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 들어온 공자의 자손을 우대할 방도를 강구하라."
정조실록 35권, 정조 16년 8월 21일 기록에는 이 같은 말이 등장한다. 여기서 자손이란, 세계 4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중국 고대의 사상가 공자(孔子)의 자손인 곡부(曲阜) 공씨를 의미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의 22대 임금인 정조대왕은 공자의 64대손인 공서린(孔瑞麟) 선생과 그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뤄 산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의 족보와 중국의 문헌을 대조해 세파(世派)와 내력이 분명하게 부합함을 확인했다.
많은 왕들이 공씨 가문에 관심을 보이면서 군역·잡역을 면제해주긴 했지만, 특히 정조는 공서린의 9세손이자 성균관 유생이던 공윤항(孔胤恒)을 불러 '시경'과 '서경'을 강독하게 한 뒤 과거에 급제시키거나, 공서린 선생에게는 문헌(文獻)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모든 공씨의 본관을 '곡부'로 고쳐 쓰라고 명하는 등 성은(聖恩)을 베풀었다.
뿐만 아니라 정조는 당시 건물 한 채를 세워 공자의 초상화를 옮겨 모셨으며, 그 건물의 이름을 공자의 고향의 이름을 딴 '궐리(闕里)사'라고 지었다.
공서린 선생 역시 이곳에서 서재를 세우고 후학을 가르쳤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해당 건물은 오산시 궐(闕)동에 위치해 있으며, 경기도 기념물 제147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이러한 곡부 공씨 가문의 족보에는 현재 오산시 궐동 일대 땅을 정조가 하사했다는 내용이 존재한다.
현재까지도 곡부 공씨 가문은 '공자를 기린다'는 정조의 뜻을 이어가며 200여 년 가까이 이곳을 지키며, 100여 기가 넘는 종중 묘역을 지키고 있다.
이처럼 공자와 관련된 역사적 가치를 품은 유서 깊은 궐동 일대에, 최근 오산시가 민간공원 특례사업, <본보 2021년 12월 20일자 보도>를 통해 공원을 비롯한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역사성이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산시 궐동 산 17-3번지 일대 15만8515㎡ 규모 부지가 민간공원 특례사업으로 조성되면서 해당 부지 내 있는 종중 묘역을 모두 옮겨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오산시는 곡부 공씨가 사업구역 내 3분의 1 가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데도 불구,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종중 측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는 등 사업 내용조차 공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종중 측은 비대위를 구성해 시를 압박하는 등 일방적 사업 추진을 두고 볼 수만 없다는 입장이다.
종중 측 관계자는 "이러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에 공자를 기리는 시설물은커녕 민간업체를 위한 수익사업이 진행된다는 게 개탄스럽다"며 "오산시와 대화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국민감사 청구나 소송 등 강경한 수단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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