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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밥과 굴비 구이로 명절 스트레스 날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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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밥과 굴비 구이로 명절 스트레스 날리기

[그녀들의 맛있는 한의학] 11화. 손이 찬 사람은 마음이 따뜻한 걸까?

"심장에 열이 있는 것은 살짝 누르면 피부와 근육 사이에 있어서 가볍게 눌러도 느낄 수 있다. 살짝 누르면 피모의 아래에서 열을 느낄 수 있지만, 조금 더 힘을 주어 누르면 전혀 열을 느낄 수 없는데, 이것은 열이 혈맥에 있기 때문이다. 한낮에 제일 심해지는데, 그 증상은 가슴이 답답하고 명치가 아프며 손바닥에 열이 나면서 헛구역질을 하는 것이다.

心熱者 微按至皮膚之下 肌肉之上 輕手乃得 微按至皮毛之下則熱 少加力按之則全不熱 是熱在血脈也. 日中太甚, 其證 煩心 心痛 掌中熱而噦." - 동의보감 잡병편 권3 화火 중에서 -

출근길, 라디오를 듣는데 귀에 익은 왈츠가 흘러나오며, 남녀 주인공의 대화가 이어진다.

"손이 차가워요."

"저 원래 손 차요, 마음이 뜨겁다 보니까."

"아..."

"후흣."

빨간 석양을 배경으로 태희와 인우가 마치 그림자놀이처럼 왈츠를 추는 이 장면은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의 일부다. 오래전 봤던 영화의 내용을 떠올리며 음악을 듣고 있으니, 불현듯 정말 마음이 뜨거우면 손이 찰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한의원에 도착해 <동의보감>에서 심열心熱을 찾아본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걸? 손바닥에 열이 난다고 떡 하니 쓰여있다. 가슴이 뜨거운 것과 심장에 열이 있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사랑에 빠진 태희는 마음이 뜨겁다고 했지만, 흔히 '손이 차면 마음이 따뜻하다'는 말을 한다. 심장의 열이 아니라면 이 따뜻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것은 아무래도 ’마음이 여리고, 섬세하고 조금은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의 말이 아닐까 싶다.

이런 사람들은 남들보다 좀 더 많은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넘어갈 일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오랫동안 속에 담아두기 쉽다. 그 과정에서 마음을 다치고 몸은 지치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경계가 쉽게 긴장 신호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자율신경계에서 교감신경이 쉽게 흥분한다고 할 수 있다. 교감신경은 우리 몸이 스트레스 상황에 대비하도록 돕는다.

교감신경은 '동공과 기도를 확장하고 눈물과 침의 분비를 억제하고, 심장박동을 촉진하며 간에서 포도당의 생산과 방출을 늘게 한다. 소화효소의 분비를 줄이고 위장의 연동운동을 억제하며, 신장의 소변생산을 줄이고 방광을 이완시킨다.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하고, 혈관을 수축시킨다.'

이런 반응들은 위험한 상황에서 도망치거나 싸우기 위한 상태를 만드는 것으로 생물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다.

아마도 영화 속 태희의 손이 차가운 까닭은 이런 긴장반응에 따른 혈관의 수축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평소에 소화불량에 잘 걸리거나 입술이 잘 마르고 안구가 건조했을지도 모른다.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을 확률도 크다.

이런 여리고 예민한 사람들이 가지는 또 하나의 문제는 쉽게 긴장한다는 것도 있지만 이것을 적절하게 풀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하고 꾹 참다 보니 이것이 쌓여서 이런저런 불편함을 만들어 낸다. 울화병도 되고 우울증도 되고 공황장애가 찾아오고 가끔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생존을 위해 필요했던 예민함이 도리어 나를 헤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기질의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긴장을 풀어내야 한다. 내 뜻과 상관없이 몸이 알아서 그런 상태에 빠지고 오랜 기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이 더 긴장한다는 인식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정 기간의 의식적인 이완 이후에야 자신의 긴장을 알아차리게 된다. 무의식적인 긴장을 의식적인 이완을 통해 인지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틈틈이 소소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마이너스를 덜어낼 수 없다면 내가 행복하고 좋은 것을 더해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문명은 나아가는 듯 보이지만 인간이 가진 야만은 크게 변하지 않고, 여리고 섬세한 사람들의 상처 또한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을 스스로 위할 줄 알아야 건강할 수 있다.

▲ⓒ고은정

그녀들을 위한 레시피 : 치자밥과 굴비구이

다른 사람은 모르겠으나 명절이 다가오면 나는 늘 조바심치면서 나를 들볶는다. 아마도 어린 시절 친정에서 보냈던 명절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월남해 가정을 이루셨던 아버지에게는 하나뿐인 남동생과 하나뿐인 누나가 있었다. 아버지에게나 귀한 사람들이었지만 어머니에게는 그저 시가 사람들이라 오로지 섬김의 대상이었다. 거기에 더해 절대로 일찍 와서 전 한 점 부치는 법 없는 작은 어머니도 있었다. 명절마다 반복되는 구구절절한 원망의 소리와 함께 그 모든 일거리들이 나 한 사람에게 쏟아지는 불합리함을 견디기 쉽지 않은 나이였다. 그때의 나도 위로가 많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어머니는 모르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랐음에도 나는 용감하게 어머니처럼 큰며느리가 되었고, 어머니를 떠올리며 해마다 명절을 보낸다. 손아래 동서들이 많기는 하지만 누구에게도 미리 오라고 하지도 않고 안 온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혼자 할 일이라 생각하고 한다. 일의 분담 때문에 어머니처럼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은 생각에서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가정에서 볼 수 있는 '며느라기'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명절 앞뒤로 시간을 내야 할 만큼 많은 일거리들은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 덩어리 그 자체다 사실. 명절에 차례상 차리는 일도 버거운데 몇 끼가 될지 알 수 없는 시댁 식구 밥상 차리는 일, 청소, 이불 빨래, 뒷정리 등이 고된 일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도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지만 차례상 장보기와 친인척이 다 모여 몇 끼를 먹을 장보는 비용이 만만찮으니 스트레스의 주범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구정에는 조카녀석들 세뱃돈까지 준비해야 하니 .....

올 구정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미리 준비해 놓는다. 치자 몇 쪽, 그리고 굴비 한 마리. 오로지 구정 지나고 나 혼자 차려 먹을 밥상을 위해 무심하게, 그러나 아무도 찾지 못하게 숨기듯 남겨둔다. 그리고 구정 뒷설거지 끝낸 후 혼자 차려놓고 의식을 치루듯 먹을 예정이다. 가슴 속에 이는 불을 끄고 답답함을 풀어줄 치자 한쪽 넣고 노랗게 밥을 해야지. 노랑노랑 예쁜 밥 한 그릇, 거기에 굴비 한 마리 통째로 구워 앞에 놓고 앉아 내편 아닌 것 같던 남편 껍질도 벗기고, 시누이 말에 숨어 괴롭히는 뼈도 발라내고, 입에 쓴 내장을 씹으며 일하러 일찍 안 왔던 동서들도 같이 씹을 것이다. 먹다보면 굴비는 온데 간데 없고 뼈만 남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며칠간 열받게 하던 많은 순간들이 다 정리되어 날아오를 것처럼 나는 가벼워질 것이다.

<재료>

쌀 2컵, 치자물 2컵

치자물 : 치자 10g, 물 3컵

<만드는 법>

1. 찬물에 치자를 대강 잘라 넣고 30분간 우린다.

2. 쌀은 손으로 살살 비비면서 3~4번 씻는다.

3. 씻은 쌀을 체에 밭쳐 치자물 우리는 동안 불린다.

4. 압력밥솥에 불린 쌀과 치자물 2컵을 같이 넣고 흰밥을 하듯 밥을 한다.

5. 김이 저절로 빠질 때까지 두었다가 솥뚜껑을 열고 밥을 살살 섞어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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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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