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라는 말은 이제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방역 최전선은 울고 있다고 했다. 오늘도 동료가 떠났지만 현장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환자들에게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해 늘 미안하다고 했다. 버티기는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살려달라고 했다. 간호사들의 목소리다.
간호사 한 명이 맡는 환자 수는 얼마나 될까? 병원의 형태와 목적이 다양해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렵지만, 일반병원 중 대형· 종합병원의 경우 보통 십수 명에서 많게는 40여 명에 달하기도 한다. 지방으로 갈수록 숫자는 늘어난다. 요양병원에서는 60명 이상인 곳도 많다. 단순하게 간호사 수만 봐도 2019년 기준 인구 1000명 당 OECD 평균은 7.9명, 한국은 4.2명이다. 한 명의 간호사가 대략 OECD 평균의 2배의 환자를 보고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의료 질을 담보하기 어렵다. 반면, 통계는 간호사가 10% 늘어나면 환자사망률은 7%, 병원 내 감염률은 12% 줄어든다고 보고하고 있다.
간호사의 근무 환경 문제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감정 노동까지 해야 하는 열악한 여건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통계로도 신입 간호사의 사직율은 45.5%에 달했다. 면허를 가진 45만 명의 간호사 중 23만 명만 간호 일을 하고 있다는 통계도 사정을 짐작하게 한다.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쇼크 이후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코로나 병동으로 빠져나간 인력이 보충되지 않아 일반 병동의 노동 강도가 더 높아졌고, 코로나 병동의 경우도 방호복 착용으로 평소보다 더 힘든 노동을 하고 있다.
정부는 간호학과 정원을 늘리겠다는 입장이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간호사가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간호사 양성은 오히려 대체 인력을 늘려 간호사를 소모품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더 싼 인력으로 대체하는 것만 돕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비정규직 비율도 늘어난다. 업무 특성상 협업이 많고 숙련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료 질은 더 떨어질 우려가 크다.
지난 4일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축소를 법제화하자고 주장했다. 이 같은 내용의 간호인력인권법은 지난 달 25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10만 동의를 얻어 보건복지위에 올라가 있는 상태다. 국립대학에서 먼저 시범 사업을 해보자는 안도 내놓으며 예산 편성도 촉구했다. 이들은 의료 인력과 공공 병상 확충 등 공공 의료의 확대를 요구하며 11일 파업도 예고했다.
위드코로나의 시작. 정부는 하루 신규 확진자의 고점을 5000명 선으로 보고 있지만, 1만 명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도 많다. 둘 모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숫자다. 이를 감당해야 할 의료 인력은 긴장하고 있다. 다시 버티라고만 해야 할까? 또 한 번 그렇게 고비만 넘기면 되는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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