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부터 택배 일을 했다는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 김성룡씨는 민주당사 앞에서 나흘째 단식을 하고 있다. 그는 택배노조의 출발을 함께 했다. 2009년 광주지역 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수수료 30원 인상을 요구했다. 원청인 대한통운은 78명 전원을 해고했다. 투쟁을 앞장 서 이끌었던 화물연대 광주지부 박종태 지회장이 사측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었다. 뼈저린 고통이 있었지만 택배 현장을 떠나지 않고 산전수전 다 겪은 고참 노동자는 이번엔 곡기까지 끊으며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절박하니까 이렇게 한다고 했다.
'당일배송', '주 6일제', '터미널 도착 상품 무조건 배송'이 택배 과로사 방지대책?
서현진 : 부속합의서의 '당일배송', '주 6일제', '터미널 도착 상품의 무조건 배송' 등 3가지 항목이 왜 문제인가?
김성룡 : 택배노조가 택배사와 영업점, 과로사대책위, 정부 등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 기구를 통해 지난해 1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합의문을 만들었다. 택배기사를 분류 작업에서 배제하고 택배기사의 작업 시간은 주 60시간 이내가 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택배 사업자는 이러한 표준계약서에 기초한 위탁계약서를 구비해야만 사업등록을 할 수 있다. 그런데 CJ대한통운은 사회적 합의의 취지와 반대되는 내용인 위 세 가지 항목을 부속합의서에 명문화하겠다고 한다.
택배 기사는 어떻게든 배송을 하려는 사람이다. 당일 배송을 해주고 싶다. 이론적으로 보면 고객의 물건을 당일 배송하는 게 맞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생물(상하거나 썩는 제품)은 당일 배송이 원칙이고 다른 제품도 최대한 당일 배송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일단 물량이 너무 많다. 그리고 간선차가 빨리 들어와서 하차를 해야 한다. 간선차가 오후 1시, 2시에 들어오는데 당일배송 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집화한 물건을 당일 실어 보내기 위해 일 하다가 다시 터미널로 가야 하는 문제도 생긴다. 그렇게 되면 밤 11시, 12시까지 배송해야 되고 2회전 배송까지 해야 한다. 아침 8시나 9시까지 분류를 마치면 당일 배송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개발하지 않고 기사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건 아닌가? 부속합의서를 승인해 준 국토교통부를 이해할 수 없다.
서현진 : 왜 이해할 수 없는지 더 자세히 설명을 해 준다면.
김성룡 : 다시 말하면 허브터미널에서 서브터미널로 물건이 내려오는 시간을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당일 배송을 명문화하면 사측은 쉽게 기사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 광주 지역은 기사들에게 공식적으로 클레임을 묻지는 않는데 다른 지역은 다르다. 특히 노조가 약한 지역은 심하다. 그런데 당일 배송을 명문화하면 이를 못해서 퀵이나 용차(택배 재위탁 개인 화물차)를 쓴 후 기사들에게 더 쉽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거다. 퀵을 쓰거나 용차를 쓰면 기사들의 수입이 줄어드는 문제도 있다. 당일 배송을 못할 경우 소장이 그걸 명분으로, 계약서 상에 명시되었다는 이유로 기사들의 구역을 정리할 수도 있다.
주 5일제를 넘어 주 4일제가 논의되고 있는데 주 6일제를 명문화한다는 것도 사회적 합의 취지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작년 논의 때 주 5일제를 당장 하기는 어렵고 올해부터 논의를 해보자고 했는데, 갑자기 주 6일제를 못 박아 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지금도 토요일까지 일해야 하고 많은 기사가 일요일에도 일해야 한다. 이런 장시간 노동을 줄이자는 게 사회적 합의의 핵심인데, 지금까지 계약서에도 없던 주 6일제를 집어넣은 이유가 무엇인가? 사측은 "'주당 작업시간 60시간 이내'라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라고 하면서 "60시간을 넘기게 되면 당일, 주말 배송 등을 안 해도 된다"라고 하는데 거꾸로 안 해도 되면 왜 넣는가? 국토교통부가 현장 상황을 조금만 들여다보았더라면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인데 왜 이걸 받아주었는지 의심스럽다.
서현진 : 사회적 합의 때 부속합의서를 만들 수 있다고는 하지 않았는가?
김성룡 : 택배사와 대리점마다 조건이 다르다. 대한통운은 시장 점유율이 50% 넘고 기사도 많다. 물량이 너무 많으니까 휠소터(Wheel Sorter)라는 자동분류기도 먼저 설치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니까. 한진은 터미널 시설도 열악해서 아직 설치가 많이 안 되었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부속합의서를 만들 수 있다고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사회적 합의 취지를 부정하는 부속합의서를 들이 밀 줄은 전혀 몰랐다.
이 문제가 기사들하고 회사하고 단순하게 양자 간의 문제가 아니다. 양자만의 문제라면 국토부가 개입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택배비 올릴 필요도 없었고 국토부가 개입할 필요도 없었다. 부속합의서가 그대로 시행된다면 사회적 합의는 큰 의미가 없다. 사측은 과로사를 줄일 의무가 없어지고 노동자들이 일을 많이 할 수 없는 구조는 깨지지 않는다. 정부와 민주당 역할은 뭔가? 과로사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포장하면서 막상 일이 터지니까 개입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민주당은 눈보라 치는데 천막도 못 치게 하고 있고 100인이 단식을 하고 있는데 한 번 나와서 쳐다보지도 않는다.
택배 노동자는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
서현진 : CJ대한통운은 택배비 인상분의 50% 정도가 수수료로 배분되고 분류인력도 차질 없이 투입되고 있다는 주장을 펴는데.
김서용 : 지난 30년 동안 택배비를 올린 적이 없었을 거다. 출혈 과다경쟁을 계속 해왔다. 30년 동안 전체 노동자의 평균 연봉이 200% 이상 올랐지 않았을까? 물가도 그만큼 오르고. 그런데 택배기사들의 건당 수수료는 오르지 않았다.
누구에게 50%를 썼다는 얘기인가? 건당 수수료는 오른 적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택배비 170원을 인상하고 올해 100원을 인상하기로 한 이유는 과로사를 줄이고 택배기사들의 추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사회적 합의 2조 '택배요금 인상분을…택배기사 처우개선에 최우선 활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디에 쓰고 있는가?
작년 9월인가 집화 수수료에서 별도 항목이 생겼다. 예를 들어 내가 5000원 짜리 물건을 집화하면 5000원에 대한 수수료가 아니라 5000원에서 56원을 제외한 돈을 기준으로 수수료를 적용받는다. 반품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돈을 뜯어간다. 우리 계산대로라면 택배비 인상으로 연간 3000억 원 이상을 번다.
분류인력 투입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직영 기사가 온다던가 어떤 곳에서도 대리점 소장과 소장 아들이 나온다. 기사들에게 분류인력 조끼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노조가 없는 많은 곳에서는 아예 분류인력이 투입되지 않고 있다.
서현진 : 수수료 인상을 위한 싸움이 아닌데, 절박한 이유는?
김성룡 : 1995년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1998년 IMF사태가 터지고 비정규직으로 밀려났다. 2009년 노조를 처음 만들고 건당 수수료를 920원에서 950원으로 올려달라고 했다. 박종태 열사가 목숨을 끊었지만 수수료는 올리지 못했다. 노조를 지켜냈다. 2013년 CJ가 대한통운을 합병하면서 또 수수료가 깎였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데 지금은 평균 잡아 850원 정도 될까. 거기서 대리점 소장이 5% 떼어가는 곳도 있고 15% 떼어가는 곳도 있고 많게는 20%, 30% 떼어가는 곳도 있다.
CJ대한통운은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평균 연봉이 8000만 원 이상이라고 하는데 통계가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부부택배 기사 등 두 명이 일해서 버는 걸 포함하는 거다. 사측도 인정했듯 두 명이 일하는 비율이 전체의 20~30% 가까이 되는데 그러면 한 명의 연봉은 4000만 원으로 깎인다. 그리고 그건 매출이지 실제 수입은 아니다. 유류비, 보험료, 각종 수수료, 식대, 차량유지비 등을 다 제외해야 한다. 우리가 코로나로 물량이 많이 늘어서, 일을 많이 해서, 그만큼 오래 일해서 매출이 늘어난 것이지 수수료가 올라서 매출이 늘어난 건 아니다.
그런데 수수료를 인상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다. 사회적 합의대로 진행되었다면 파업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속합의서 때문에 조합원만이 아니라 비조합원들의 불만도 많다. 다시 말해 수수료 인상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과로사를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조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CJ 대한통운 택배 파업의 이유를 다시 한 번만 생각해주길
서현진 : 회사의 입장은 변화가 없는가?
김성룡 : 노조는 파업 전부터 수차례 교섭을 요구했다. 어떤 뉴스에서는 노조가 이제 와서 불리해지니까 협상을 요구한다고 했다. 그건 아니지 않는가? 파업 전부터 협상을 요구한 건 노조다. 회사가 파업을 유도했다고 생각한다. 고객을 볼모로 잡은 건 역으로 회사라고 본다. 노조가 파업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면서도 해볼테면 해봐라 그런 생각이 아닌가 한다. 회사는 화주와 지점장들에게 15일만 버티라고 했다. 그러면 해결된다고. 우리가 15일 이상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거다.
고객의 입장에선 당연히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파업의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 주면 정말 고맙겠다. 우리는 배송하지 못하면 한 푼의 수수료도 받지 못한다. 사실상 모든 걸 포기하고 싸우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없는 일터를 만들고 싶다.
비닐 한 장에 의지해 노숙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김성룡 씨는 인터뷰를 마친 후 필자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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