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빨리 조교사를 해야겠단 생각으로 죽기살기로 준비해서 조교사 면허를 받았다. … 그럼 뭐하나 마방을 못 받으면 다 헛일인데. … 내가 좀 아는 마사회 직원들은 대놓고 나한테 말한다. 마방 빨리 받으려면 높으신 양반들과 밥도 좀 먹고 하라고.(고 문중원 기수 유서 일부)"
한국마사회의 조교사 개업 심사 비리 등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고 문중원 기수 유족이 비리 혐의자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을 규탄하며 검찰을 향해 항소 과정에서 혐의자를 철저히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마사회적폐청산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는 문 기수 유족과 함께 24일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05년부터 14년간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7명의 말 관리사와 기수가 목숨을 잃었지만 이들의 죽음 앞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며 "문중원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당시와 박경근, 이현준 말 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당시 부산경남경마공원 본부장은 모두 한국마사회 중앙의 주요 보직과 상임이사직을 맡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2019년 유족과 시민대책위가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고인의 시신을 거리에 모시고 진행한 100일 투쟁의 결과 처음으로 문중원 열사의 유서에 실명이 적힌 마사회 간부에 대한 재판이 열렸지만 이마저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시민대책위는 "마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난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며 지난 23일 항소에 나선 검찰에 "적극적인 추가 입증과 법리 주장을 통해 신규 조교사 선발 업무의 적정성과 공정성이 방해되었다는 사실을 낱낱이 밝혀내 문중원 열사 죽음의 가해자들이 처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 기수 부인 오은주 씨는 이날 발언 직전 울음을 터뜨렸다. 오 씨는 먼저 "무죄 판결이라고 피의자들은 웃으며 그 자리를 나갔고 저는 목 놓아 울었다"며 "제 남편이, 우리 아이 아빠가 앞이 보이지 않고 미래가 없다며 혼자 고통스러워하다 우리가 잠든 사이 소중한 가족을 남겨두고 떠나갔다. 제 남편의 보이지 않던 미래는 누가 만들었나"라고 물었다.
오 씨는 "유서에도 있었다. '마방을 배정받으려면 높으신 양반과 친분이 있어야 한다'고"라며 "그 높으신 양반과 또 다른 두 명이 자신들의 미래를 만들고, 제 남편의 미래는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고 했다.
오 씨는 이어 "무너진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이 자리에 섰다"며 "1심이 끝났지만 2심 재판이 다시 열릴 거고, 피의자들은 웃으며 돌아갔지만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오 씨는 "저는 끝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저들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라며 검찰을 향해 "진상을 낱낱이 파헤치고 가해자의 책임을 묻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7일 부산지법 서부지원은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부산경남경마공원 전 경마처장 A씨와 조교사 B, C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구체적으로는 조교사 개업 심사 전인 2018년 8월에서 10월 사이 A씨가 B, C씨의 면접 발표 자료를 사전 검토하는 등 특혜를 제공했다는 혐의였다.
재판부는 "A씨가 조교사 2명에게 격려나 조언을 한 정황은 있으나 구체적으로 자료 수정 등을 지시한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며 "2018년 8월과 10~11월에는 신규 조교사 선발이 예정돼 있지 않아 선발 업무를 방해하거나 공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시민대책위는 이에 대해 재판부가 △ 조교사 개업 심사에서 문 기수가 외부 심사위원에게는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내부 심사위원에게 낮은 점수를 받아 탈락한 점 △ 사건 당시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정년을 맞는 조교사가 있어 관련자들은 이미 선발 공고가 날 것을 알고 있었고 내정자에 대한 소문도 있었다는 점을 묵과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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