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다시금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문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20주년을 맞아 "인권이나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을 만들지 못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이라는 기구법 안에 인권 규범을 담는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25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인권위 설립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인권 선진국이 되기 위해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라며 이같이 밝혔다.
'차별금지법', '평등법'이라는 정확한 명칭 대신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이라고 에둘러 말했으나,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2017년 대선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약속을 유보해 시민사회로부터 큰 비판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TV 대선 토론회에선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말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 후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별다른 언급이 없다가 임기 종료 6개월이 남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차별금지'를 꺼내든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을 위한 노력에 참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깊다"면서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실질적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만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다는 다짐에서 출발한 인권위는 지난 20년간 소수자의 권리를 대변하며 인권 존중 실현의 최전방에서 많은 일을 해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인권위가 그간 보호 감호 처분 폐지, 군 영창 제도 폐지, 삼청교육대와 한센인 피해자를 위한 특별법 제정 등 제도적 개선 뿐 아니라 '살색' 표현, 남학생부터 출석번호 1번을 부여하던 관행을 없애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 사람 한사람의 생각이 바뀌어야만 우리 모두의 인권 넓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한 소중한 사례들"이라면서 "멈추지 않고 긴 호흡으로 꾸준히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온 인권위의 모습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 과정이었다"고 했다.
이어 "전 세계는 차별과 배제, 혐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코로나와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 속에서 발생하는 격차 문제도 시급한 인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며 향후 과제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때로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요구하는 것도 인권위가 해야 할 몫"이라며 "정부는 인권위의 독립된 활동을 철저히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취약계층 지원을 늘리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며 국민의 기본권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명동성당은 독재에 맞서 자유와 인권의 회복을 외쳤던 곳이다. 인권위의 출범을 위해 인권운동가들이 뜻을 모았던 장소이자 인권위의 독립성이 위협받던 시절에 저항의 목소리를 냈던 곳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두의 인권을 폭넓게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는 우리는 항상 인권을 위해 눈 뜨고 있어야 한다"면서 "오늘 민주주의와 인권의 전진을 이끈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인권 존중 사회를 향해 더욱 힘차게 나아갈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인권 활동가들, 文대통령 향해 "성소수자에게 사과하라"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이 끝나자, 기념식에 참석한 인권 단체 활동가들은 "성소수자에게 사과하라", "차별금지법 제정 즉각 추진하라"며 반발했다.
객석에 앉아있던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대표(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집행위원)는 문 대통령이 발언을 마칠 무렵 "대통령님 성소수자에게 사과하십시오. 그리고 차별금지법 제정 즉각 추진하십시오. 후보 시절 발언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저는 동성애자이자 인권활동가입니다. 저의 존재에 누가 찬반을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당신의 '나중에'와 사회적 합의로 인해 차별의 현실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즉각 추진하고 성소수자에게 직접 사과하십시오"라고 항의성 발언을 이어갔다.
이 대표의 발언에 다른 인권 활동가들도 "차별금지법을 당장 제정하십시오"라고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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