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최백호는 "(송)창식이 형보다 더 좋은 노래를 만들어보자는 욕심은 있었다"면서도 "내 인생의 클라이맥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박승은 "남과 사회를 위해 뭔가 기여할 때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며 나와 남의 행복을 논한다. 대중음악 평론 1세대 강헌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명리학에 빠졌고 "실패를 통해서 확실하게 배운 것은 실패는 처절하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들 김용균을 잃은 엄마 김미숙은 '노동운동가'로 다시 태어난 이유를 덤덤하게 풀어 놓는다.
<어떤 어른>(윤춘호 저, 개마고원)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다. 이들은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결국 '보통의 어른들'일 뿐이다. '꼰대'라는 말을 피하기 위해 몸조심하면서도, 자신이 '할 말이 많은 꼰대'라는 걸 부인하지 않는다. 어른이 됐지만 아직 스스로를 어른이라 부르기 멋쩍어하는 대한민국의 '유명인사'들이 '그래, 내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래?'라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너 몇살이야'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많이 사라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른인데...' 하는 암묵적 '룰'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 젊은이들의 롤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을 '어른'이라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꼰대' 이미지를 씌워놓고 바라본다. '어른들'의 큰 성취에 비례하는만큼의 그늘도 공존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자는 것일까? 하긴 남다른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남다른 '고집'도 필요한 것이고, 타인을 누르고 우뚝 서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우스갯소리로 '꼰대됨을 피할 길이 없다'는 말을 한다. '나는 꼰대가 아니야'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꼰대의 증거'라 하는 무논리의 반박 앞엔 장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꼰대 어른'의 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꼰대'에서 그치지 않는 이유는 어른과 꼰대 사이를 가로지르는 '자기 성찰의 강'을 끊임없이 오가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할말 많은 꼰대들이 풀어내는 뻔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사이에 보석처럼 박힌 자기 성찰의 대목대목에서 경륜과 지혜를 뽑아낸다. <어떤 어른>에는 도전과 성취, 영광과 상처, 수치와 깨달음까지도 진솔한 고백과 회한의 토로 속에 함께 자리한다. '꼰대'들의 '꼰대답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저자 윤춘호는 최백호, 오한숙희, 김성구, 김훈, 김미숙, 강우일, 박승, 윤정숙, 이왕준, 김판수, 강헌, 송해, 현택환 등. 공통점이라곤 없어보이지만, 격동의 한국 사회를 온마음과 온몸으로 부딪혀 온 사람들이 이야기를 꿰어 풀어놓는다.
대개의 인터뷰집이 묻고 답하기의 대화로 채워져 있지만, 저자는 이 책이 "말하는 사람이 부르는 대로 적은 글이 아니라"며 "말하는 사람에 못지않게 듣는 사람의 시각과 목소리가 담긴 글을 쓰고자 했다"고 말한다. 저자이기도 한 인터뷰이의 말은 전체 맥락 속에 필요 최소한으로만 인용된다. 이런 것이 '인터뷰'의 진짜 묘미일 게다. 인터뷰어는 인터뷰이가 생각지 못한 것을 포착하기도 하고, 인터뷰이가 가진 '자기만의 세상'을 해석하고 풀어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인터뷰어는 '어른 인간'과 '독자'의 사이에 서서 '제 3의' 믿을만한 전달자가 되는 것이다.
"'세대 갈등'이 팩트인 양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 그리하여 청년들에게 어른이 안 보이게 된 건 어른에게도 청년에게도 비극이다. 어쩌면 어른은 없다기보다는 보려 하지 않아서 없는 건 아닐까? 어쩔 수 없이 나이 먹은 꼰대로서의 정체성에 짓눌리면서도 남은 생을 끊임없이 자기를, 경험을, 세월을 되짚어 성찰하며 미래에 기여할 바를 찾는 이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저자로 하여금 이들 꼰대 어른들과의 만남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게 만들었으리라." - 책 소개 글 중
저자 윤춘호는 서울대에서 서양사를 공부했고, 1991년부터 SBS 기자로 일하고 있다. 탁월한 인터뷰어로서 대한민국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과 만남을 SBS 온라인 사이트에 '그 사람'이란 타이틀로 연재하고 있다. <봉인된 역사 -대장촌의 일본인 지주들과 조선 농민>(2017),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2019)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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