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이른 시일 내에 남북통일이 이뤄지기는 어렵다면서, 통일부의 명칭을 남북관계부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통일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정세현 전 수석부의장은 2일 민주평통이 '남북 유엔가입 30년과 한반도 평화'라는 주제로 개최한 남북관계 전문가 토론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실현 가능성이 낮은 통일보다는 남북 연합 정도를 당면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전 수석부의장은 북한이 1990년대 동구권 몰락 당시부터 현재까지 계속하여 체제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 때문에 남한에 대한 이른바 '적화 통일'이 아닌 '남북연합'을 강조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1978년 중국 개방개혁과 1980년대 후반 소련이 무너지면서 북한의 체제 위기감이 높아졌다. 또 남한 경제는 상대적으로 고속성장을 하고 1988년 서울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르게 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이른바 '남조선(남한) 해방'을 추구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 전 수석부의장은 "북한은 현실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남북공존을 지향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이러한 배경 하에 1991년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이후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같은 남북 간 격차는 30년이 지난 현재 더욱 커져가고 있다. 정 전 수석부의장은 북한도 이같은 격차를 인정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올해 1월에 열린 8차 당 대회에서 적화통일을 사실상 포기하는 방향으로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1945년 10월 조선노동당을 창당한 이후 당 규약 전문에 "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국가를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데 있으며"라고 규정해왔다.
그런데 올해 8차 당 대회에서 이 부분이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하는 데 있으며"로 바뀌었다.
이를 두고 정 전 수석부의장은 "그동안 북한이 말하는 '전국적 범위에서의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은 '남한 적화' 또는 '공산화 통일'의 개념"이었다며 "그런데 개정된 당규약에 이를 변경한 것이다. 이는 돌발적 현상이 아니고 남북 간 국력 격차가 시간에 비례하여 커져가는 상황에서 당분간 통일은 접어두고 남북이 별개의 국가로 각자 도생할 수밖에 없다는 북한의 중장기적 전망과 전략방침이 반영된 결과"라고 풀이했다.
그는 실제 북한이 남한의 경제력뿐만 아니라 문화적 파급력도 두려워하고 있다면서 "북한은 지난해 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여 외래 문화, 특히 남한문화의 북한사회 침투를 철저히 경계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해당 법에 따르면 남한의 동영상을 반입·유포한 자는 사형, 동영상을 시청한 자는 5년 징역(이전에는 2년)에 처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 전 수석부의장은 "북한의 대남경계심이 이처럼 커진 상황에서 경제공동체와 사회 문화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면서 정치공동체인 통일의 기반을 닦으려 한 기존 남한의 통일정책은 전면 재검토와 수정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차기 정부는 이러한 전후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여 실용적이고 실천가능한 남북관계 발전 전략을 설계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라며 "당장 실현 불가능한 '통일' 보다는 '남북연합' 형성을 당면목표로 설정하고 관련 부처 명칭도 '통일부'보다는 '남북관계부'로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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