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민주항쟁 당시 경찰에 폭행당했다가 기절까지 했던 당시 20대 남성이 40여 년이 지나서 당시 자신을 도와준 고등학생을 만나 용기를 얻어 항쟁 피해자로 인정받게 됐다.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및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는 정남진(64, 경북 포항시) 씨를 항쟁 상이 피해자로 인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위원회에 따르면 정 씨는 22세였던 지난 1979년 10월 18일 부마항쟁 때 경남 마산(현 창원시)에서 초·중·고교에 시험지를 배달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날도 배달을 위해 거리에 나선 정 씨는 당시 신마산역 인근에서 일어난 시위를 무력하는 진압하던 경찰을 목도했다.
경찰은 최루탄의 하얀 연기로 가득찬 거리에서 시민을 향해 마구 곤봉을 휘둘렀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시민의 머리채를 붙잡고 연행 차량까지 질질 끌고 가기도 했다.
정 씨는 이러한 경찰의 무력 진압을 제지하고 시민들을 구하려했으나 경찰의 곤봉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고 구둣발로 짓밟히기까지 했다.
폭행을 당한 정 씨는 이가 3개 부러지고 왼팔이 골정된 상태로 한참을 쓰러져 있었다. 홀로 방치된 그는 목숨을 장담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는데 고등학생 서너 명의 도움으로 다행히 병원에 갈 수 있었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정 씨는 이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못했고 병원 측이 신고해 경찰에 연행될까봐 두려워 응급 처치만 받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 뒤로 자신이 항쟁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철저히 감춘 채 평생을 살아왔다.
정 씨는 지난 1981년 마산을 떠나 울산을 거쳐 포항에 새 둥지를 틀었고 자신이 운전기사로 일하던 기업의 하청 경비업체 직원 A 씨와 자주 어울렸다. 그러던 10여 년 전 어느 날, A 씨와 함께 술을 마시던 정 씨는 오랫동안 숨겨왔던 항쟁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한참 정 씨의 말을 듣던 A 씨는 "형님, 그 사람이 접니다"라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정 씨는 A 씨가 장난친 것이라 생각했지만 마산상고 학생이었던 A 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A 씨는 "학교 다닐 때 우리 학교에 늘 시험지를 배달해주던 분이 그날 피를 흘린 채로 기절해 있기에 친구들과 도와줬습니다. 그게 형님이었다니"라고 말하면서 부마항쟁의 인연이었던 두 사람이 다시 재회하게 된 것이다.
정 씨는 진상규명위에 피해를 신청한 데도 A 씨의 권유가 있었고 위원회는 지난 17일 열린 제77차 본회의에서 정 씨를 항쟁 상이 피해자로 심의·의결하면서 피해보상의 길도 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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