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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의 눈물과 NYT의 24년 늦은 김학순 부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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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의 눈물과 NYT의 24년 늦은 김학순 부고 기사

이용수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에 위안부 문제 회부해야" 호소

"올해에만 세분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올해 2월에 저는 기자회견을 열어 “위안부” 문제 해결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위안부' 문제를 회부해 달라고 대통령님께 요청드렸습니다. 그런데 11월이 다 되어가도록 청와대도, 외교부도, 여성가족부도, 인권위원회도, 국회도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은 취임 초부터 피해자 중심의 해결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2015년도의 졸속 합의(한일 외교부장관 합의)를 국가간의 합의로 인정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도리어 한국이 해결책을 가져오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고 합니다. 1993년에 발표한 고노담화도 무시하면서, 해외에서는 하버드대 교수같은 학자들을 동원해서 엄연한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역사의 산 증인이 두 눈을 뜨고 살아 있는데도 이러니, 우리가 다 가고 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26일 비대면 기자회견을 열고 유엔 고문방지위원회(CAT)에 위안부 문제를 회부하자고 제안했다.

앞서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 문제를 회부하자고 문재인 정부에 요청했던 이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무대응으로 진척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ICJ 소송은 당사자 쌍방이 모두 동의해야 재판 절차가 진행된다.

이 할머니는 "일본은 국제사회에 망언을 퍼뜨리면서, 저희의 명예와 역사적 진실을 지금도 훼손하고 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요, 고문방지협약의 위반"이라며 "우리 한국의 피해자들 뿐 아니라, 전 세계 피해자들을 위해서, 한국정부가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에 위안부 문제를 가져가서, 일본이 위안소 제도를 만들고 운영한 것은  전쟁범죄였고, 반인륜 범죄였다는 명백한 판단을 받아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지난 4년 반 동안, 코로나 대응을 비롯해 정말 많은 일들을 잘 해 오셨는데 위안부 문제만큼은 전혀 진전이 없었고 오히려 크게 후퇴했다"며 "피해자가 살아 있을 때 해결을 해야 한다. 제 발걸음이 더 느려지기 전에, 아침에 제 숨소리가 더 잦아지기 전에, 우리 할머니들이 한 분이라도 더 돌아가시기 전에 제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 달라"고 호소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26일 비대면 기자회견을 갖고 위안부 문제를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에 회부하자고 제안했다. ⓒ프레시안 (전홍기혜)

NYT "위안부 피해 최초 증언한 김학순, 20세기 가장 용감한 인물"

이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기자회견을 하기 몇 시간 전,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에 25일(현지시간) 일본군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의 부고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지난 1851년부터 당대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에 대한 부고 기사인 '더는 간과할 수 없다(Overlook No More)' 시리즈의 일환이었다. 지난 1997년 김 할머니 별세 24년 만이다.

"1991년 8월 14일, 간이 주택에 혼자 살던 한 여성이 텔레비전 카메라를 마주하고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김학순. 그리고 그는 겨우 17살이었을 때, 2차 세계대전 중 중국의 소위 위안소로 끌려가 매일 일본 군인들에게 강간당하게 된 끔찍한 일에 대해 말했다.

"괴물 같은 군인들이 나에게 강제로 달려들었을 때 너무 끔찍했습니다. 제가 도망 가려고 했을 때, 그들은 나를 붙잡아 다시 끌고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기자회견에서 증언했다."

NYT는 김 할머니의 폭로로 일본 정부가 수십년 동안 부인했으며, 여전히 많은 일본 정치인들이 부인하고 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전쟁 성범죄가 세상에 드러났으며, 이후 중국, 호주,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다른 나라의 피해자들도 증언에 나설 수 있도록 감명을 줬다고 평가했다.

NYT는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역사학(한일 관계 전공) 교수의 발언을 인용해 "그는 20세기 가장 용감한 사람 중 하나"라면서 "김학순의 최초 진술은 연구자들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문서화된 증거를 발견하도록 추동했으며, 이를 통해 유엔이 정의한 전쟁 범죄와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책임을 일본 정부에 묻는 과정을 시작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NYT는 한국에서 김 할머니가 최초 증언을 한 날인 8월 14일은 지난 2018년부터 '위안부 기림일'로 지정됐다면서 "그는 남은 생 동안 일본 정부가 법적인 책임을 지고 보상을 하도록 요구하며 지치지 않는 활동을 펼쳤지만 그는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이 부고 기사는 '뉴스타파'를 통해 공개된 1997년 7월 김학순 할머니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로 끝났다.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은 할 수만 있다면 110살, 120살까지 살아서 일본한테 잘못했다는 소리 듣는 것이다. 다른 건 없다."

24년 전 김 할머니의 소원은 26일 밝힌 이용수 할머니의 소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명예회복이 우선입니다. 일본은 돈이면 전부인 줄 압니다. 특하면 돈 가지고 해결했다 하는데 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던져 주는 기만적인 그 돈은 우리에겐 극약입니다. 그런 돈으로 대한민국 내에 역사관을 만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국제사회에서 명백한 입장이 나와야, 일본의 교육도 달라지고, 후대들도 정확한 역사를 배우게 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님, 아시아 전체의 피해자를 위해서 용단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늦지 않으니 지금이라도 제 소원을 들어 주세요."

이 할머니는 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이렇게 호소했다. 

▲<뉴욕타임스>에 25일 김학순 할머니의 부고 기사가 실렸다. ⓒ뉴욕타임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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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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