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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괴물'? 그 오해와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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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괴물'? 그 오해와 실체

[기고] "내민 손이 파란색이냐 아니면 빨간색이냐를 가지고 판결하지는 않는다"

미국 연방특허항소전문법원(CAFC) 법원장이였던 레이더(Randall R. Rader)는 2000년대 초반 특허 괴물(Patent Troll) 논쟁이 한창일 때 "내민 손이 파란색이냐 아니면 빨간색이냐를 가지고 판결하지는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특허 괴물'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비제조 특허수익화 전문기업(NPE, Non-Practicing Entity)'의 권리행사를 부당, 불법한 것으로 제한하지 않고, 그 특허권의 행사가 정당한 특허권의 행사인지, 아니면 부실한 권리에 바탕 한 불법, 부당한 권리행사인지를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결국, 특허권리행사의 부당성, 불법성을 보고 판단하지, 권리행사 주체가 제조업체(PE)인지 비제조업체(NPE)인지를 구분해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 세계 특허업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NPE를 '특허 괴물'이라 공격하는 시각이 있다. 자극적, 감성적 접근이다. 굴지의 글로벌 기업인 A사의 예를 들어보자. A사가 연 수백건의 특허공격에 시달린다거나 A사의 전 IP 최고 담당임원이 '특허 괴물'이 되어 자기가 속해 있던 기업을 공격한다는 등 국민의 감성을 자극하는 기사가 연일 쏟아진다. 하지만, 글로벌 IT 대기업인 A사는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상, 태생적으로 특허소송에 자유로울 수가 없다. IT제품 특성상 하나의 제품에 수십 내지 수십만개의 특허가 적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인 애플, 구글, 인텔, 화웨이 등도 예외가 아니다.

'특허 괴물'이란 용어는 1998년 인텔과 NPE인 테크서치와 특허분쟁에서 탄생했다. 인텔의 고위임원이던 피터 데트킨(Peter Detkin)이 테크서치의 정당한 특허권 행사를 악의적으로 '특허 괴물'이라 칭하며 처음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특허 괴물'이란 말을 탄생시킨 데트킨이 NPE로 이직해 활동해도, 애플, 구글이 NPE와 특허소송에 시달려도 이를 당연한 경제활동으로 여긴다. '특허 괴물'도 거친 레토릭에 불과하다. 특허를 가지고 있지만 직접 제품을 생산하지 않고 라이센싱, 특허소송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관을 보다 중립적인 용어인 NPE(Non-Practicing Entity) 또는 PAE(Patent Acting Entity)라 부른다. 이를테면 대학, 연구기관 등도 NPE의 일종이다. 미국, 유럽에서는 NPE 산업을 '특허 괴물' 활동이 아닌 정당한 비즈니스로 인정한다.

오히려 대학, 연구기관, 개인발명가, 스타트업, 중소기업 등은 NPE를 '특허 천사(Patent Angel)'라 부른다. 소송 수행 능력과 수익화 경험, 자금 등이 부족한 자신들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연구 투자한 결과물인 특허로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특허권의 실시(라이센싱, 매각 등)를 도와 다시 그 수익으로 연구개발에 재투자하는 것도 도와준다.

글로벌 기업, 특히 IT 기업들도 특허소송이 기업경영의 상수가 된지 오래다. 이 때문에 NPE를 특수목적법인(SPC) 형태로 직접 설립, 운영하기도 한다. 때로는 NPE와 제휴해 경쟁기업을 정당하게 공격하기도 한다.

NPE는 그 권리행사가 부당, 불법인 경우에만 비난받고 제한받아야 한다.

특허권의 권리범위를 넘어선 권리행사, 하자가 있는 부실한 특허에 기반한 권리행사, 특허권자와의 시장에 대한 정보비대칭성을 악용하여 특허권자로부터 과도한 이익을 편취하는 권리행사 등은 '특허 괴물'로 당연히 비난받을 수 있다. 이런 부당한 권리행사에 대한 비난, 제한은 제조업체(PE)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한국 기업의 NPE 소송은 대부분 미국시장, 유럽시장에서 벌어진다. 그 소송을 담당하는 기관은 한국법원이 아닌 미국, 유럽법원이다. 그들은 NPE 여부에 상관없이 특허권과 제품만 놓고 침해 여부, 손해 배상 등을 판단한다. 그것이 세계 특허시장의 룰이다. NPE를 무작정 '특허 괴물'이라 부르는 감성적 접근보다, NPE가 가진 본연의 역할을 직시하고 세계 시장에 맞는 눈높이의 냉철하고 균형된 시각이 요구되는 이유다.

한국은 세계 출원 4위, 연구개발(R&D) 투자 100조원이 넘는 지재권 대국이자 R&D 강국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 및 연구기관을 대변할 수익화 전문기업인 NPE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민간금융기관이나 연기금의 지적재산권 수익화에 대한 투자나 NPE 육성 투자도 외국과 비교하면 사실상 없다 해도 무방하다.

반면 미국은 수백 조원의 월가 자금이 300여개 NPE에 투자된다. 자연스레 세계 특허질서를 주도한다. 캐나다 연기금도 최근 자국 휴대폰 회사인 블랙베리의 모바일 특허 수익화를 위해 자국계 NPE에 거액을 투자했다.

우리도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 특허 소송 역량이나 라이센스 협상 역량을 강화하고, 해외 NPE들로부터 공격을 받는 국내기업들을 지켜내기 위하여 한국형 NPE를 길러내는데 적극 투자해야 한다. 경쟁력있는 국내 NPE 10개만 있으면 우리나라 104조 R&D 역시 바로설 수 있다는 평가에 귀 기울여볼 만하다.

국내 대기업에도 당부할 게 있다. 국내 대기업이 타 기업이나 연구기관의 특허를 존중해야 우리나라 지식재산보호 체계가 바로 선다. 미국, 중국에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스타트업, 연구기관의 특허를 존중하고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한다. 국내 기업 또는 연구기관도 특허가 해외 NPE로 이전되기 이전에 대부분 국내 대기업들에게 특허권 이전이나 라이센싱 협상을 한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대부분 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해외 NPE에게 그 특허들이 이전돼 부메랑으로 국내 대기업에 대한 공격으로 되돌아 오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당초 국내 연구기관이나 기업이 대기업에게 제시했던 라이센싱 로열티의 2배 이상으로 타결된다.

내민 손이 빨간 색이냐, 파란 색이냐를 따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민 손이 한국인 손이냐, 외국인 손이냐에 따라 따라 특허권 매각 및 라이센싱 협상과 로열티 액수가 달라지는 냉정한 현실을 국내 대기업들은 되돌아보아야 한다. 국내 대학, 연구기관, 스타트업, 중소기업의 특허는 공짜가 아닌 존중받아야 할 그들의 자산이다.

▲천세창 변리사, 前 특허청 차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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