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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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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 위하여

[우수근의 아시아 워치] 신(新)열하일기를 시작하며

2021년, 중국이 코로나 19로 인해 외국인의 입국을 매우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중앙 정부의 초청으로 지난 8월부터 11월 말까지 중국에 방문하게 됐다. 이번 방문은 베이징을 중심으로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각계각층의 지도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세계에서 해당 각국의 유력 정치인, 고위 관료, 저명한 사회활동가 등 약 30명이 초청됐다. 그 중 유일한 한국인으로 참가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18세기 박지원 선생이 <열하일기>를 집필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로 <신(新) 열하일기>라는 이름으로 기록해보고자 한다.

▲ 지난 8월 중국으로 출국하는 우수근 교수. ⓒ우수근

열하일기는 1780년(정조 4), 박지원 선생이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연을 축하하기 위하여 사행하는 삼종형 박명원(朴明源)을 수개월 간 수행하여 청나라를 여행하고 귀국, 각계각층 사람들과의 교류 및 문물제도를 접한 결과를 소상하게 기록한 일기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당시 붕괴된 지 100여 년이 훨씬 지난 명나라를 아직도 숭상하며 "소중화 사상"에 빠져 헤매던 조선 사회에 커다란 경종을 울렸다. 그럼에도 조선의 안일함은 변하지 않았다. 조선의 붕괴는 조선사회의 구태의연(舊態依然)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바라보지 못하고 "편견과 오해" 등에 빠진 채 타국들이 부러워하는 "우리의 기회"조차 오히려 위기 국면으로 돌리고 있다. 그 안타까운 모습을, 중국 현지에서 체감하게 된 바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 전하고자 한다.

즉, 이번 기록을 통해 "대한민국의 지속적 생존과 번영은 우리 사회의 여시구진(與時俱進)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호소하고 싶다.

▲ 각국에서 초청받아 온 인사들과 강시성 시찰 ⓒ우수근

'열하일기'와 '新열하일기'의 차이점, 공통점은

박지원 선생의 중국 열하(熱河)행은, 그로서는 초행길이었고 최초의 해외 여행길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말로만 듣던 오랑캐 나라 청(淸), 하지만 전세계를 호령하는 그 기이한 실체를 직접 목도할 수 있다는 마음에 한껏 들떠 있었던 것 같다.

▲ 중국 입국을 위해 필요한 건강 증명 카드 ⓒ우수근

사실, 당시의 청나라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정도로 번영한 강희제, 융건제, 건륭제의 세계적 강성대국 시기였다. 하지만 바로 이웃한 조선은 명나라가 망한지 13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청나라를 "고귀한 중화의 명나라를 멸망시킨 오랑캐"라고 폄훼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조선의 깨어있는 실학자 중 한 명이었던 박지원 선생은 달랐다. 그는, 오랑캐라지만, 전세계를 불러들이는 그 실체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했다.

선생에 비해, 나는 이미 십 수년을 중국에서 거주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전에 이미 미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거주했었고 그 외 수십 개 국가를 다니며 글로벌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해왔다.

즉, 중국에 대해 당시 조선에서 나오던 풍문에만 둘러 쌓여 있다가 실제로 처음 체험하게 된 선생과는 달리, 이미 중국의 "실체" 등에 대해 나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토대로 현재 우리 사회에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려 그동안 심혈을 기울이며 노력해 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중국과 한국 모두에 긍정적인 방향에 대해 이미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설파해 왔다. 이처럼 18세기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중국이 초행길이었지만 21세기 우수근의 신열하일기는 초행길이 아니라는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도 한가지 있다. 당시의 청나라나 현재의 중국은 "무한 변화"하고 있었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조선이나 대한민국의 시각은 "유한 변화"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이지만, 박지원 선생은 청나라를 다녀와서 "청나라는 단지 오랑캐의 나라만은 아니다", "우리 조선의 시각이 낙후되어 있다", "청나라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변화에 제대로 눈을 떠야 한다"고 설파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조선 사회의 시각은 변하지 않았다. 선생에 대해, 지금 식으로 이야기하면 "저거, 중국갔다 오더니 중국사람 다 됐네", "저 친중파, 중국가서 살아라"라는 식의 비난만 더해갔다. 지금의 중국에 대한 시각과 다르지 않은 셈이다.

* 우수근 교수는 <한중글로벌협회> 회장 및 중국 관련 인터넷 전문 매체인 <아시아팩트뉴스>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위 글은 <아시아팩트뉴스>에 연재됐던 '우수근의 신열하일기'를 가감·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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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

우수근 교수는 일본 게이오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을 졸업했습니다. 상하이 화동사범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거친 뒤 상하이 동화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저서로는 <미국인의 발견>, <캄보디아에서 한‧일을 보다> <한국인 우군의 한‧일의 장벽이란 무엇인가>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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