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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에 있는 동학농민군 한달문의 '옥중 한글편지', 국가문화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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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에 있는 동학농민군 한달문의 '옥중 한글편지', 국가문화재된다


어머님께 올리나이다. 

제번하고 모자 이별 후로 소식이 서로 막혀 막막하였습니다. 남북으로 가셨으니 죽은 줄만 알고 소식이 없어 답답하였습니다. 

처음에 나주 동창 유기 모시굴 점등에서 죽을 고생하다가 한 사람을 만나서 소자의 토시로 신표를 하여 보내어 어머님 함께 오시길 기다렸더니, 12월 20일 소식도 모르고 이날 나주 옥으로 오니 소식이 끊어지고 노자 한 푼 없으니 우선 굶어 죽게 되니 어찌 원통치 아니하리오. 

돈 300여 냥이면 어진 사람 만나 살 묘책이 있어 급히 사람을 보내니, 어머님 불효한 자식을 급히 살려주시오. 

그간 집안 유고를 몰라 기록하니 어머님 몸에 혹 유고 계시거든 옆 사람이라도 와야 하겠습니다. 

부디 부디 명심 불망하옵고 즉시 오시기를 차망복망하옵니다. 

남은 말씀 무수하나 서로 만나 말하옵기로 그만 그치나이다. 

1894년 12월 28일 달문 올림 

노자 2냥, 의복 상하벌, 보신 한 벌, 토시 한 벌, 주의 한 벌, 망건 온 사람과 함께 가 과서를 편히 할 터이니 혹 가고가 있어 못 오면 옥동 가고골 한기수에게 의복 지어 보내소서.


ⓒ이하 문화재청

전북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동학농민군의 옥중 한글편지가 국가문화재로 등록을 앞두고 있다.

이 편지는 127년 전 동학농민군이었던 한달문이 모정을 향해 자신의 구명을 절절하게, 그리고 다급하게 호소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문화재로 등록될 이 편지는 동학농민군의 옥중 생활을 비롯한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나 동학농민혁명 당시에 동학농민군이 직접 작성한 문서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한달문(韓達文, 1859-1895)은 도암면 원천리 동산 출신으로 27세 되던 해에 철충장군 부호군이라는 최고위급에 해당하는 벼슬을 얻었다. 그때 조정의 부패가 심해지자 동학운동에 뛰어들어 보국안민의 깃발을 들고 탐관오리 처단과 반봉건·반외세투쟁의 선두에 나섰다. 이후 1890년께는 35세의 나이로 동학의 접주가 돼 동학농민대장으로 장정을 이끌고 삼례봉기에 참여한다. 그는 갑오년 12월 경 나주 모시골 점등 전투에서 민보군에게 사로잡혀 모진 고문 끝에 1895년에 목숨을 잃게 된다.

동학농민군의 손에 의해 직접 작성된 이 편지를 국가문화재 등록 예고 사유로 문화재청은 최근 이렇게 밝혔다.

'동학농민군 편지'는 전남 화순에서 동학농민군으로 활동하다 나주 감옥에 수감중이던 한달문이 고향에 있는 어머님에게 직접 쓴 한글 편지 원본인 점. 또 편지는 본인의 구명을 요청하는 등의 내용으로 동학농민군의 처지 및 실상을 보여주고 있는 동시에 동학농민군이 작성한 문서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희소하므로 등록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



이 편지의 규격은 세로 21.2㎝×가로 40㎝ 이다.

한편 이번에 등록 예고한 '동학농민군 편지'는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등록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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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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