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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여성의 생존과 저항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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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여성의 생존과 저항은 어디에 있나

[창비 주간 논평] "새벽·지영·한미녀가 연대해 '생존 게임'의 현실 공간 부수기를…"

※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체제 비판적 세계관에 대해 각국의 언론 매체와 SNS에서 수많은 칭찬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여성, 이주노동자, 탈북자, 가난한 이들에 대한 서사가 지나치게 단순하며 전형적인 캐릭터로 묘사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특히 <오징어 게임>은 작품 속 여성 인물의 묘사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감독이 여성 인물들을 지나치게 이야기의 장치로써만 활용했으며 여성혐오적 시선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존을 위해 남성과 섹스를 거래하고 최후에는 그 남성(덕수)을 끌어안고 뛰어내리면서 생을 다하는 '한미녀' 캐릭터와, VIP룸에서 아예 발 받침대나 인간 소파 등 물건이 되어 놓여 있는 여성들의 모습, 여성 탈락자에 대한 강간을 묘사하는 요원들의 대화 장면 등이 지적된다. 여성 캐릭터 '새벽' 또한 강인한 생존력을 지닌 인물로 나오지만 결국에는 주인공 '기훈'의 인간성에 대한 서사를 완성하는 역할로서 소모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한미녀 캐릭터는 이 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이다. 결국 여자들은 위기 상황에서 '몸을 팔고' 남자들을 이용해 생존하려 한다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편견과 왜곡된 인식을 반영한 캐릭터라는 것이다. 황동혁 감독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한미녀가 단순히 육체를 재화로 삼는 게 아니고 극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기에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뉴스1> 9월 28일 자)이라고 답했지만 이 문제는 <오징어 게임> 작품 내부의 설계 및 이에 대한 해명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 '자신의 안전이나 생존을 위해 섹스를 거래하는 여성'이라는 캐릭터는 실제 현실 속 여성들의 실존적 문제와 맞닿아 있으며, 이러한 캐릭터가 자기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되기도 한다는 불안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남성들이 이런 식의 인식하에 자신이 가진 권력과 자원으로 언제든 여성의 신체를 구매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거래의 대가로 자신이 여성을 취약한 위치로부터 보호하거나 구원해주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한미녀 캐릭터에 대한 여성들의 불만은 실은 <오징어 게임> 밖 현실에 대한 불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미녀를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존재로 삭제하고 구분 지어서는 안 된다. 한미녀는 스스로 말하듯 돈이 없어서 많이 배우지 못했고 힘이 세지도 않지만, 가능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모색하며 극한의 상황에서도 다양한 기지를 발휘할 줄 아는 존재다. 적지 않은 여성들이 이러한 생존방식을 모색하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한미녀와 같은 여성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들의 생존에 관한 복잡한 현실을 삭제하고 누군가의 삶을 낙인 속에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런 여자는 없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생존은 왜 낙인의 대상이 되는지, 왜 누군가는 이렇게 생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해석을 요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제는 한미녀에게는 캐릭터만 있고 전사(前事)가 없다는 데에 있다. 감독이 의도하는 핵심 주제가 '오일남'과 '성기훈'을 비롯한 남성 인물들을 주축으로 전개되기에, 여성 인물들은 작품의 전체적인 이야기와 극적 설정을 보조하는 역할로서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현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과정에서 여성의 현실에 대한 구조적 분석은 소홀하게 다뤄지는 문제점과 연결되어 있다. 남성들은 누군가의 중요한 아들이고, 노동자이고, 세계를 망가뜨리는 자이자 세계를 구원하는 자이기도 하지만 여성들이 어떤 착취 구조 속에 있으며 여성들에게 다층의 억압을 부여하는 이 세계의 모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제대로 분석되지 않았다. 따라서 여성들이 어떻게 각자의 모순 속에서 생존해 나아가고 체제를 깨부수는 저항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많이 이야기되지 않았다. 감독이 <오징어 게임>을 통해 사회문제를 발견하기를 기대했다면 한미녀를 통해서도 그 주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기훈과 그의 전 아내, 딸 사이의 관계 설정에 있다. <오징어 게임> 2화에서 기훈의 전 아내는 어머니 병원비를 위해 200만 원만 빌려달라고 찾아온 기훈의 요청을 거절한다. 그녀가 기훈을 돌려보내려고 "애들 아빠 올 시간 되었다"라고 말하자 기훈은 "가영이 아빠는 나야!" 하며 화를 낸다. 이에 아내는 가영을 낳던 날 혼자서 기다시피 하며 병원으로 갔던 이야기를 하고, 기훈은 같은 시각 눈앞에서 죽은 동료의 이야기를 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 장면에서 기훈의 삶과 가족관계가 국가와 자본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해 망가졌음을 짐작하고 동시에 현실의 수많은 기훈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훈 아내의 고통은 단순한 클리셰로만 던져지며 시종일관 '아빠 역할을 다하지 못한'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기훈의 서사만이 강조된다. 감독의 이런 서사 배치로 인해, 아내는 인정도 없는 야속한 존재로 보이기 쉽다. 기훈은 국가와 자본에 의한 폭력의 피해자이자 안타까운 가부장이지만, 아내는 동료의 죽음에 대한 기훈의 트라우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전처'로만 배치되는 것이다. 심지어 1화에서 기훈의 어머니는 기훈에게 "아이는 찾아야 할 거 아니냐" "애 아버지가 경제적인 능력만 되면 아이를 찾을 수 있다고 하더라"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의 딸 가영은 마치 원래 기훈의 것이었으나 경제적 능력이 없어 '빼앗긴' 존재처럼 배치된다. 이러한 구도와 장면들은 기훈이 겪은 폭력의 구조에 함께 놓여 있었던 다른 존재로서 여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이다.

쉽게 죽을 수조차 없는 '생존 게임'의 현실 공간은 참가자들이 가득 들어찬 평평하고 넓은 운동장이 아니다. 오히려 참가자들이 이동하는 계단이 그에 가깝다. 현실 공간은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과 지영, 한미녀가 연대하여 그 계단을 부수는 이야기를 상상한다. <오징어 게임>의 세계관에서는 그 모습을 그리지 않았지만 현실에서는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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