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밥상머리에 '김건희 녹취록', '형수 욕설'이 재생되는 것만은 진심으로 뜯어말리고 싶다. 아무리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지만, 가뜩이나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침울해진 명절에 만난 가족들이 새 정부 탄생을 40여일 앞두고 주고받을 이야깃거리로는 너무 민망하다. "일체의 네거티브를 확실히 중단하겠다"던 어떤 대선후보의 다짐이 적어도 설 명절까지는 유효하기를 바란다. 어디까지가 검증이고 어디까지가 네거티브인지 헷갈리지만. 욕설이니 무속이니 들먹여 한마디씩 하는 목소리 큰 정치인들도 부디 참아주기를.
이런 대선은 처음이지?
그래도 5년 만에 새로운 국가 리더를 뽑는 축제의 장이 어쩌다 기대와 감동이 없는 비호감 경쟁으로 몰락했는지는 차분히 되돌아볼 일이다. 촛불과 탄핵을 거쳐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던 약속을 얼마나 지켜냈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은 어디쯤 와있나. 주류세력을 교체하고 20년 집권을 자신하던 더불어민주당은 어쩌다 '586 용퇴론'에 휘말렸나. '대한민국의 성공한 샌더스'를 열망하던 이재명 후보는 왜 집 부자들이 좋아할 만한 공약을 쏟아 붇고 표만 바라본 좌표 잃은 언사들로 신뢰의 위기를 맞았나.
그렇다고 국정농단으로 밑천을 드러냈던 세력에게 다시 정부를 맡기자니 도통 미덥지가 않다. 유권자들에게 탄핵 정부의 기억이 온전히 지워지지 않은 탓이다. '별의 순간'은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넣고 현직 대통령과 맞섰던 정치권 바깥 인사에게 어른거렸다. '공정과 상식' 대변자처럼 보였던 윤석열 후보는 국민의힘에 입당한 뒤로 무슨 일을 겪었기에 '멸공 챌린지'‧'여성가족부 폐지'의 아이콘이 됐나. '반(反)문재인'으로 집권해 집무실을 마련하겠다는 '광화문 청사'가 혹시 '윤핵관 운신처'로 새단장하는 것은 아닌지. (영부인에 관한 상상은 생략하자.)
'20대 탐구'는 정도껏
20대들에겐 올해 설이 매우 곤혹스러울지 모르겠다. 2030 세대가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트라고 주목받는다.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삼촌뻘인 4050 세대까지 "20대는 진짜 그렇게 생각해?", 호기심과 의구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2030 탐구'에 매진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궁금증이 앞서더라도 앞 세대보다 더 빈곤하게 살수도 있는 20대에게 '정의와 공정'을 함부로 훈계하지는 말자.
여야 대선후보들이 2030을 표심 공략 타깃으로 설정하고 '이대남', '이대녀'를 갈라치는 대선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주장하는 이른바 '세대포위론'에 동참한 20대도 있겠지만, '안티페미니즘'에 목소리를 내지 않는 청년들은 어떨까. 가령 유난히 이번 선거에서 '음소거'당한 20대 여성들 같은 경우 말이다. 윤석열 후보는 아무런 내용도 설명도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를 휙 던졌다. 이재명 후보는 혹시라도 페미니즘 논란에 휩싸일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설날 밥상 앞에서 특히 남성들은 젠더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한번 곱씹어보자. 지금 차려진 이 명절음식들을 누가 준비했는지.
단일화, 되는 거야 마는 거야?
'뭉치면 이기고 흩어지면 진다'. 선거 금과옥조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통과의례처럼 단일화 시즌이 닥쳐온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부터 단일화계를 평정해온 단골손님이 있다. 그의 상대는 박원순, 문재인, 오세훈. 이 쟁쟁한 경쟁자들을 상대로 '통 큰' 양보도 해봤고, 전격적인 불출마 선언도 해봤고, 경선 승부도 벌여봤다. 요즘은 "단일화 가능성은 제로"라면서도 스스로 '안일화'를 띄우고, 상대편은 '간일화'라고 깎아내린다.
윤석열 후보가 단일화 베테랑인 안철수 후보와 눈치작전을 벌이는 중이다. 두 후보의 공통분모는 정권교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우위 여론이 견조하고 단일화를 가정한 양자 대결에선 보수 야권 단일후보로 누가 나서건 이재명 후보에 비해 우세한 흐름이다. 야권에 단일화 압력이 충분히 조성될만한 여론 환경이다. 이재명 후보로서는 야권 단일화가 불발돼야 유리하겠지만, 상대편 일이라 지켜보는 수밖에.
그러나 단일화는 산술적인 지지율의 합이 아니고, 치열한 선거전에 '아름다운 단일화'란 낭만에 가깝다. 뚜렷한 명분, 매끄러운 절차, 깨끗한 승복과 협력이 물 흐르듯이 진행된 전례가 없다. 삐끗하면 야합으로 비쳐지거나 대선 전날 밤에 파기됐던 사례도 있다. 야권 단일화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냉정하게 따져보자. 윤석열, 안철수 후보가 '묻지마 정권교체'를 넘어선 단일화 명분을 유권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지. 과연 아무런 지분 거래 없이 한 쪽이 권력을 포기할 수 있을지.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당명은 비슷해도 공동정부를 구성한다면 과연 그 미래가 아름답기만 할지.
이재명‧윤석열 양자토론, 얼마나 다를까?
설 연휴 첫날 이재명, 윤석열 후보가 공식 일정을 잡지 않았다. 31일에 열기로 한 양자토론을 준비하기 위해서란다. 내달 3일에는 안철수, 심상정 후보까지 참여하는 4자토론이 열린다. 바야흐로 대선후보들이 유권자들 앞에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논쟁을 벌이는 '토론 배틀' 시즌이다. 법원이 당초 양자토론을 불허했음에도 이재명, 윤석열 후보는 민심이 뒤섞이는 명절에 자신들만의 무대를 만들려 옥신각신 중이다. 저마다 토론 실력을 자신한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토론을 입씨름 대결로만 관전하지 않는다. 과거 TV토론에서 어설픈 말재간으로 낭패를 본 경우가 숫하다.
토론의 승패는 리더가 되려는 사람의 태도와 철학, 진정성에서 결정된다. 그런데, 그동안 서로를 향해 네거티브 공방만 해온 이재명, 윤석열 후보가 마주앉으면 무슨 얘기가 오갈지. 굵직한 부동산 정책방향부터 '마이크로 공약'까지 서로 칭찬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엇비슷하던데…. 두 후보는 외나무다리인 양자토론에 많은 공을 들이겠지만, 제대로 된 경쟁과 각축을 원하는 유권자들에게는 4자토론이 어쩌면 더 유의미하겠다. 파고가 거세지는 미중 갈등이나 기후 위기, 여성‧성소수자‧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관심 갖는 후보가 진짜 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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