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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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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기억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 양방마을 민간인 학살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몸의 기억

열다섯 아버지는 돌담 뒤에서 엎드린 채였다

어머니와 외갓집 식구들이 발가벗겨져 새끼줄에 굴비마냥 엮여 끌려가고 있었다

세 살 된 사촌 동생마저도 어미의 등에 매달린 채 울지도 못하고 있었다

11월 찬 바람에 붉어진 살덩이들이 울컥울컥 게워내는 공포의 냄새가

허옇게 떠다녔다

꿇린 무릎을 언 땅이 파고들며 죄를 묻는다

벌거벗겨진 생명들은 자신이 죽인 적 없는 사람들을 위해 곡을 해야 했다

곡하는 소리가 목을 찢으며 튀어나오는 비명 같았고

스스로의 혼을 붙들기 위해 몸이 부르는 슬픈 노래 같았다

이미 파놓은 구덩이 속으로 던져진

벗은 몸과

끈적한 울음을

차가운 흙이 하나 하나 덮어갔다

그렇게 그들은 생명 밖으로 밀려 나갔다

신에게 바칠 제물조차 되지 못한 채였다

· · · · · · · · · · · · · ·

그들이 돌아왔다

피가 내리고 살이 내려

흙에 섞여들어

물에 섞여들어

나무에 섞여들어

벌레의 몸에 섞여들어

짐승의 몸에 섞여들어

밥을 먹어도 피 냄새가 나고

물을 마셔도 피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열다섯 앳된 소년의 몸에서도 나기 시작했다

굳게 입술을 닫고 아무리 이빨을 꽉 물어도 스멀스멀 올라오던

벌거벗은 살에서 풍기는 징그럽게 붉기만 한 노을 붉은 바닷물 냄새

자식에게마저 섞여들까 봐

칠십 년이라는 세월이 몸을 찢으며 통과할 동안에도

눈을 감고 숨을 참고 말간 물만 보면 입에 물고 헹궈냈다

"할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라고 묻는

아들에게 겨우 토해놓은 살덩이들 죽음들 울음들

"목구멍에 묻었나 보다. 그 사람들 소리가 피 냄새가 자꾸 넘어와."

아들의 몸에서도 피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 1950년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 양방마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의 현장 사진.수 십 명의 사람들이 갇혔다가 학살된 창고터인데 현재는 농협건물이 들어서 있다. ⓒ우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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