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월당로 지정과 시청 앞 기념비는 누가 추진한 것이냐는 질문에 김준환 팀장은 "한월당로는 도로명심의위원회에서 기념비는 유림에서 설치해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27일 25개 독립운동가 선양 단체로 구성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은 유사시 일본군이 한반도에 들어올 수 있다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TV 토론회 발언을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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