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틀 무렵 두루미를 본 적 있으세요? 밤새 잘 잤느냐고 물으면 두루미가 살살 움직이는데 반짝반짝해요. 그러다 날개를 쫙 펴서 흔들면 보석 같은 것이 쏟아지는데 '이야'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죠. 거기에 한 번 빠지면 못 헤어납니다."
두루미 깃털에 내려앉은 밤이슬이 햇살에 비쳐 반짝이는 모습이 최종수 씨의 눈에는 보석처럼 보였다. 20년이 넘도록 봐온 모습이지만 늘 경이롭다. 최종수 씨는 철원 동송읍 민통선 안에서 벼농사를 짓는 농부다. 봄, 여름, 가을 논에서 부지런히 한해 농사를 짓고 나면 겨울에는 두루미들에게 그 자리를 내준다. 그에게 두루미는 논이라는 밥상에서 함께 먹을 것을 구하고 생을 이어가는 식구다.
두루미 때문에 농부가 되다
그와 두루미와의 인연은 1991년 군 복무 시절로 거슬러 간다. 당시 그는 어느 날 선임과 함께 철원 최전방지역으로 정찰 임무를 나섰다가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게 됐다.
그야말로 강렬했던 첫 만남은 그의 인생을 바꾸기 시작했다.
직업군인이었지만 틈틈이 두루미와 관련된 논문이나 기사들을 찾아서 보고 전역 후에는 두루미가 있는 철원에 정착까지 했다. 식당을 열고 생계를 꾸리고 틈틈이 환경단체를 찾아가 두루미 보호 자원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이건 아니다 싶어 환경단체 자원 활동을 그만두고 그 길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는 농부가 살아야 환경이 살고 환경이 살아야 두루미가 산다고 믿었다. 정작 그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농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두루미를 지키는 일이 요원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1997년부터 식당 문을 닫고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시작했다. 농민들에게 농민으로 인정받기 전까지는 두루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고 다짐까지 했다. 그의 진심에 농민들도 농사일을 하나 둘 알려주고 형님 동생하면서 마음을 내주기 시작했고 그도 자연스럽게 그가 하는 일,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 둘 꺼낼 수 있게 되었다.
두루미를 식구로 맞아준 농민들
대표적인 것이 무논과 볏단존치다. 추수가 끝난 논에 물을 대는 일은 농민들 입장에서는 참 번거로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벼 베기가 끝난 논에는 물을 대지 않는다. 굳이 물을 댈 필요도 없거니와 오히려 무논은 겨울 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둑이 망가지기 일쑤고 질퍽해진 논은 이듬해 봄 땅 갈기에도 좋지 않다. 하지만 철원 농민들은 벼 베기가 끝난 논에 물을 댄다. 두루미 때문이다.
무논만큼이나 중요한 또 한 가지는 볏짚 존치다. 탈곡을 끝내도 아직 볍씨가 남아있는 볏짚은 두루미를 비롯한 철새들에게 겨울을 나기 위한 중요한 식량이지만 농민들에겐 부수입이기도 해 추수가 끝난 들녘에서 볏짚을 보기 힘들다. 최종수 씨와 농민들은 두루미를 위해 볏짚을 남겨뒀다. 자발적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농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으로는 지속가능할 수 없는 일이었다. 좀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갈 수는 없을까 고민하던 그는 평소 존경하고 따르던 '형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두루미협의체는 두루미 보호를 위한 농민들의 무논 조성과 볏짚 존치에 대해 알리는 한편 정부와 지자체를 상대로 지원을 이끌어냈다. 생물다양성관리계약, 생태계서비스지불제란 이름으로 일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농민들이 감내해오던 부분에 대해 일부 보상을 받기 시작하자 두루미 보호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농민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부족한 예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 2022년 예산에 철원지역 농민들의 볏짚존치사업으로 기존 6000만 원에서 3억3000만 원으로 증액돼 책정이 됐다. 최 씨는 이로 인해 볏짚존치 면적이 더 늘어나고 두루미를 비롯한 철새들의 먹이터도 늘어나게 됐다며 기대했다.
농민들의 무논 조성과 볏짚 존치 효과는 컸다. "그 전에는 최대 흰두루미 650마리, 재두루미 4500마리뿐이었는데 무논을 조성하고 볏짚을 존치한 후부터는 매년 늘더니 올해는 흰두루미 850~900마리, 재두루미 6500마리가 찾아왔습니다. 전 세계 재두루미의 2분의 1이 대한민국에 오는데 그중 95퍼센트가 철원에 있습니다. 전에는 이곳을 거쳐 일본으로 가는데 이제는 이곳에서 겨울을 납니다. 여기 논이 얼기 시작하면 두루미들이 포천이나 연천, 파주로 가지요"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농민들도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무논과 볏짚 존치를 했더니 땅이 좋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논에 볏짚을 두고 물을 대놨더니 두루미를 비롯한 새들이 와서 먹고 똥도 싸고, 그러다보니 자연 거름이 만들어진 것이요. 그 때문에 비료 90을 줄 걸 60으로 줄였어요. 땅이 좋아지니 쌀 맛도 좋아졌어요. 이곳 쌀은 두루미가 먹는 쌀이고 이곳 땅은 두루미가 거름을 준 땅이에요. 두루미가 먹고 자는 성지에서 나온 쌀이죠"라며 싱글벙글 웃는다.
어느 새 두루미는 농민들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외지에 사는 손자 손녀들에게 두루미 이야기를 전하느라 바쁘고 방송에 인터뷰라도 하는 날에는 잊고 살던 친구에게 멋지다는 연락도 받는다.
농민들은 두루미 잔치도 벌인다. 두루미가 마을을 찾는 시기에 한 번, 두루미를 보낼 때 한 번 마을 잔치를 한다. 또 1, 2월에는 농민들이 직접 생산한 오대쌀로 두루미에게 먹이 나눔 행사도 벌인다.
보전대책 없는 해제로 농민 두루미 위기
대한민국 철원이 '세계 최대 두루미 월동지' '두루미의 성지'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농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한 가지는 군사지역이라는 특수성도 한몫했다. 하지만 이 타이틀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우려하고 있다. 현재 검문소 이전과 민간인통제선 북상 계획에 따라 농민들과 두루미의 서식지가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곳 내포리 등도 민통선에서 해제되면 양지리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것이다.
앞서 민통선에서 해제된 인근 마을의 변화를 목도한 최 씨는 대책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
"막을 수 있는 건 간단해요. 정부에서 '농지는 농민에게' 그 원칙만 지키면 됩니다. 농업을 경제 가치가 아닌 미래를 위한 안보 개념으로 봐야 해요. 개발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농민과 두루미가 살 수 있는 마지노선은 지켜달라는 겁니다. 당장 정부부처가 갖고 있는 땅 먼저 보전지역으로 지정하고 사유지라도 보전 가치가 있는 지역은 보전지역으로 지정해야 합니다. 두루미가 사는 땅에는 최소 천연기념물이 14종 이상이 삽니다. 이미 땅 갖고 있는 농민들이 먼저 지정해달라고 요구까지 한 상황입니다. 두루미와 농민들 보존대책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왜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까" 하고 한탄했다.
두루미 노랫소리와 농민들 웃음소리 들리는 곳
그의 바람은 하나다.
그와 함께 세계 최대 두루미 월동지를 지켜온 농민들은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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