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정체와 대장동 개발 배임 의혹으로 돌파구를 찾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백래시'를 들고나왔다. 20대 남성의 지지율을 끌어옴과 동시에 젠더갈등을 전면화해 국면 전환을 하려는 시도로 '분열의 정치'를 대선에 소환했다.
이 후보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번 함께 읽어 보시지요"라며 '홍카단(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캠프 2030 자원봉사단)이 이재명 후보님께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의 '디시인사이드' 게시글을 공유했다.
해당 글에서 글쓴이는 "민주당은 페미니즘과 부동산은 볼드모트가 되어 감히 입밖에도 꺼내지 못했다"며 홍 의원이 "페미니즘을 깨부숴 달라는 우리의 요청에 유일하게 진지하게 응답해줬던 사람"이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재명 후보가 페미니즘을 멈춘다고 약속해 달라. 그러면 지지하겠다"고 했다.
글쓴이는 "남자는 가해자 내지는 잠재적 가해자이며 여성은 항상 피해자라고 전제를 깔아두는 이 미친 세상만 좀 멈추어주길 바랄뿐", "남성혐오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여성혐오만 존재할 뿐이다. 이런 말을 정치권에서 해댄다"고도 했다. 이어 "페미니즘을 비판하면 여성 혐오자가 되고 백래시가 되고, 이게 군사정권 시절 빨갱이 프레임이랑 도대체 뭐가 다르냐"고 주장했다.
이 후보가 공유한 글은 페미니즘에 대한 전형적인 '백래시' 논리다. 백래시란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을 이르는 말이다. 페미니즘의 사회적 확산으로 인한 역차별이 존재하고 그 결과 남성들은 역차별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후보가 이 같은 내용을 공유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일 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비공개 회의에서도 '2030 남자들이 펨코에 모여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을 지지한 이유'라는 글을 공유했다. 이 글에서도 "민주당이 각종 페미 정책으로 남성들을 역차별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젊은 남자들을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하는 법안을 낸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이 후보는 이날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이 논란이 되자 논란과는 다소 빗겨난 해명을 내놨다. 자신이 이 같은 글을 읽어보길 권유한 이유로 "'2030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정치인이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다'는 청년들의 절규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청년의 삶을 개선하는 '첫 번째 머슴'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자신의 성과로 '군 복무 청년 상해보험'과 '청년면접수당'을 언급하며 "무엇보다 기성세대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기회의 총량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공정과 성장을 통해 기회를 늘리지 않는다면 청년들의 앞으로의 삶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논란의 핵심은 날 것의 '백래시' 글을 공유함으로서 젠더갈등을 정치에 소환해 청년세대를 갈라치고, 자신에게 제기된 대장동 논란 등을 희석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으나, 이 후보는 이 논란을 청년 문제와 뒤섞어 "청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해명을 내놓은 셈이다.
젠더갈등을 통해 2030 청년을 호명함으로서 청년 문제의 본질을 가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부대표는 "남성들이 취직이 안 되고 집을 못 얻는 이유가 '페미'는 아니지 않나. 구조의 문제고 구조의 핵심을 차지했던 집단들이 존재하는데 이를 쉽게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의 책임으로 돌려 그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 본질"이라며 "그것에 후보가 같이 동조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성차별 뿐만아니라 계층, 다양한 요인들로 발생하는 구조의 문제를 남성들의 혐오 정서에 편승해 본질을 가리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권 부대표는 "'홍카단'이 2030 청년을 대표하는 것처럼 소구함으로서 실제 다양한 층위의 청년 문제를 일원화한다. 2030의 문제를 듣는 것이 온라인에서의 여성 혐오를 청취하는 것이냐"며 "2030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분열의 정치, 갈등의 정치를 확산시키는데 정치권이 나서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의 '백래시 소환'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로 집계된 20대 남성들의 지지율을 끌어오기위한 시도로도 읽힌다. 리얼미터·오마이뉴스가 지난 7~8일 실시한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20대 남성(18~29세)의 이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20.5%지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52.1%를 기록하며 30%포인트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후보는 지난 9일 여성가족부 명칭을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도 옳지 않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기도 했다. 여가부 개편론을 꺼낸 것은 페미니즘과 거리를 두는 제스쳐를 보여줌으로서 '여가부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는 20대 남성들에 대한 구애에 가깝다.
하지만 이는 자칫 탄탄한 지지층마저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대와 40대 여성 층에선 여전히 이 후보가 윤 후보를 앞서고 있다. 20대 여성들에게는 더욱 외면 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20대 여성의 이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26.2%에 불과하지만 윤석열 후보는 31.5%,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14.9%를 기록하고 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이 후보의 이야기는 2030 남성들에게 구애하는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이어 "2030 여성들이 성폭력 무고죄를 들고나온 국민의힘까지는 갈 수 없겠다는 판단이 있는 것 같다"며 "잡은 토끼까진 아니더라도 자기를 찍지 않으면 국민의힘은 찍지 않겠지, 제3지대로 가겠지 하는 판단이 선 것 같다"고 했다.
권 부소장은 "김남국 의원이 청년소통 TF에 임명되면서, 남초커뮤니티에서 여론들을 살피고 그것으로 정치동향을 주요하게 살펴본다고 스스로 밝히지 않았나. 2030에게 구애를 하지만 사실 남초 커뮤니티 일부에서 안티페미를 선동하는 마타도어"라며 "그 얘기를 소환하는 순간 갈등 중심에 서게되지만 양쪽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게 아니다. 정치는 프레임을 넘어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한쪽 편을 들어서 갈팡질팡하는 정치는 결국 누구의 마음도 사지 못하는 어리석은 전략이고 얄팍한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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