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대가리1
국가는 계산적이었다
냉정하게 분류하고 머리 숫자를 중요시했다
명단에 오른 자와 체포된 자
체포된 자와 도라꾸에 실린 자
골에 도착한 자와 구덩이에 엎드린 자
사살된 자와 사진에 찍혀 미군 보고서에 첨부된 자
<하나 예외, 함께 사살한 젖먹이 아이와 미취학 연령대 소녀>
이들은 오직 대가리 숫자였다
그가 3대 독자든
그녀가 만삭이든
내일 혼례식을 앞둔 약혼녀든
억울하게 명단에 오른 자든
그가 독립운동을 한 자든 애국자든
그를 죽여 되레 전쟁에 패배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로지 명단에 있고 숫자만 맞으면
그 자는 사살되고
생명은 추상 되어 대가리 숫자가 되어
그 골짝 우렁찬 살생의 함성 울릴 때
나무와 숲의 푸른 눈물에
짝짓기에 겨운 여름 귀뚜리조차 감히 울지 못했다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도
사람들은 대가리를 갖고 놀았다
대가리는 오직,
1950년
군경에 신병이 인계된 대구형무소 수감자 명단 1402명
구슬치기처럼 숫자로만 의미를 가졌다
여전히
몸이 가진 삼라만상의 가치 중
오로지, 대가리 숫자만 취급하는
그 버르장머리를 숭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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